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의료급여 수급자 중 본인부담상한제 적용 대상자 수 * 12월은 연1회 발췌하는 2종 상한제 포함
서미화 의원실의 정보공개청구 자료
"월 5만 원만 부담하면 되잖아" 식의 결과론적 사고에는 가용 자금 여력이 부족한 수급자들이 환급 전까지 많게는 수십 수백만 원의 진료비를 융통해야 하는 과정에서 겪게 될 불편과 고통에 대한 고려가 결여돼 있습니다.
병원에 가야 될 상황에서도 진료비가 없고, 또 빌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면 상한제는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겠지요. 정률제 때문에 진료비 예측의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점도 함께 고려한다면, 상한제가 정률제의 충분한 보완책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추가 보완책은 충분할까?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복지부 내부적으로 추가 보완책을 검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발표된 건 아니지만, 최근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진료 시 본인부담금 상한선(3만 원 유력)을 설정하는 것과 본인부담금이 면제되는 중증질환 목록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우선 후자의 경우, 본인부담면제 대상이 확대되는 건 바람직한 일입니다. 추후 발표될 구체적 계획을 확인해야 하겠지만, 그동안 나름의 근거와 기준에 따라 대상 질환을 정해 왔다는 점에서 볼 때 사각지대를 완벽히 해소할 만큼 목록이 확대될지 다소 회의적입니다.
질병의 다변화를 제도적 지원 틀에 신속히 반영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일 것입니다. 즉, 발병 또는 증상 악화 시점과 면제 대상자로 선정되는 시점 간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시차에 따라 의료 접근성이 제약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진료 시 본인부담 상한액을 도입하는 정책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환급 전까지 적잖은 돈을 융통해야 하거나, 진료비 예측의 어려움으로 의료이용을 주저하게 되었을 이들에게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상한금 수준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수급자에게는 매번 2~3만 원 내는 것도 큰 부담일 수 있습니다. 500원 정액이었던 약제비 본인부담금의 상한을 5천 원으로 정한 것처럼 외래 진료비 상한선도 기존 정액의 10배 수준 정도로 책정될 것인지 지켜볼 일입니다.
만약 상한선이 충분히 낮게 설정된다면 상대적으로 비싼 진료를 받아야 하는 이들의 부담은 완화될 것입니다. 다만 지난 글에서 강조했다시피 소액 진료를 과다 이용하는 이들에게는 상한선 여부가 아무 상관이 없겠지요.
바로 이 지점에서 복지부에게 묻고 싶은 건, 별 효과도 없이 부작용만 예상되는 정률제를 관철시키기 위해 왜 이렇게 본인부담 체계를 복잡하게 만드는가 하는 점입니다. 지난 글에서 살펴봤듯이 지금도 이미 복잡한데 말입니다.
상한제 사전 적용을 하지 않는 이유
본인부담 방식이 복잡해질수록 정보력이 부족한 수급자들의 의료 접근성은 특히 더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굳이 보완책을 찾자면, 지난해 수립한 '제3차 의료급여 3개년 기본계획'에서 언급했듯이 상한제를 사전 적용하는 방안이 그나마 좀 더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안으로 보입니다.
물론 건강보험 가입자의 경우는 당해 소득 수준에 따라 환급액이 달라지기 때문에 상한제를 사전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의료급여에서는 이미 수급자격 관리를 위한 소득 파악과 의료이용량 확인이 가능한 관리정보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상한제의 사전 적용을 검토하지 않는 까닭이 뭘까요? 상한액에 도달한 순간 본인부담이 없어지기 때문에 '불필요'한 이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일까요? 환급 전까지 당사자가 실제 최종 부담액보다 더 큰 부담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굳이 사전 적용을 할 필요가 없겠지요.
미국도 이렇게 안 하는데...
복지부는 비용부담이 늘어나는 대상자 수와 그 증가분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정률제라고 하는 본인부담 방식이 저소득층 의료보장제도의 기본 취지에 부합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료비가 많이 나올수록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는 건 전형적인 시장 원리에 기초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구매할 능력이 부족해 수급자가 된 이들에게 정률제가 가당키나 한 제도인가요?
