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용호성 1차관이다.
연합뉴스
지금 보수에 필요한 염치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는 같은 날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라며 "저는 한강 작가님을 그분의 책이 아니라 오래 전 EBS 오디오북의 진행자로서 처음 접했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조용하면서도 꾹꾹 눌러 말하는 목소리가 참 좋아서 아직도 가끔 듣는다. 오늘 기분 좋게 한강 작가님이 진행하는 EBS 오디오북 파일을 들어야겠다"라며 "이런 날도 오는군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한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 또한 "'한강'의 기적이 이뤄졌다"라며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의 큰 도약이자, 우리 국민에게 자긍심을 안겨준 쾌거"라고 구두 논평을 냈다.
한 수석대변인은 "그의 작품이 보여준 독특한 인식과 실험적인 문체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공감과 감동을 주었고, 마침내 세계가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라며 "이번 수상은 한국 문학의 가능성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우리의 문학적 자산이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소중한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 대표가 한강 작가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며 개인의 교양을 자랑할 때, 한지아 수석대변인이 '한강의 기적'이라는 보수세력이 애정하는 문구로 언어유희를 하고 있을 때, 감동은 없고 기시감만 반복된다.
역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를 휩쓸었을 때와 비슷한 풍경이 이번에도 다시 펼쳐졌다. 문화예술계가 정권에 비판적인 작품을 그려낼 때는 '좌편향'·'좌파 기득권' 운운하며 매도하다가, 그런 작품으로 놀라운 성과를 성취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아우라에 기대는 행태 말이다.
한동훈 대표가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했던 일은 잠시 넣어두자. '수사4팀'은 블랙리스트 담당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최소한 집권 여당으로서, 보수 정당으로서, 정치가 문화예술계에 져야 할 책임과 성찰은 보여줘야 하지 않는가.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을 때, 국민의힘은 논평 한 줄 내지 않았다.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사회적 기억' 사업의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은 바로 이전 국회에서의 국민의힘이었다. 여권은 선택적으로 자랑하고, 선택적으로 찬양하며, 선택적으로 침묵하고 있다.
보수 정부에서 정치적 탄압을 받은 한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숟가락을 얹으려 하기 전에, 문화예술계를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눠 탄압을 가한 과거에 대해 반성하는 게 먼저다. 바로 그게 지금 보수에게 필요한 예의와 염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