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펭귄 생포 작전 남극 펭귄 생포 작전
비룡소
나는 늦은 마흔 살에 남들보다 타고난 글재주가 있다는 걸 알았다. 너무 늦게 안 것 같아서 억울함이 밀려왔다. 중고등학교 때 나의 타고난 글재주를 발견했다면 지금쯤 어땠을까? 어쩌면 12월에 스웨덴 스톡홀름에 갔었을 수도.
아들이 대학 진로를 고민할 때였다. 나는 이때다 싶어 마흔에 발견한 나의 타고난 재능 이야기를 해 주면서, '남들의 시선이 아닌 스스로가 즐거운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은근슬쩍 말을 건넸다. 그러자 아들이 정색하며 대꾸했다.
"아빠처럼 타고난 재능을 알고 있다면 내가 뭐가 고민이겠어."
"적성 찾는 교육과정은 없어?"
"그딴 게 어딨어. 좋은 대학 가면 최고지."
나는 그제야 알았다. 40여 년이 흘렀지만, 변한 게 없다는 걸 말이다. 변한 거라곤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 나 어릴 때는 사람들이 온통 판검사만 되면 인생이 비단길인 것처럼 말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게 의사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모든 생명체에는 타고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두더지에겐 땅을 잘파는 능력이, 사자에겐 날카로운 이빨이, 토끼의 튼튼한 뒷다리가, 사슴이 재빠르게 달리는 능력이 없었다면 38억 년 진화 과정에서 사라졌다.
인간도 생명체다. 당연히 인간 개개인에게도 탁월한 능력 하나는 반드시 지니고 태어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변을 바라보면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감수성이 예민하여 피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의대에 가면 평생 후회하는 것처럼, 사슴이 토끼를 잡아먹고, 사자가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아무리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라고 해도, 토끼를 잡아먹는 사슴이 행복할 수 없다. 풀을 뜯어 먹는 사자가 순간의 행복은 느낄 수 있겠지만, 끝내는 불행한 상태로 삶을 마감할 거라는 걸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남극 펭귄 생포 작전을 쓴 이유는 독수리가 창공을 날고, 사자가 사슴을 사냥하고, 사슴은 초원을 무리 지어 뛰어다니며 싱싱한 풀을 뜯어 먹듯이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반전 가득 청소년 소설, 성인소설가가 쓰게 된 이유
4년 전이었다. 소설에 쓰려고 펭귄 자료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오동통한 몸, 느릿느릿한 걸음, 사람을 만나도 도망가지 않는 친화적이고 온화한 성격. 그리고 수만 마리씩 무리 지어 생활하는 펭귄<남극 펭귄 생포 작전 30쪽>'
그때 생각했다. 이런 펭귄이야말로 인류의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말이다.

▲남극 펭귄 생포 작전 작전을 하게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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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줄거리를 작성하여 아들에게 보여주었다. 아들은 줄거리를 보자마자 기발한 발상이라고 하면서 꼭 완성 해보라고 했다. 나는 아들의 응원을 받아 곧바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순수문학만 하던 나에게 남극은커녕 이웃 나라 가는 것도 한참 걸렸다. 작가는 탄광 막장일보다 더 노동의 강도가 세다. 당연히 글을 쓰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작가가 될 수 없다. 남극 가는 길을 잃은 나는 흥미를 잃고 포기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픽사의 스토리텔링 기법에 관한 글을 읽고, 다시금 도전했다. 펭귄을 생포하러 남극으로 향했다.
그렇게 만든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가상의 나라인 서칸쿠공화국의 영웅 전사로 살아온 노인 K1은 4년 동안 준비한 일생일대의 마지막 작전인 '남극 펭귄 생포 작전' 준비한다. 평등과 공평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 누구나 행복한 나라가 된 공화국의 유일한 오점인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펭귄을 잡아와 대량 사육해 식량 문제를 해결할 작전이다. 이 작전에 우연히 공화국에서 기생충이라고 불리는 소년 바탈과 K1을 죽이고자 남극까지 따라온 이슬람인 샤이마가 함께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남극에 도착하지만, 펭귄의 본래 모습과 대면하면서 밀려온 절망과 반전 등 그들의 모험은 급변하는 해류처럼 알 수 없는 운명을 향해 달려간다. 이 과정에서 바탈이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는다.
주인공 바탈과 함께 남극 주변과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동안 한없이 행복했다. 하지만, 모든 글쓰기가 그렇듯이 내가 올바르게 쓰고 있는지에 대한 불안함을 늘 곁에 두고 있을 수밖에 없다. <남극 펭귄 생포 작전>은 불안함이 더 했다. 처음 써보는 청소년 소설이기 때문이었다.
공모전 떨어졌는데 연락이 왔다

