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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해고와 항암... 생활은 어떻게 했냐고요?

[백세인생, 준비 이렇게] 직업상담사 취득... 은퇴자들 보니 이모작 아닌 '다모작'

등록 2024.12.16 10:44수정 2024.12.1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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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인생'이란 말이 흔히 쓰이는 요즘, 통상 60대에 은퇴한다 해도 그 뒤 약 40년을 더 살게 됩니다. 이 시기를 잘 보내려면 경제적, 비경제적으로 어떤 준비들이 필요할까요? 6070 시니어 기자들이 이 시기를 준비하고 맞이한 이야기, 일본과 호주 등 노인연금 해외사례를 알아봅니다.[편집자말]
지난 9월 개봉한 영화 <해야 할 일>에서는, '구조조정'을 담당했던 인사팀 팀원들도 결국엔 회사를 떠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나 또한 IMF 시절 인력관리부장으로, 기울어가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를 정리해고해야 하는 '악역'을 맡았다. 배가 뒤집어지지 않으려면 짐을 바다에 버리든가 사람을 뛰어내리게 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나는 회사에서 대표에게 '토사구팽', 해고당하고 말았다.

이후 새로운 직업을 찾기로 했다. 나이 50에 '강퇴' 당했지만 살아가는데 자신 있었다. 20년 성실하게 근무한 열정이라면 어딜 가든 해낼 것 같았다. 내손으로 자른(?) 사람들은 나중에 회사에서 마련한 일로 삶을 이어갔지만 나는 단호히 거부했다. 더 이상 굴욕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길과 도전

그래서 나는 과거 이력과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동종업계 사람을 전혀 보지 않고 연락도 끊었다. 그만큼 내가 당한 수모가 삭이지 못할 정도로 컸지만 위기를 새로운 인생의 기회로 삼고 싶었다.

1년의 방황과 고민 끝에 나는 아파트 등 건물관리분야로 진출하기로 마음먹고 필요한 전문자격증을 취득했다. 주택관리사, 공인중개사, 건물관리사 등 자격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재취업현장에 도전했다. 그때만 해도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관리하는 관리분야가 떠오르는 직종이었다.

 주택관리사 자격증
주택관리사 자격증 이혁진

아파트관리업체 몇 군데 면접을 보고 그중 한 곳에 출근할 무렵 2001년 12월 갑자기 배에 통증을 느꼈다. 검사결과 위암이었다. 다행히 초기로 진단돼 회복하면 재기할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2002년 봄 수술 후 암치료에 전념했다.

그러나 모은 돈과 퇴직금은 턱없이 부족해 생계는 막막했다. 국민연금은 88년도 시작할 때 가입했지만 이를 타려면 15년을 더 부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가 쌈짓돈과 대출을 얻어 식당을 차리겠다고 나섰다. 죽어가는 남편과 가족을 살리려는 몸부림이었다.


아내는 조그만 식당을 시작했다. 나로선 부끄러운 일이었다. 집안 살림만 하던 아내에게 험한 일을 시키고 나는 집을 지키는 신세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2004년 봄에는 아랫배가 또 갑자기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병원에 가보니 이번에는 대장암 말기였다. 위암 초기에다 웬 대장암 말기라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병원에서도 이런 사례는 극히 드물어 우왕좌왕했다. 그러나 위암과 함께 대장암까지 두 개암을 동시에 치료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때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사는 날까지 가족들에게 속죄하고 싶을 뿐이었다. 이러한 투병과정을 죽기 전에 남겨야겠다며 쓴 수기가 책으로 나오기도 했다(<암을 극복한 20인 이야기>, 2006, 범우사).


 2006년 암을 극복한 사람들 이야기가 책으로 발간됐다.
2006년 암을 극복한 사람들 이야기가 책으로 발간됐다. 이혁진

거짓말같이 나는 2008년 투병한 지 만 5년 만에 살아났다. 전이된 폐암을 포함하면 세 가지 암이 활동을 멈춘 것이다. 의료진들도 '기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내의 피폐한 삶은 말이 아니었다. 중고생이던 두 아들을 대학 보내고 나를 구해낸 것은 아내의 뼈와 살을 갈고 얻은 것이었다.

암 극복 후 재취업, 다양한 은퇴자 노후 상담

몸을 추스르고 또 재취업에 도전했다. 주택관리사 자격으로 아파트관리소장에 또 자리를 알아보려고 했지만 이 직업이 의외로 몸을 많이 써야 하기 때문에 아쉽지만 포기하고 새 진로를 모색키로 했다. 그새 나이는 50대 중반을 넘었고 취업여건도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동네 사는 지인의 소개로 집에서 가까운 노인복지관으로 출근했다. 복지관을 출입하는 노인들을 관리하고 방문객을 안내하는 봉사직이었다. 무료 점심에 건강도 좋아지고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도움이 안돼 쪼들리는 아내에게 항상 미안했다.

내심 건강이 허락하는 한 최저임금이라도 받는 일을 찾고 싶었다. 취업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복지관에서 내게 노인일자리 업무를 추천한 것이다. 지금 정부가 전국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노인일자리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그때는 초창기였다. 기억하기로 월 70만 원 노인일자리 전담요원 수당을 받았다. 퇴직 후 처음 받아보는 월급이었다.

