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단둘이 여행갈래?'라는 제목의 이효리 사진전, 뜨거운 여름 7월에 딸과 함께 다녀왔다.
한현숙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들의 처지와 심정은 어쩜 그리 닮았을까? 뜨겁고 아프고 묵직한 서사는 어쩜 이리 비슷할까.
사회적으로 성공한 유명인이든, 아주 오래전 세대의 사람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처지의 딸이고 엄마이고 또 딸들이었다. 가수 이효리와 엄마, 엄마인 나와 나의 딸, 그리고 딸인 나와 우리 엄마처럼!
이효리 모녀와의 갈등과 오해, 사랑 그리고 이해와 대화의 과정을 사진을 통해서, 그림을 통해서 지켜보니 세상의 모든 모녀들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사진전 곁 카페에선 자신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의 상기된 얼굴을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었는데, 다들 뭉클하면서도 아쉬움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금쪽같은 하나뿐인 내 딸! 엄마가 돌아가실 즈음 자주 되뇌던, 실은 딸인 나를 이르는 말이었다. 나는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었고, 오빠를 잃은 후에는 유일한 자식이기도 했다.
엄마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만으로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엄마의 기쁨이 되고 싶었기에, 생기 없는 엄마를 웃게 하기 위해 나는 당시 열심히 공부했고 성실하게 생활했다. 엄마가 나에게 거는 기대나 행동이 특별하게 다가왔기에,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튼튼한 징검다리가 되었다.
결혼 후에도 살림에서 육아까지 모든 것을 챙기던 엄마의 사랑과 희생. 그저 감사하게만 느껴지던 이것이 굴레가 되어 나를 괴롭히고 우리의 관계를 어그러트리게 될 줄은 당시 꿈에도 몰랐다. 활력이 왕성하던 엄마가 갑자기 몸져 누우면서 모든 게 바뀌었던 것이다.
엄마는 우리 집에 머물고 있었다. 육아와 살림, 출근으로 허덕이던 나는 당시 엄마의 관심을 집착이라 여기며 벗어나기를 원했다. 딸과 사위의 병시중이 미안해서 감당하지 못해 내는 엄마의 큰소리, 딸인 나는 '엄마는 제발 나를 믿고 그만 억지를 부리라'며 같이 소리를 높였다.
딸 집에서의 생활, 즉 사위와의 동거를 마치 아들 집에서의 그것처럼 차이 없이 받아들이기 힘든 건 엄마 탓이 아니고 세대의 관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그 생각 고루하다며 그만하라며 귀를 막았었다.
엄마도 사실 투정 부리고 싶은 상대가 필요했을 뿐인데, 아픈 몸과 병들어가는 마음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 하나면 충분했을 텐데. 아쉽게도 난 그런 딸이 되지 못했다.
엄마에게 전하지 못한 진심
그땐 죽을힘을 다해 엄마를 봉양하면서도 다 까먹어버린 듯 말로는 진심을 전하지 못했다. 효도의 출발은 '혀(舌)도'에서부터라는데, 부드러운 말투를 전혀 쓰지 못했다.
이 말을 하는 엄마의 속내와 진심은 '예전처럼 너를 도와주고 싶은데 몸이 아파 그러지 못하니 엄마가 참 속상하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당시엔 "(너희도) 내가 귀찮을 거야. 사위는 내가 얼마나 싫겠니? 이제 내가 쓸모가 없으니 어서 나를 요양원으로 보내라. 아마 곧 그러겠지만!"이라고 말해 나를 아프게 했다.
나의 진심 또한 '엄마 걱정하지 마요. 엄마가 우리를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데, 제가 끝까지 엄마를 보살필 거예요. 저를 믿어요'였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엄마, 정말 그 소리 듣기 싫어요. 이제 제발 그만하고 나를 좀 믿어. 내가 그렇게 못된 딸로 보여요?"라며 진심을 덮어 버렸다.
그저 부드러운 말투로, "엄마를 사랑하고, 그러니까 함께 있고 싶어요!"라고만 하면 되었을 일을.

▲ 당시병상에 누워 고생하는 엄마에게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가 들꽃으로 꽃반지를 만들어 할머니 손을 예쁘게 꾸며주었었다. 돌아보면 너무나 그리운 아름다운 시절이었음을 지금 느낀다. 엄마, 사랑해요.
한현숙
다행히 근무 중이던 나는 연수의 기회를 얻어 약 1년 동안 쉴 수 있었는데, 이때가 엄마와 화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돼 주었다.
바쁜 생활에서 벗어나 몸이 덜 피곤하니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고, 그 여유는 엄마를 이해하는 고운 말씨가 되어 우리의 상처와 오해를 보듬어 주었다.
"엄마, 이렇게 키워주셔서 감사드려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 미안해요"를 내가 조용히 되뇌면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 미안하구나. 고맙다"라며 응답하셨다. 부드러워진 나의 말씨가 가져온 선물이었다.
과거 딸에 대한 나의 마음또한 상황은 비슷했다. 말과 행동이 따로 놀았다. 나는 '딸인 네가 혹시라도 시험에 떨어질까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거야'인데, 딸에게 말로는 "너 좀 더 일찍 일어나고, 약속도 줄이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되겠니?"라며 안 그래도 아픈 아이 마음을 긁어 버렸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 이 또한 그저 다정한 눈빛으로 "많이 힘들지? 곧 좋은 날이 올 거야! 오늘도 힘내 보자!" 하면 되었을 텐데 말이다.

▲ 10년 전 우리에게 사랑을 주고 떠나신 엄마는 여전히 우리의 사랑이다. 훌쩍 성인이 된 세 딸들은 여전히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사랑한다. 할머니가 계신 곳에 자주 들러 할머니를 추모한다.
한현숙
진심은 진심으로만 있는 그대로 전달하면 되는데, 그때는 왜 그랬을까? 진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채 엄마를 보내드렸다면 그 뒤에 나는 얼마나 가슴을 때리며 후회했을까?
서로의 마음을 돌아보고, 고치고, 풀어낼 시간을 만들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엄마를, 딸아이를 끝내 놓칠 뻔한 그 시간을 생각하면 오싹한 느낌마저 들어 가슴을 쓸어 내리곤 한다.
요즘도 마음이 다시 어지러워지는 날이나, 복에 겨워 방심하는 날에는 책상 위에 있는 딸아이의 분홍 편지를 꺼내 다시 읽어 본다. 감사를 매일 연습하며, 진심을 진심으로만 전하는 방법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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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국어 교사, 다음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 가족여행, 반려견, 학교 이야기 짓기를 좋아합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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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다' 울던 딸... 그 사건이 모든 걸 바꿔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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