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속넣기
정현순
그 말이 가시기도 전에 남편과 둘이 김장을 끝내 버렸다. 그 사연은 남편이 주말농장을 간다고 나가더니 갑자기 김장 거리를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늦은 주말 저녁이었다. 왜 갑자기 김장 거리를 가지고 왔냐고 물으니 주말농장 사람들이 전부 김장을 하고 딱 2, 3집만 남아서 간 김에 뽑아왔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그러니 마음이 급해졌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집에 옮겨놓은 배추, 무 등 김장거리를 보니 심란해졌다. 차라리 얼른 해치우는 것이 속이 편할 듯했다. 올해 김장은 10포기만 할 거니깐 제발 배추를 많이 심지 말라고 봄부터 남편에게 신신당부를 했었다. 나도 이젠 힘들어서 많이 못 하겠다면서.
그리고 김치 한 통이면 둘이 먹어도 거의 50일 정도 먹으니 그렇게 많이 할 필요도 없었다. 남편은 진짜 딱 배추 10포기와 무 15개를 뽑아왔다. 그중에서 배추는 배춧국 끓여 먹으려고 1포기 남겨 놨고 무도 5개는 남겨 놨단다.
김장 거리를 보니 남편과 둘이 해도 괜찮을 듯했다. 딸과 며느리에게 연락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연락을 하지 않았다. 미리 연락하지도 않았고, 주말 저녁이니 애들도 계획이 있을 터. 연락하는 것이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살림 경력이 50년 이상이 되니 배추 9포기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양이었다. 그거 조금 하는데 식구 모두가 고생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냥 혼자 조금 힘들고 말지.
풀어놓은 소금물에 배추를 절이고 남편은 무와 파, 갓 등을 다듬어 씻어 주었다. 오밤중에 계획에도 없던 김장을 시작하니 조금은 분주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마늘과 생강 같은 것은 미리 다 준비해놓아서 그나마 도움이 되었다. 내가 하루 잠을 좀 덜 잔다고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새벽 1시에 일어나 배추를 뒤집어 놓고 잠시 소파에서 눈을 붙인 다음 새벽 5시경에 배추를 씻었다. 그다음은 남편과 함께 일사천리로 몸을 움직여 오전 10시 30분경에 김장이 모두 끝났다.
점심으로는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의 중국 음식과 와인 한잔으로 해결했다, 겨울 준비를 끝내고 나니 몸과 마음이 개운하다. 다만 이렇게 김장을 끝냈다고 하면 며느리가 섭섭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은 걱정이 된다. 그럼 "그래 내년에는 꼭 미리 연락할게. 내년에는 꼭 같이 하자"라고 말하면 이해해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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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한테 연락 안 해" 확 달라진 김장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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