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편 취소를 알리는 공항 전광판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자 인천공항 비행기가 다시 취소 됐음을 알리는 전광판
추미전
짐은 인천공항까지 연결을 해 버렸는데, 이륙은 취소가 되고 대체 어떻게 하란 것인가. 허둥대다가 일단 하룻밤을 묵어야 하니 호텔을 또 찾아야 했다. 샤를 드골 공항을 헤메고 있는데, 또 한 무리의 한국인을 만났다. 모두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한 사람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파리로, 한 사람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파리로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편 비행기가 정해지지 않아 공항을 헤메고 있었다. 오후 9시, 불이 꺼져 가고 텅텅 비어가는 유럽 공항에서 한국인 여행자들이 한국 항공사를 찾아 헤메고 있지만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모든 걸 포기하고 여권과 지갑 외에 아무것도 없이 공항 호텔로 들어오니 호텔 안에 칫솔도 없다. 프랑스 파리의 호텔은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적인 이런 것들이 갖춰지지 않은 곳이 흔하다. 친환경적이라고 해야 하나? 고객의 편리를 생각해 주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할 수 없이 5유로나 주고 칫솔 하나를 사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그러나 하룻밤을 묵는다고 해서 연결편이 마련될 것인가? 서울 시간을 검색해 보니 파리 기준 밤 12시가 되면 서울이 오전 7시로 공항의 국제업무가 시작된다고 한다.
결국 잠도 자지 않고 12시까지 기다려 전화를 돌렸으나 1시간이 지나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휴대폰을 집어 던져 버리고 싶지만 참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겨우 2시간여 만에 전화가 연결됐다. 물론 항공사 직원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겠지만 돈 쓰고 시간 쓰고 잠도 자지 못한 채 불안에 떠는 여행자들의 고충도 말이 아니다.
서로가 한껏 인내심을 발휘하며 통화한 끝에 항공사가 마련한 또 하나의 대안은 다시 체코로 이동하여 체코 프라하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저녁 귀국편 비행기를 타는 것이라고 한다.

▲ 중부지방에 내린 많은 눈으로 항공기 운항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28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도착층 전광판에 여객기 결항 및 지연 안내가 다수 표시되고 있다. 2024.11.28
연합뉴스
원래 귀국을 예정했던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시간일 뿐더러, 무려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파리로, 다시 체코로 가방 없이 이틀 동안 3개국을 이동하는 기가 막힌 여정이다. 그래도 이것마저 수긍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귀국 날짜를 짐작할 수도 없다. 그래 그렇게 하자.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나의 캐리어.
유럽 여행의 가장 강렬한 기억
다음날 일찍 파리 샤를 드골 공항을 찾았다. 어제 짐을 맡긴 에어 프랑스사를 찾아 상황을 설명하고 내가 이동하는 동선, 체코에서 인천까지 가방이 연결되도록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데스크의 직원은 혀를 쯧쯧 차며 참 긴 여정에 피곤하겠다고 말을 한다.
캐리어 연결까지 마친 시간은 오전 11시, 체코행 비행기는 밤 9시다. 그리고 샤를 드골 공항은 파리의 관광 중심지인 도심과는 너무 멀리 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이동하려면 왕복 3시간은 각오해야 한다. 다시 버스를 타고 파리 중심으로 나갈 것인가? 공항에 머물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기에도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파리의 공항버스는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 것으로 악명이 높아 잘못하면 체코행 비행기를 타는데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결국 하루 종일 공항에 머물기로 했다. 그나마 공항 곳곳에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데스크가 있어 원고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원고작업중 샤를 그돌 공항에서 10시간 기다리며 원고작업중
추미전
그러나 저러나 나의 국제 난민 표류기는 언제 정확히 끝날지 아직 알 수가 없다. 체코 프라하 공항에 내린 순간 또 어떤 문자가 올지 불안하다.
이제 117년만의 폭설도 그만 그쳐주길, 화사한 겨울 햇살에 쌓인 눈이 빨리 녹길. 그래서 나처럼 유럽 공항을 떠돌고 있는 한국 난민 여행자들이 하루 빨리 귀국길에 오르길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기도하고 앉아 있다. 마음은 타 들어가지만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보는 일몰은 아름답기만 하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본 일몰 샤를 드골 공항에서 하루 종일 머물며 지켜본 일몰
추미전
2주간의 짧은 여행, 나름대로 준비 한다고 했지만 계획하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그래서 인생과 여행은 닮았다는 말을 하는 것일까? 계획대로 되는 여행도 드물고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인생도 드물다. 그래도 항상 반전은 있는 법,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 생고생을 한 이번 표류기는 유럽 여행의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4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방송작가, (주) 바오밥 대표,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 원장
공유하기
한국 폭설 때문에 이런 일까지...밀라노에서 파리로, 다시 체코로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