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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원에 가면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는 사람이 많다. 지자체마다 맨발로 걷는 길을 조성하고, 발을 씻는 세족장까지 마련해 시민들의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땅에 맨발로 딛는 것을 '어싱'(Earthing)이라고 한다. 땅(earth)과 현재진행형(ing)의 합성어다. 지구와 우리 몸을 접촉해 땅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우리 몸으로 흡수하는 행위를 말한다.
실제로 적외선 체열 검사를 해보면 신발을 신었을 때보다 맨발로 걸을 때 혈액 순환이 원활해지고 체온이 상승한다. 혈액 순환이 원활해지면, 혈관 벽에 붙어 있는 노폐물이 씻겨서 고혈압·심혈관질환을 예방·개선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선뜻 맨발로 걷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날카로운 것을 밟거나 찔려 발이 다칠까 염려되었다. 한편, 맨발이 유난스럽게 보이지 않을까 눈치가 보였다.
그런 내가 요즘엔 맨발로, 그것도 야외에서 춤을 춘다. 하와이 춤 훌라를 배우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나이 오십 넘어 만났는데 미소가 떠나지 않아요 https://omn.kr/299rh ).
땅을 의미하는 춤동작이 많은 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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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라는 맨발이 기본 2024 서울 뷰티 트래블 위크에 초정받아 행사 공연 중이다. ⓒ 이산들
훌라는 맨발로 춘다. 맨발로 견고한 땅을 느끼고, 땅의 기운을 몸에 공유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자연에 마나(신성한 힘)가 있다고 믿는 하와이 문화에서도 땅의 의미는 더 특별하다. 하와이 선주민(원주민)의 정체성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하나를 위한 동행 (2022)'에서 노에 노에 윙 윌슨 박사는 말한다.
"(땅에 관한) 수많은 구호와 이야기, 노래가 수 세대에 걸쳐 전해져 내려왔어요. 이 공동체에서 땅과의 교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고유 언어가 있지만 문자가 없었던 하와이 선주민은 훌라를 통해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계승했다. 따라서 훌라에는 땅을 의미하는 춤동작이 많다. 대표적으로 양손을 살짝 뒤집어 앞으로 둥글게 모으거나, 한쪽 팔을 들고 한쪽 팔을 펼쳐 하와이섬, 하와이 땅을 표현한다.
훌라의 기본 동작 역시 양 발을 단단하게 땅에 붙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훌라의 기본자세를 '아이 하아(Ai Ha'a)'라고 하는데, 양발을 벌려 무릎을 구부린 반(半) 기마자세다.
기본 자세에서 상체는 고정하고, 하체는 엉덩이를 밀 듯이 옆으로 부드럽게 옮긴다. '훌라'하면 흔히들 생각하듯, 실제로는 엉덩이를 좌우로 마구 흔들지 않는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배꼽을 옆으로 이동한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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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아침이면 한강공원에서 만나 맨발로 훌라를 춘다. ⓒ 윤연희
맨발로 훌라를 추면 자연스럽게 발이 자극되어, 마치 발 마사지와 같은 지압 효과를 본다. 옆으로 두 번 걸음을 옮기는 카홀로(Kāholo), 한 다리씩 앞으로 내미는 헬라(Hela) 등 일정한 훌라 스텝을 밟으면 발바닥 아치에 탄성이 생겨 발은 물론 몸 전체의 근골격계를 싸고 있는 근육들을 부드럽게 해준다.
흔히 발을 '제2의 심장'이라고 부르는데, 발이 심장에서 보낸 혈액을 받아 다시 온몸으로 보내는 펌프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맨발을 내놓아야 하니 자연스레 발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발꿈치였다. 발꿈치는 나이 들수록 건조해져 갈라지기 쉽다. 매해 겨울마다 발꿈치가 갈라져 밴드를 붙여야 했다. 이제는 샤워할 때마다 도구를 이용해 문질러 주고, 발전용 크림도 사서 틈틈이 바른다. 조금씩 반들반들해지니 일단 아프지 않아 좋고, 기분까지 말랑말랑해진다.
당신은 당신 발을 얼마나 아껴줬나요
그동안 무심했던 내 발을 더 사랑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종일 내 몸을 받아주고, 나를 지탱해주는 발이 아니던가. 발바닥은 몸의 2%밖에 되지 않으면서 우리 몸의 나머지 98%를 떠받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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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하루도 고생한 내 발에 감사를.(자료사진) ⓒ runejohs on Unsplash
오늘 하루도 고생한 내 발에 감사를 전하면서, 나는 발을 조물조물 주물러주고 발가락도 하나씩 하나씩 빼주고 만져준다. 발바닥도 통통통 쳐준다. 발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으면 마음도 편안해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몸을 하나하나 인지하고 아껴주기. 내가 나를 위해주는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한 달에 한두 번 주말 아침, 한강공원에 함께 모여 훌라를 춘다. 이제는 당연하게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맨 땅과 잔디 위에서 훌라를 춘다. 흙이 껄끄럽고 잔디가 따끔거리기도 하지만, 발바닥으로 땅을 단단히 누르면서 나무 뿌리처럼 지구와 연결된다는 느낌이 좋다.
내가 살아가는 땅과 나를 지탱하는 발에 오롯이 집중해보는 것, 훌라를 통해 알게 된 또 하나의 기쁨이다.
공원 벤치 아래 누군가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과 양말을 본다. 맨발로 부지런히 걷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우리 모두 땅의 기운을 받아, 이 지구에서 오늘도 무사히 보낼 수 있기를 마음에 담아 계속 훌라를 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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