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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바다에 미역이 없다고? 지금 벌어지는 무서운 일들

[제주 해양보호구역 탐사기⑨] 마라해양도립공원 편

등록 2024.09.08 10:59수정 2024.09.0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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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마라도 천연보호구역 (마라해양도립공원 국가지정문화재)

마라도 천연보호구역 (마라해양도립공원 국가지정문화재) ⓒ 파란탐사대 박상준


제주 본섬으로부터 약 11km 떨어진 곳에 있는 섬,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한 마라도는 급격한 수온상승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뜨거워지는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10년 넘게 우도와 마라도의 조간대 해조류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강정찬 제주대학교 기초과학연구소 박사에 의하면, 마라도 8월 평균 수온은 2018년 24.89℃, 2019년 25.38℃, 2020년 26.14℃, 2021년 27.87℃로 최근 3년 만에 약 3℃가 상승했다. 들끓는 바다는 어떤 변화를 불러왔을까! 지난 8월 16일, 제주 해양보호구역탐사대(아래 '탐사대')'는 마라도로 향했다.

어느 날, 바다에서 미역이 사라졌다

마라도는 아름다운 경관과 다양하고 풍요로운 해양 생물, 해양생태계를 지닌 천연보호구역이다(2000년 7월 18일 천연기념물 지정). 난대성 해조류가 잘 자라던 마라도 바다에는 봄이면 겨울 동안 거센 파도와 싸우면서 자란 자연산 미역과 톳이 넘쳐났다.

그러던 어느 날, 미역이 사라졌다. 미역이 자취를 감추기 전, 이상한 변화를 알아챈 건 마라도에서 30년을 살아온 백경혜씨다. 여느 날과 같이 미역을 포장하며 만지던 백경혜씨는 진한 고동색을 띤 미역에서 올록볼록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7~8년 전의 일이다. 날이 더워서 그렇겠지, 사람이 땀띠가 나듯 미역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3년 뒤, 미역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고 더는 바다에서 볼 수 없게 됐다.

"그건 표현이 잘 안 돼요. 미역이… 없다고? 마라도 바다에 미역이 없다고?"

a  갯녹음으로 해조류가 사라지고 황폐해진 바닷속 모습

갯녹음으로 해조류가 사라지고 황폐해진 바닷속 모습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a  2011년 마라도 미역군락 화면 갈무리

2011년 마라도 미역군락 화면 갈무리 ⓒ KBS2 <붉은 지구> 2부 침묵의 바다


오랜 바다의 삶을 잃어버린 섬 사람들

"그냥 미역 맛이 아니고 다시마하고 미역의 중간 맛이랄까, 식감은 아삭아삭해요. 어디서도 먹어볼 수 없는 맛이죠. 수확한 미역을 보면 엄청 뿌듯했어요. 색깔이 너무 예뻐요. 정말 진한 초록이었거든요."


백경혜씨는 시어머니와 작은 시어머니, 아들의 물질을 반평생 지켜봐 온 이로, 1990년대 초반, 지천에 널려있던 마라도 미역을 소분해 팔자고 처음 제안했다. 미역 작업은 온 마을이 함께했다. 해녀들은 미역을 채취했고, 마을 남자들은 무거운 미역을 운반했다. 미역을 널고 말린 후 포장하는 일까지 모두 마을의 일이었다. 미역 채취에 사용하는 망이 성인 3~4명은 거뜬히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다고 하니, 바다에 미역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렇게 많은 미역 작업에는 또 얼마나 품이 들었을지 상상해 볼 수 있다.

마라도 미역은 곱고 크기도 컸다. 예쁘고, 또 돈이 되는 소중한 자원. 미역으로 고기를 싸 먹고, 국도 여러 번 끓여먹었다. 바다가 키우고 내어준 미역은 섬사람들에게 단순한 먹거리이자 돈벌이가 아닌, 마을 구성원들 모두가 함께 해 온 삶이었다. 백경혜씨는 미역이 사라져 버린 것이 "마라도에서 가장 아픈 기억"이라고 말했다.


a  탐사대가 잠수해서 둘러 본 마라도 해역

탐사대가 잠수해서 둘러 본 마라도 해역 ⓒ 파란탐사대 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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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갯녹음 마라도 연안 갯녹음 현상 ⓒ 파란탐사대 이루리


섬사람들의 삶에 큰 변화를 불러온 뜨거워진 바다. 탐사대는 잠수경을 끼고 마라도의 얕은 바다를 들여다보았다. 8월의 바다는 따뜻했고, 바위는 갯녹음 현상으로 하얗게 변해 있었다. 바위 듬성듬성 해조류가 보였지만 물살이들이 먹거나 숨을 만큼의 환경을 제공해주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마라도 바다에서 사라진 건 미역만이 아니다. 감태, 톳, 모자반 등의 해조류도 마라도 바다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해조류가 사라지면 해조류를 먹이 삼는 다른 생명체들도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다. 잡을 물건이 없어진 마라도 해녀들은 이제 출가물질을 나가야 하는 실정이다.