물론 많이 방문한 만큼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는 정액제 역시 시장 논리라는 점은 매한가지입니다. 다만 소액의 정액을 책정함으로써 본인부담을 최소화하고 있고, 진료비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덜 시장적인, 그래서 그만큼 더 나은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국가의 저소득층 의료보장(지원)제도를 보더라도 본인부담이 없거나 정액제를 기본으로 하지, 이렇게 전면적으로 정률제를 도입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미국(메디케이드)은 주(州)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연방빈곤선(FPL) 100% 미만에 해당하는 이들에게는 외래 진료비로 최대 4달러(2020년 기준)만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의료부조)의 경우는 사전 허가를 통해 지정된 의료기관만 이용하도록 제한하는 대신에 본인부담금은 면제해주고 있습니다.
비용인상만이 대안은 아니다
이쯤에서 복지부의 정률제 도입 논리를 환기해보면 이렇습니다.
① 과다의료이용 문제(재정부담) → ② 이용억제 조치 → ③ 비용부담 증가(비용의식 제고) → ④ 정률제 도입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과다 이용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②)에서 보더라도 ④번이 왜 문제인지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이제 이용억제 조치가 꼭 비용부담 증가(③)여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적정' 의료이용을 위한 조치는 수요자(환자) 측면 외에도 공급자(병원)나 제도적 측면에서 이뤄질 수 있습니다.
공급자 측면에서는 과잉진료 기관에 대한 실태조사와 감독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겠지요. 또 환자 유인과 본인부담금 미수령 등 부적절한 행태가 적발된 경우에 진료비 삭감·환수 등의 제재 조치를 강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도 차원에서는 건당 비용을 보상해 주는 현행 행위별수가제에서 묶음 지불방식과 같이 과잉 진료를 억제하는 데 보다 효과적인 지불보상체계로 개편을 추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환자 측면에서는 비용 접근 외에도 이미 많은 정책들이 의료이용 통제를 위해 활용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상 '과다이용자 계도사업'이라 볼 수 있는 의료급여사례관리를 비롯해 의료급여진료비 알림서비스, 요양급여일수상한제, 선택의료급여기관제(아래 '선택기관제')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복지부는 그동안 이러한 비재정적 수단을 동원했음에도 과다 이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니, 비용인상책을 쓸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주치의제의 '문지기 역할(게이트키핑)'을 통해 불필요한 이용을 억제하는 방안은 아직 '제대로' 시도된 적이 없습니다.
선택기관제를 기획할 당시만 해도 단지 '병원쇼핑'을 억제하는 용도 뿐만 아니라 주치의로서의 역할까지 염두에 둔 것이기도 했지요. 당시 정부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수급자들이 건강문제가 발생하여 진료를 받아야할 경우 우선적으로 찾아가서 진료 서비스를 받고, 상담할 수 있는 의사제도로 일차진료의 지속성, 접근성, 책임성, 포괄성을 높이고자 하는 제도"
물론 그동안 이러한 취지에 무색하게 운영돼 왔지만, 이런 목표를 가진 의료이용·건강관리 모델의 필요성마저 퇴색될 수 없습니다. 큰 정치적, 재정적 부담을 져야 하는 전국민 주치의제와 달리,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와 재정 투입이 동반된다면 의료급여에 한해서 선제적으로 주치의제를 도입하는 것이 영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올해 7월부터 장기입원자들의 지역사회 복귀와 정착을 지원하는 '재가 의료급여 사업'이 전국으로 확대되었지요. 정부는 여기에 머물지 말고, 적정 의료이용 유도와 건강관리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수단으로 전체 의료급여 수급자를 위한 통합적 건강관리 체계 구축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연재 글에서 좀 더 이와 관련된 논의를 다루겠습니다)
이렇듯 수급자의 건강권 보장에 기여하면서도 과다 의료이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존재합니다. 복지부는 이를 잘 알고 있음에도 정률제를 통한 비용부담 증가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이제 정률제가 왜 개악일 수밖에 없는지 잘 이해되셨으리라 믿습니다. 개악이 달리 개악인가요? 이리저리 봐도 문제면 그게 바로 개악이지요.
이런데도 정률제 도입을 강행한다면, 지난 글에서 '비윤리적'이라고 말했던, 즉 "과다 의료이용이 얼마나 되는지 상관없이 재정 절감을 위해 의료이용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 바로 건강을 책임지는 당국의 '진짜' 입장임을 자인하는 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복지부가 왜 이렇게까지 의료급여 진료비 지출 통제에 매달리는지에 대해 차근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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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건강불평등 문제와 빈곤층 건강보장제도를 주로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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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률제는 개악... 그 대신 선택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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