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전공의협의회에서 작성한 홍보 자료. 젊은의사 단체행동 인스타그램@youngmd_do.right 2020 캡쳐 https://www.instagram.com/youngmd_do.right/
대한전공의협의회
그러나 2024년, 이 '학습된 정체성'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1만 5000명 전공의의 사직은 사실상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었고, 1만 8000명 의대생은 한 학기가 넘어가는 시간 동안 학업을 포기하고 흩어졌다.
전공의는 수련을 포기했을지언정 어디서든 의사 면허를 걸고 일을 하고 있을 테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의대생들의 향후 행방은 의학교육의 중대한 문제가 됐다. 24학번 학생들은 25년에 입학할 4500여 명의 후배들과 함께 1학년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교육에 물리적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예상이 많다. 이보다 더 중요한, 하지만 거의 언급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이들은 성인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며 사회적 책임과 권리를 배우고 시민 되기를 학습해야 할 시기를,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집단적인 정치적 정동을 공유한 채 수업을 거부하며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의료계가 정부가 그토록 요구해 온 "합리적인, 통일된 안"을 제시하며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가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의료대란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2020년 의사 파업을 비롯해 지금까지 의사 단체의 정치적 행보를 지켜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들이 사회적 협상을 통해 집단행동을 멈출 만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한다(관련기사: "
수시 접수 시작하는데 "25년 증원 백지화"...의-정 협의 '막막'").
누군가 의사들을 대표해 정부와 국회 그리고 시민들과 합의를 이끌어 낸다고 하더라도 흩어진 의대생들을 2학기에는 돌아오도록 설득하거나, 이미 그만둔 전공의들을 수련병원으로 복귀시킬 수 없을 거란 소리다.
이런 판단이 사실이라면, 2024년 한국의 의사들은 시민적 대화와 공론장 형성에 참여할 역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협상에 임할 만한 조직적 구심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상태다. 거버넌스에 참여해 의견을 조정하고 구성원을 규율하는 일이 집단으로서 의사 전문직의 사회적 책무임을 고려하면, 이 역시 한국 의사의 전문가주의적 자율규제가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원점재검토"라는 요구는, 원하는 정책을 관철할 수는 없지만, 원하지 않는 정책에는 언제든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사 집단의 마지막 자존심인지도 모르겠다.
'의사정치' 실패 비용 청산하고 미래 여는 길
의사들의 정치적 조직력 부재는 단지 그들의 사회적 명성과 권위가 실추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의사들은 정책 논의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실패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더 좋은 의료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짧은 안목에서 의사들의 정치적 조직화 실패는 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을 용이하게 할 것 같지만, 의료의 생산이 의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고스란히 사회의 비용으로 돌아오고 만다.
그렇다면 앞으로 정부와 시민들은 의사들을 공론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강력한 자기규율과 자율성을 주장하는 전문가 집단의 사회 참여를 지원하는 일까지 정부와 사회의 책임이라고 보기는 도저히 어려워 보인다.
다만, 가능하고 또 필요해 보이는 건 최소한의 공적 가치에 대한 합의를 토대로 대화에 임하고자 하는 의료인들을 보호하고, 또 이들과 연대하는 일이다. 전공의 노동조합을 대신 만들어 주지는 못하더라도 병원이라는 일터에서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전공의들의 노동권을 존중하며 협력을 제안할 수 있다. 여전히 환자 곁을 지키는 의사들, 의료의 공공성을 중요한 가치로 인정하는 다른 목소리들이 들릴 수 있도록 공간을 열고 대화를 제안할 수도 있겠다.

▲ 동질적으로 집단의 이익을 수호하는 듯 보이지만, 이미 한국 의사 중에는 환자와 시민의 편에 서서 사회적 진보에 기여한 인물이 적지 않다. 사진은 2012년 서울 중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 해결을 촉구하며 1인 시위에 나선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 사진=리영희재단. 연합뉴스 2016년 11월 16일자 보도
리영희재단
동시에 의사집단의 시민적 역량을 요구하며 이들의 권한을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이전 글에서 논의했듯 의료에 대한 의사의 독점적, 배타적 권한은 이들이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전제로 부여된다. 당뇨나 고혈압 환자를 진단하고 약을 처방하는 업무가 의사에게만 맡겨지는 편이 시민들에게도 가장 좋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에 의료가 지금처럼 유지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제 의사들의 독점권은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는 대신 부당한 특권이 되어 시민들의 의료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심지어 이 권한이 의료체계 전반의 비효율을 야기한다면, 지금의 상태가 적절한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
의사가 누리는 자율성은 신이 내려준 권리가 아니다. 2024년 한국이 겪고 있는 의료대란에 대한 판단은 엇갈릴 수 있지만, 의사와 사회가 맺고 있는 관계가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있기 어렵다. 외국에서는 고유의 역사적 맥락 아래 의료 전문직이 형성됐으나, 한국은 전문가주의가 그저 수입되어 이식되었기 때문에 이 모양이라는 냉소 역시 무책임하다.
우리는 이 무기력을 넘어 의료의 의미를 되묻고, 시민들과 사회적 협약을 다시 쌓아 올려야 한다고 제안한다. 어떤 일이 발생한다 해도 의료의 지속과 역할은 시민들의 온존에 필수적이기에 그렇다. 만시지탄이나 의료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의사는 어떤 역할을 하고, 어디까지 자율성을 보장받아야 하는지 얘기해야 한다. 의료를 둘러싼 사회적 협약의 벽돌을 하나씩 쌓아 올리며, 이제라도 동료 시민이 되어 미래로 나아갈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