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친정엄마가 나에게 "너는 아들이 없어서 장례식장도 썰렁할 거"라고 했는데, 아니었다.
phictionalone on Unsplash
장례식장 화면에 각 방의 상주와 고인의 나이가 떴다. 남편 나이인 70대는 아예 없었다. 우리 빈소 양 옆으로 고인은 다 90대였다. 그게 억울해서 다시 눈물이 나는데, 손님들이 또 들어왔다. 갑자기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다. 나는 수십 번 반복했던, 똑같은 대답을 녹음기처럼 재생했다.
"응, 열흘 전까지 혼자 이발하러 갈 정도로 멀쩡하다가 갑자기 기력이 달린다며 일주일 동안 누워 있었고 하루 전까지 화장실도 혼자 가다가 엊그제부터 못 일어났고 그대로 가버렸어."
어느 순간, 이 남자가 나 고생 안 시키려고 이렇게 순식간에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을 잘 못 가길래, 주말이 지나면 요양원을 알아보려고 했다. 내가 부축하기에는 같이 넘어질 거 같았다. 요양원에 가도 속옷 세탁은 내가 다 해서 내가 입혀줘야지, 그러고 있었다.
떠나기 3일 전쯤인가, 남편은 말할 기운조차 없는지 방에 누워만 있었다. 병원을 가자고 하면 남편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안 가!'를 간신히 내뱉었다.
그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나는 알았으니 더 기운 빼지 말라고 했다. 그러고서는 사과랑 고구마를 곱게 갈아서 가져다줬다. 남편은 희미하게 웃더니 잘 받아먹었다. 다 먹더니 허공에 손을 흔드는 거다.
나는 그 손을 얼른 잡아채 이불에 넣어주며 팔 아프게 왜 흔드냐고 핀잔을 줬다. 지금 보니 내게 하는 인사였던 거 같다. 이 답답한 사람아, 나 이제 가려고 인사하는 거잖아. 길석아 잘 있어. 나 없어도 씩씩하게 잘 살아, 그거였다.
그 손을 이불에 넣어버리지 말고 그저 꼭 잡아주면서 나도 대답했어야 한다. 그래, 나도 당신이랑 살아서 행복했어. 내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가, 나 당신 없이도 잘 노는 거 알잖아. 그렇게 했으면 그가 가는 길이 조금 더 편했을까.
장례식이 끝나고 애들이 내가 시킨 대로 남편 방을 싹 정리했다. 그랬어도 나는 한동안 그 방문을 열지 못했다. 라디오 틀어놓고 책 보던 남자가 아직 그 방에 있을 거 같았다. 나가는 내게 어딜 가냐 묻지도 않고 잘 갔다 와, 돈 아끼지 말고 맛있는 거 먹어,라고 인사할 거 같았다.
비어 있지 않은 남편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