마라도는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에서 지정한 천연보호구역이다.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구 문화재보호법)'로 인해 다른 곳보다 비교적 엄격한 제재를 받는 지역. 보호구역 마라도는 오랜 세월 이어온 자연의 삶과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개발로 사라져가는 마라도해양도립공원 내 해안사구

a  마라해양도립공원의 범위

마라해양도립공원의 범위 ⓒ 제주특별자치도립공원 보전·관리계획 2021~2


마라해양도립공원은 마라도 바다 뿐 아니라 가파도와 형제섬 바다, 제주 서귀포 대정읍에 있는 송악산 앞바다와 사계해안 일대를 모두 포함하는 넓은 면적의 공원이다(가파도, 마라도, 형제섬 육상은 제외). 다른 국·도립 공원과 마찬가지로 이곳 또한 일대의 수려한 자연환경의 보전과 이용이라는 '자연공원법'에 의거해 1997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 중 산방산을 두고 길게 이어지는 사계해안과 화순해안 일대는 약 4000년 전 송악산이 폭발하며 만들어진 '하모리층' 지형에 속한다. 하모리층은 비교적 최근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지층이란 점에서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이 하모리층 일부는 모래로 덮여 해안사구의 형태인데, 이와 같은 해안사구는 생태계의 완충지대이자 많은 동식물의 번식장소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특히나 제주의 해안사구는 화산지형 위에 만들어진 만큼 생태학, 지질학적으로 독특한 위치에 있다.

a  사계해안에서 볼 수 있는 하모리층

사계해안에서 볼 수 있는 하모리층 ⓒ 파란탐사대 최서현

a  황우치해변의 유실된 모래를 복원하기 위해 제주도가 부어놓은 모래와 돌무더기

황우치해변의 유실된 모래를 복원하기 위해 제주도가 부어놓은 모래와 돌무더기 ⓒ 파란탐사대 최서현


탐사대는 하모리층과 해안사구가 잘 보호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황우치해변 인근 카페 앞에 차를 대고 바다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주변을 살피던 탐사대는 바다로 이어져야 할 해변의 모래가 뚝 끊겨있는 걸 발견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낭떠러지처럼 보이는 형태였다. 가까이 가보니 모래가 끊긴 곳 아래에는 바위와 콘크리트 더미가 쌓여있었다.

장엄한 산방산을 배경으로 알 수 없는 돌들이 쌓여 있는 이 흉물스러운 모습은 황우치해변 바로 인근의 화순항 개발 사업으로 비롯됐다. 1993년부터 시작되어 온 화순항 개발은 방파제 설치와 주변 해역 매립이 포함되는 항만개발사업이다. 해당 물류항 조성을 위해 방파제가 들어선 이후, 해류의 흐름이 바뀌고 황우치해변의 모래가 사라졌다.

이에 제주도는 2018년, 황우치해변을 복원한다며 약 170억 원을 들여 22만㎥의 모래를 쏟아부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양의 모래는 복원사업 종료 후 단 두 달 만에, 파도에 모두 휩쓸려 나가버렸다. 모래는 인근 해녀 어장을 덮쳤고, 바다 생물이 주로 살던 수중 바위들이 모두 모래에 파묻혀 버렸다. 마을의 어장은 황폐해졌다.

그럼에도 제주도는 화순항 기본계획(2021~2030)을 계속 이어가며 관공선 부두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부두가 들어서면 황우치해변 바로 옆 금모래해변은 부두에 완전히 갇히게 될 것이고, 금모래해변의 모래는 유실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a  모래가 유실된 황우치해변의 전경. 바다에 바로 인접해 드러난 곳이 하모리층이다. 멀리 화순항과 화순발전소가 보인다.

