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는 귀찮아 퇴고를 싫어하시는 어르신들을 이해할 수도 있다
픽사베이
과거 학생 때 했던 조교를 제외하고, 지금껏 내가 했던 경제활동은 늘 강사였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그 성장을 보는 게 일이었지만 그게 '기쁨'까지 갔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홀로 서울살이 하던 20대 시절의 강사는 그저 내겐 생존방식이었고, 전업주부가 된 지금은 그게 사회적 명함을 간신히 유지하는 수단이라서 그랬다.
생각해 보면, 수강생에게 시민기자를 제안한다고 해서 내게 돌아오는 혜택은 없다. 수업시간에 할 수 없으니 따로 시간 내서 하는 잔업이다. 시간당 페이를 받는 떠돌이 강사에게 가장 비효율적인 일이다.
효율성만을 따지며 일했던 강사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기쁨을 느낀다는 건, 언뜻 보면 이율배반적일 수 있겠다. 그러나 그 기쁨은 숫자로 셈할 수 없는 관계의 본질에서 비롯된다.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란 질문에 드디어 대답할 말을 찾다
누군가의 성장에 손을 보태고, 그로 인해 그 사람의 세상이 조금 더 넓어졌다는 걸 목격하는 순간, 내 안에서도 무엇인가가 넓어지는 걸 느꼈다.
불후의 고전으로 꼽히는 책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거기서 슈워츠 교수는 "삶은 서로 당기는 힘의 연속입니다. 고무줄처럼 양극단 사이에서 당겨지며, 대부분의 사람은 그 중간 어딘가에 살아갑니다"라고 말한다.
강사로서 나는 늘 '시간과 효율'이라는 한 극단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수강생의 글을 퇴고하고, 시민 기자로 첫발을 내딛게 돕는 일은 나를 또 다른 극단으로 끌어당겼다.
그것은 '효율성'이라는 잣대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한 감각이었다. 타인의 성장은 내가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나 자신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비춰준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돈도, 성취감도 아니었다.
그 자리에는 진심으로 연결된 관계와 서로를 북돋아 주는 손길이 깃들어 있었다. 효율성을 따지는 일은 잠시 내려놓고,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인간다운 기쁨에 젖어 있을 수 있었다.
이렇듯 삶의 고무줄은 늘 한쪽 방향으로만 팽팽하지만은 않고, 그 반대편에서 나를 부드럽게 끌어당기기도 한다.
정지우 작가님이 말한 '나만 성장하다가 공허해지는' 경지까지 간 적이 없기에, 실은 책을 읽으면서 나는 타인의 성장까지 간섭하는 것은 어쩌면 오지랖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각 수준에서, 할 수 있는 한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제부터라도 한 번씩은 고무줄의 반대 끝까지 힘차게 달려가 비효율적인 일을 해보려 한다. 그 경험이 축적됐을 때 보일 새로운 기쁨을 더 많이 갖고 싶어졌다.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말이 그렇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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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 따지면 돈 안 되는 일, 그런데 이리 기쁘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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