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자리한 남산 스퀘어 빌딩
강나루
'중립'을 가장한 가해자 옹호
나는 이런 논란들이 빚어지는 이유는 진화위를 포함한 윤석열 정권이 결국 사건과 역사를 피해자보다는 가해자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약자의 인권이 강자에 의해서 유린당할 때 '중립'이란 미명으로 그저 바라만 보고 눈을 감는 것을 넘어 오히려 가해자의 주장을 적극 옹호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 이것은 단순한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인도주의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의 문제다. 과거의 역사는 '폭력의 역사'였지만 앞으로는 도덕이 중요시되는 역사, 세계일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2기 진화위는 과거 한국전쟁 전후부터 권위주의 정권 시기까지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 인권 침해, 조작 의혹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국가기구로 지난 2020년 12월 출범했다. 한 가지 사건에는 최소한 두 가지 사실이 존재한다. 하나는 가해자가 본 사실이고 또 하나는 피해자가 본 사실이다. 한 국가가 그 사회의 피해자를 어떻게 대우해 주느냐가 그 나라 문명의 수준이고 '국격'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도 제34조(국가의 의무)에서 "국가는 진실규명사건 피해자의 피해 및 명예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가해자에 대하여 적절한 법적·정치적 화해조치를 취하여야 하며, 국민 화해와 통합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말은 진화위의 설립 목적이 국가폭력의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의 처지에서, 피해자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김광동씨의 가해자 옹호 발언들
하지만 현재의 진화위는 어떤가? 윤석열 대통령은 김광동씨를 지난 2022년 12월 2대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김광동씨는 그동안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두둔하는 아래와 같은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일본 덕분에 한국이 나아졌다."
(2008. 7. 《한국논단》 기고 "8·15 건국 60주년을 말한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889500
'노무현 대통령의 제주 4·3사건 사과는 잘못이다.'
(2009. 2. 18.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주최, '국가정체성 어떻게 정립·발양할 것인가' 세미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1913310002753
"4·19 혁명의 진정한 역사적 성격과 의미를 부각시켜 그 정신을 계승·발전시킨 것은 5·16 혁명 세력"
(김광동 저, 《4.19와 5.16 연속된 근대화 혁명》, 2018)
https://www.ytn.co.kr/_ln/0103_202212191719363732
"(박정희 정권의)유신은 위대한 승리의 시작"
(2019. 10. 17.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10월 유신 47주년 기념 토론회')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71762.html
"'5·18 북한군 개입설' 가능성 있다."
(2023. 3. 13.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
"전쟁상태를 평화상태로 만들기 위해 군인과 경찰이 초래시킨 피해에 대해 (희생자) 1인당 1억 3천 200만 원의 보상을 해주고 있다. 심각한 부정의다."
(2023. 6. 9. 서울 영락교회 '6·25전쟁 한국 기독교의 수난과 화해' 주제 강연)
https://www.yna.co.kr/view/AKR20230613155400004
"전시하에서는 재판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2023. 10. 10.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족과 면담 중)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11785.html
"사법제도가 무너진 게 전쟁이다. 계엄령이라는 것은 군 지휘관이 계엄권을 가지고 사법 판단을 하게 되어있다."
(2023. 10. 17. 진실화해위원회 전체회의 중 "즉결처분이 정당했다는 말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12494.html
"노근리 사건은 불법 희생이 아니다. 전쟁 중 부수적 피해다."
(2024. 5. 28. 진화위 비공개 제79차 전체위원회)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42542.html
"한국전쟁 당시 방화나 살인자에 대해선 재판 없이 즉결 처분이 가능했다."
(2024. 9. 13.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
https://www.news1.kr/politics/assembly/5198703
"(불법사찰 피해자)이 사람은 좀 관찰해서 봐야 할 대상이라고 보호해 준 거 아닌가요?"
(2024. 8. 20. 진화위 제85차 전체위원회)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54811.html
"즉결처분은 군법회의를 포함하는 것"
(2023. 10. 26.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13829.html
김광동의 위험한 궤변
빙산의 일각이지만 위와 같은 김씨의 발언을 보면 그가 과연 피해자들의 상처를 헤아려 주고 보듬어 줄 진화위의 수장으로 적합한 인물인지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무는 그 열매로 안다'는 속담처럼 김씨가 그동안 살아온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위의 망언들이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김씨는 지난 1990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그는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안무혁 민주자유당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08년 그는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집필에 참여했다. 이 책은 "일제의 조선 강점이 조선을 근대화시켜 주었기에, 일제의 조선 지배는 오히려 축복"이라는 논리를 폈다(관련기사:
이병도, 이영훈 그리고 뉴라이트"
http://bit.ly/YgUZ5L).
하지만 인간사의 도덕성을 철저히 무시한 김씨를 포함한 뉴라이트교과서 집필자들의 위험한 궤변은 600만의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한 히틀러 같은 독재자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나는 김광동씨에게 묻는다. 가난한 이웃집 아빠를 내가 때려죽이고 그 집 딸을 유린한 뒤 그 집에 돈을 많이 벌어다 주면, 내 살인, 유린행위가 정당화되고 그 집에 오히려 축복이 되는가? 일제 식민지 정권,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을 "우리를 근대화시켜 주고 잘 살게 해 주었기 때문에 불가피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었다"고 정당화하는 것은, 곧 인간 생명과 존엄성을 벌레같이 짓밟으며 히틀러·스탈린이 거둔 이른바 '경제적 성공'을 정당화하고 축복이었다고 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진화위는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 김광동 진화위원장
김씨가 진화위 수장을 맡기 전 과거 발언을 보면 더욱 충격적이다. 그는 지난 2009년 9월 3일 <미래한국>에 기고한 칼럼 〈대한민국 파괴하는 과거사위 정리하라〉의 글에서 '진화위를 없애라'고 이렇게 격렬하게 주장한다.
혁명정부가 아닌 이상 과거사정리위(진화위) 같은 '초법적' 기구는 존재 이유가 없었다. 특히 제주 남로당의 4·3 반란사건(그는 4·3항쟁을 반란으로 정의한다- 기자 주)에서 보듯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시키고 한반도에 소비에트 정부를 만들고자 했던 반란 행위도 잘못된 정부행위에 대한 정당한 저항이자 희생자로 미화시켜왔다. 결국 과거사위의 활동이란 특별법을 근거로 삼권분립을 짓밟고 정상적 법제도와 기존 판결 등을 무력화시키며 '현재'의 정치 논리로 '과거' 역사를 재단하고 있다. 예산지출과 지원 인력 확대를 통해 좌파 내지 친북 세력의 육성과 재생산 기반을 조성하고 있다. 과거사위는 존립해야 할 이유가 없다. 진실규명과 화해의 길이 아니라 역사왜곡과 국민 분열만을 확대한다. 역사파괴이자 대한민국 파괴행위일 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진화위 활동을 극구 반대하고 진화위 무용론을 열렬히 주장한 김씨를 대통령 윤석열은 오히려 그 진화위의 수장으로 임명했다. 또 김씨도 그 자리를 기꺼이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