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9 혁명 당시 고등학생들이 시위하는 장면
부산민주공원
알다시피, 우리 역사의 변곡점마다 고등학생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와 해방 후 반독재 민주화운동은 고등학생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1 운동 직후 꺼져가던 독립운동의 불씨를 살린 6·10 만세운동이 그러하고, 3·1 운동과 더불어 최대의 민족운동으로 평가되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아예 학생이 주체였음을 명토 박아 놓았다.
해방을 맞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정의를 향한 고등학생의 열정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민주화운동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2·28 민주운동과 연이은 4·19 혁명은 그들의 피로 일궈낸 역사였다. 당시 대학교수들은 '학생의 피에 보답하자'며 거리로 나섰고, 이튿날 이승만은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하와이로 망명했다.
5·16 군사 정변으로 권력을 틀어쥔 박정희 정권은 학도호국단을 창설하고 학교를 병영화하는 데 혈안이 됐다. 불의에 맞서 역사를 추동했던 고등학생들의 '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획일적이고 엄격한 규율과 상명하복의 병영 문화를 학교에 이식하는 건 그들을 순치시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편이었다.
그러나 폭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학생들의 정의감을 완전히 꺾지는 못했다. 박정희 정권의 이른바 '한일 국교 정상화' 시도를 굴욕 외교로 규정하며 가장 먼저 거리로 나선 이들 역시 고등학생이었다. 당시 교복 차림으로 '이것이 한국적 민주주의더냐'라는 플래카드를 든 채 시가행진하는 사진은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그렇듯 서슬 퍼런 시절 무소불위 권력에 거침없이 '맞장 뜨던' 고등학생들이 언제부턴가 몸을 사리기 시작한 것이다. 교육열과 무상교육의 확대로 진학률은 급격히 높아졌지만, 정치적 참여 의식은 시나브로 흐릿해져만 갔다. 정치적 참여가 공동체를 향한 관심의 지표일진대, 배움이 커질수록 되레 정치적 무관심이 팽배해져 가는 모양새다.
교과서엔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4·19 혁명의 대열에 나섰다 숨진 여중생의 사연이 소개되어 있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한강의 작품 <소년이 온다>의 모티프가 된 인물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는 사실에도 요즘 아이들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그때와 지금의 중학생을 단순 비교하면 곤란하지 않냐며 되묻기도 한다.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맥락'이 현재와는 달라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유식함을 뽐내려는 아이도 있다.
고등학생도 교사도 정치적 무력감
기실 그들의 말에는 뿌리 깊은 무력감이 배어있다. 현 정부 들어 우리 사회가 모든 영역에서 수십 년 전으로 퇴행하고 있다는 걸 모두 절감하고 있지만, 고등학생이 나선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라고 여긴다. 어느 누가 대학생도 아닌 고등학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느냐는 거다. 안타깝게도, 그들 태반은 스스로 어리고 미성숙한 존재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웬만해선 학교 교육이라는 규정된 틀과 범주 밖으론 관심을 내보이지 않는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학교의 교칙에는 정치적 결사를 조직하거나 행사에 참여하기만 해도 처벌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정치적 관심과 참여는 학생의 본분을 망각한 일탈 행위로 치부됐던 셈이다.

▲수험생 기다리는 학부모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1월 14일 오후 대전 서구 둔산여고 시험장에서 수험생 학부모들이 자녀를 마중 나와 있다.
연합뉴스
아이들의 무력감만 탓할 일도 아니다.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들 또한 마찬가지다. 박정희 정권을 비롯한 군사독재 정권에서 교사를 포함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조항'을 악용해 수십 년 동안 그들의 의식과 행동을 옥죄면서 교사는 '정치적 금치산자'로 전락해 버렸다. '공무원은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기 위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국가공무원법 규정으로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헌법 조항을 무력화한 것이다. 헌법 정신이 하위 법률에 휘둘리는 형국이다.
'정치적 금치산자'로부터 교육받은 아이들에게 정치적 관심과 참여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일 수밖에 없다. 정치적 의사 표현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학생인권조례가 무기력해진 것도, 당장 교실에서 교사의 정치적 의사 표현이 제한된 탓이 크다. 교사의 정치적 소외와 무력감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염되는 건 당연지사다.
온존한 학벌 구조에 기댄 대학입시 체제는 교사와 아이들에게서 일말의 정치적 관심을 끊어내는 '그로기 펀치'로 작용했다. 독재정권이 교육열에 기대어 민주주의를 향한 고등학생들의 열망과 정치적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는 데에 대학입시는 안성맞춤이었다. 정치적 관심보다 기출 문제 하나라도 더 푸는 게 삶에 더 보탬이 된다는 비루한 인식을 이젠 교사들조차 부끄럼 없이 쏟아내고 있다.
불공정과 몰상식이 판치며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이 엉망진창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지만, 교사들 역시 '뒷담화'만 가득할 뿐 나서려는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는다. 누구는 '태풍 전야'라고 한껏 운을 띄우지만, 모두가 후환을 두려워하는 눈치다.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망설이는 교사들의 모습이 '나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그럴 수 없어 속만 부글부글 끓이고 있다'는 고3 아이와 데칼코마니처럼 포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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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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