노인일자리 관리 경험으로 본격적인 취업전문가의 길을 걷기로 했다. 이에 직업상담사 자격을 주경야독으로 취득하고 관련 심리상담자격도 땄다. 이후 취업상담알선기관 취업은 힘들지 않았다. 나이가 핸디캡으로 작용했지만 경력과 전문자격증이 일조했다. 노동부 고용지원센터와 직업계고등학교에서 취업상담원으로 한동안 근무했다.

 직업상담사 자격증
직업상담사 자격증 이혁진

이어 은퇴자의 노후설계와 재취업을 알선하는 전문기관에서 비정규직이지만 10년을 상담했다. 이때 교사, 공무원, 은행원, 군인, 대기업 등에서 30년 내외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사람들을 다수 만났다. 여건은 다르지만 대부분 연금과 퇴직금으로 노후생활은 어느 정도 준비된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이들 중 상당수는 은퇴생활을 하면서 무보수 자원봉사보다 약간의 수입이 보장되는 일을 찾았다. 부족한 수입을 벌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예전의 열정과 의지가 사라져 어렵게 구한 일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했다.

반면에 은퇴라는 말이 무색하게 생각지도 못한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교감으로 퇴직한 분은 수령하는 연금이 상당한데도 오피스텔 건물을 관리하는 일을 6년간 계속하고 있었다. 풍족한 노후에도 일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매일 출근해서 할 일이 있으니 건강도 지속된다. (일이 있으니) 나이 들어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대기업에서 퇴직한 한 분은 개인택시를 운전하고 있는데,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는 기름값과 점심값을 제외하고 한 달 200만 원을 벌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요즘에도 어쩌다 그를 만나면 삶의 여유마저 느낀다.

한편 교직에서 은퇴 후 경로당을 찾아 자기 돈을 써가며 말벗이나 재능을 바쳐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여성도 있었다. 그는 남편과 함께 불우한 이웃과 청소년들까지 돌보고 있다. 이처럼 비슷한 연금을 받으면서도, 경제기반과 다르게 은퇴생활자들의 가치관은 천태만상이었다.

이들 은퇴자들을 상담하고 일자리(자원봉사 포함)를 연계하고 지켜본 시간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으며 내게 진한 감동과 영감마저 전해주었다. 내가 이제는 이모작이 아니라 다모작 인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은퇴 후 어떤 일이든 꾸준히 계속하는 사람들에게 소위 '잡 크래프팅'이 있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일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일류 셰프는, 자신이 레시피로 단순히 요리를 만든다는 식의 차원을 넘어 '나는 고객에게 특별한 맛과 서비스를 선물하는 사람'이라는 사명감을 지니고 있다.

기적의 삶을 기대하며 '통크족' 소박한 꿈 세워

그런데 노후설계 전문가로 인정받을 즈음 또 암이 발목을 잡았다. 2022년 봄 20년 만에 또 다른 암이 발병했다. 이번에는 두경부암, 신장암과 방광암이다.

기존의 세 개암을 포함하면, 모두 6개암이 내 몸에 있는 것이다. 이에 지금은 모든 일을 정리하고 투병하며 또 다른 기적을 바라고 있다(3개암은 현재 특별한 움직임이 없는 상태로 흔적은 남아 있으나 치료가 끝났고, 지금 앓는 3개암은 크기가 줄어들고 있어 이를 2개월마다 추적검사하면서 상황에 따라 항암주사를 맞을 예정이다).

돌아보면, 내가 갑작스럽게 조기 은퇴하게 되면서 아내 또한 풍랑에 휘말렸다. 항암에 투병까지 겹치면서, 자기 인생을 살 수도 없이 가족을 위한 희생만 강요받았던 게 아닌지. 하지만 그럼에도 아내는 남편인 내 알량한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주었다. 내가 늦게라도 아내 말에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고 없이 은퇴를 맞고 오랜 병환까지 겹치면서 생활이 경제적으로 풍족할 리 없었다. 수입은 별반 없고 내 치료비로 거의 나갔다. 아내는 몸이 아파 식당일을 10년 만에 접었다. 이후 생활비를 더욱 줄여야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흑자인생'은 28세부터 시작해 60세 이르는 약 33년이라고 한다. 근로소득이 소비를 초과하는 시기를 말한다. 이점에 비추면 나는 은퇴전후 모든 기간을 소득보다 소비가 많은 '적자인생'을 산 셈이다.

그럼에도 생이 허락하는 한 통크(TONK)족으로 사는 소박한 꿈을 세웠다. 통크족(Two Only No Kids)은 자식들에게 부양받기를 거부하고 부부끼리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현재 부부 둘 다 합쳐 100만 원도 안 되는 국민연금과 약간의 월세수입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그 외엔 일정한 고정수입은 따로 없다. 나는 경제적으로 부족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정도에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더 이상의 과욕은 사치라 생각한다.

은퇴 이후 노후상담과 다양한 은퇴생활을 접하고 깨달은 교훈 역시, 은퇴 준비는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후에 돈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만큼 고령사회 인생 후반에는 비경제적 변수도 많다는 것이다. 다음 편 기사에서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은퇴생활을 언급하고자 한다.

 노후에 돈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자료사진)
노후에 돈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자료사진) pushingho on Unsplash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60대 이상 시민기자들의 사는이야기
#은퇴생활 #고령사회 #재취업 #노후설계 #직업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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