▲바탈 바탈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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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완성하여 한 청소년 소설 공모전에 응모했다. 초짜가 비벼볼 그런 공모전이라면 모를까, 워낙 명성이 자자한 공모전이라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잊고 있다가, 공모전 담당자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공모전에는 탈락했지만, 내 작품을 출판하고 싶다고 했다. 공모전 탈락 작품을 공모전 주최 측 출판사에서 출판하는 경우는 아주 이례적일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출판사가 이와 같은 파격적 행보를 보인 건 청소년 심사단 100명이 압도적으로 지지를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남극펭귄생포작전 청소년 심사단 심사평 남극펭귄생포작전 청소년 심사단 심사평의 일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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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나를 기쁘게 한 건 <남극 펭귄 생포 작전>이 비룡소 블루픽션 시리즈 85번째 작품에 등재되었다는 점이다. 블루픽션 시리즈로는 영원한 SF의 고전 '기억전달자(로이스 로리)', 2차 대전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참혹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명작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존 보인)', 인간 복제를 다룬 소설의 원조이며 SF의 걸작 '전갈의 아이(낸시 파머), 10살부터 100살까지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 최근작 '순례 주택(유은실) 등의 명작들이 즐비하다.
이런 시리즈에 <남극 펭귄 생포 작전>이 포함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요즘 애들'과 '꼰대'의 소통은 가능할까
인류 문명이 시작되면서부터, 어쩌면 그 이전부터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었'다. 기원전 8세기 신들의 계보 저자 헤시오도스는 '지금의 청년들은 지나치게 약삭빠르고 규율을 참지 못한다.' 고 했으며, 기원전 5세기 소크라테스는 '요즘 아이들은 버릇 없다.'고 일갈했다. 서양뿐만 아니다. 기원전 3세기에 쓰인 한비자에는 '지금 덜떨어진 젊은 녀석이 있어'라고 적혀있단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어떤 기성세대는 꼰대로 불릴 것이고, 어떤 젊은이는 영원히 버릇이 없게 여겨질 것이다. 그럼에도 인류는 이야기를 만들어 세대와 세대 간 지혜를 축적했고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청년 세대가 보기에는 대부분 기성세대가 꼰대 같겠지만, 나는 그럼에도 이따금 존경할 만한 걸 발견한다. 나도 젊었을 때 그랬다. 어른들 잔소리가 싫었지만, 이따금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세대를 아우르는 감동을 주는 작품을 고전 명작이라고 하며, 이런 말을 남긴 분을 성인(聖人)이라고 한다.
나는 성인(聖人)도 아니고, 고전 명작을 남길 그런 작가도 아니다. 진작에 내 타고난 소질인 글쓰기를 알았다면 명작을 남길 수도 있었겠지만,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다. 명작을 남기는 건 다음 생으로 미뤄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이 글을 읽고, 나처럼 늦은 나이에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자신의 타고난 재능이 무언지 모르고 돈과 명예 만 쫓다가 삶을 마감하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도록.
작품 속 주인공(바탈)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소중한 능력을 찾아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지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멋진 삶을 사는 청춘이 이 소설을 읽고 한 명이라도 생긴다면 작가로서 더는 바랄 나위가 없겠다.

▲아찔한 작전 남극 펭귄 생포 작전
비룡소
남극 펭귄 생포 작전
허관 (지은이),
비룡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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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에서 24년간 근무했다. 현대문학 장편소설상과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최근작『남극 펭귄 생포 작전』(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블루픽션-85)은 2024년 경기문화재단 경기예술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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