모래가 유실된 황우치해변의 전경. 바다에 바로 인접해 드러난 곳이 하모리층이다. 멀리 화순항과 화순발전소가 보인다. ⓒ 파란탐사대 최서현


'공원' 지정의 목적과 가치를 묻다

현행법상 도립공원은 자연공원에 속한다. 자연공원법 제1조는 자연공원의 목적을 '자연생태계와 자연 및 문화경관 등을 보전하고 지속 가능한 이용을 도모함'이라 명시하고 있다. 자연과 경관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이 곧 자연공원의 지정 이유이자 목표인 것이다.

부드럽게 패인 오름의 분화구, 반짝이며 빛나는 바다, 과거 화산 활동의 흔적을 그대로 담은 현무암 등 아름다운 송악산의 자연을 찬찬히 둘러보며 능선을 걸었다. 송악산 일대는 '문화재(현 국가유산)'가 아닌 '도립공원'으로 편입될 예정이다. 송악산이 문화재로 지정되면 송악산은 물론 송악산 주변 반경 500m까지 역사·문화·화경 보존지역으로 설정되어 개발사업이 제한되었겠지만, 제주도는 지역주민의 재산권 침해 등을 고려하여 이곳을 문화재가 아닌 도립공원으로 지정하는 쪽으로 계획을 틀었다.

a  송악산 능선에 올라 본 바다. 날이 좋은 날은 사진과 같이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볼 수 있다.

송악산 능선에 올라 본 바다. 날이 좋은 날은 사진과 같이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볼 수 있다. ⓒ 파란탐사대 최서현

a  송악산 화산 지형

송악산 화산 지형 ⓒ 파란탐사대 최서현


제주도가 발주했던 '제주 송악산 관리 방안 마련을 위한 용역 보고서'에는 송악산 일대에 스카이워크를 건설하는 방안이 제시되어 있었다. 송악산의 자연을 관광화하여 더 많은 사람이 즐기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논란이 일자 스카이워크 건설 계획은 삭제됐지만 함께 제시되었던 전망데크 설치 및 야간관광 활성화를 위한 조명 설치 등은 여전히 추진 사업으로 남아 있다.

자연경관을 언제까지 '이용'의 대상으로만 볼 것인가. 보전이라는 명목으로 시행되고 있는 현재의 '관리'조차 이제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의 활동이 초래한 기후 변화로 수온 상승은 여전히 진행중이며, 이를 막지 못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이 사라질 것이다. 마라도의 미역 전멸과 그로 인한 마라도 지역 주민들의 상실감, 삶의 변화는 더는 그들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자연이 아름답다면 아름다울수록, 그 아름다움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 아름다움이 시간이 지나도 유지되게 하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 다함께 고민하고 근본적 변화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a  한라산과 산방산, 형제섬이 한눈에 보이는 송악산 둘레길 전경

한라산과 산방산, 형제섬이 한눈에 보이는 송악산 둘레길 전경 ⓒ 파란탐사대 최서현


[참고문헌]
- 오마이뉴스(2022.03.31). 마라도 미역 실종 사건... "이번 겨울 딱 1개체 봤다"
- 제주의소리(2023.02.23) 송악산 보호? '도립공원 확대' 가닥...논란 속 '스카이워크-전망대' 계획 배제
- 제주투데이 (2022.06.30). 제주도가 쏟아부은 22만㎥의 모래...해양생물 서식처 황폐화
- 제주투데이(2022.07.18). [화순 잔혹사-2]용머리해안에 콘크리트를?...금모래해변 집어삼킨 박정희 정권의 계획
- 제주특별자치도(2020). 제주특별자치도립공원 보전 관리 계획 2021~2030.
- 한국방송공사 (2021.09.09). <다큐인사이트: 기후변화 특별기획 4부작 2부 '붉은 지구' - 침묵의 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주투데이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는 제주투데이에도 실립니다.

이 기사를 쓴 최서현은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비인간 자연에 주목하게 되었다. 제주에 거주하며 자연의 물성이 가진 힘에 압도되었던 경험을 토대로 인간 신체와 다른 몸들이 관계하며 벌어지는 일을 주시한다. 글과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작업을 고민하며 개인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해양보호구역 #기후위기 #제주도 #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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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비인간 자연에 주목하게 되었다. 제주에 거주하며 자연의 물성이 가진 힘에 압도 되었던 경험을 토대로 인간 신체와 다른 몸들이 관계하며 벌어지는 일을 주시한다. 글과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작업을 고민하며 개인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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