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없는세상에서 주최한 <양심적 병역거부, 진단과 모색> 국제포럼 제1세션인 ‘대체복무를 돌아보며: 문제점과 개선점’ 에서 발표자, 토론자, 사회자가 단상 위에서 질의응답 중에 있다.
장길완
무책임한 국가와 부재한 시민사회 곁에 방치된 제도
제도를 둘러싼 문제가 중첩되고 고착화된 대체복무 현장에서 자부심과 만족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때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제도로 주목받았지만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실패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양심을 심사한다는 것 혹은 심사받는다는 것의 불가능성을 고민하며 심사제도에 회의를 느끼는 심사위원과 대체역 신청인들, 인권 역량이 낮고 위계적이며 폐쇄적인 교정시설에서 장기간 합숙 복무가 강제된 대체복무요원, 특정 종교 신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주변화되는 이른바 개인 신념 대체복무요원 모두 표류하고 있다.
심지어 교정기관 관계자 역시 대체복무제도가 교정기관에 어떤 공익적 가치를 제공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는 한다. 대체복무요원이 하던 일은 대부분 그간 수용자가 담당하던 노역이었던 만큼 업무는 동일하되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만 교체한 모양새가 되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현재는 교정본부에서는 대체복무요원의 업무를 확대한다는 명목으로 명확한 법적 근거와 유권 해석 없이 CCTV로 수용자를 관찰하는 영상 계호 업무를 대체복무요원에게 시키고 있다.
어떤 면에서 국가가 인권 문제 해결에 자발적으로 앞장서는 사례는 상당히 드물다. 이는 인권이 자신의 몫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 자신의 주장이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들, 자신의 삶의 방식이 세계에 기입되지 않는 이들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반면 국가는 인권의 언어를 번역하고 이해하고 이에 응답하기보다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이에 시민사회가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당사자를 조명하며 해법을 제시함으로써 국가가 인권 정책을 시행하도록 견인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어떤 정책이 제도화되었다고 해도 그것으로 투쟁에 마침표를 찍을 수는 없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도입되었다고 해서 장애차별이 사라진 것은 아니고, 여성 폭력 방지 기본법이 통과되었다고 해서 성차별이 없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도가 만들어진 순간부터 더 나은 제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제도에 포섭되지 않는 또 다른 투쟁이 펼쳐진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대체복무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대체복무제도가 전제하는 기본 개념에 의문을 던지는 일, 제도가 누락하거나 배제한 부분을 포함시키는 일, 제도에 국한되지 않는 사회적 변화를 추동하는 일 모두 중대한 과제다. 그러나 평화운동 가운데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합의된 입장이 없고, 제도의 개선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부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대체복무제도의 표류 역시 계속되고 있다.
병역거부자도 외면하는 제도
개인적인 경험일 수 있겠으나 입대를 앞두고 평화와 양심에 대한 고민을 이어 나가는 주변 동료들도 대체복무를 자신의 선택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현역 대체복무와 비교해서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무게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 예비역 대체복무마저도 시민사회 동료들이 쉬이 선택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병역거부가 양심과 신념의 자유를 실현하고 폭력과 전쟁에 저항하는 적극적 실천임에도 대체역 심사와 복무 과정 전반이 그러한 취지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병역거부자가 대체복무제도를 외면한다고 간단히 설명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전직 장성 출신 심사위원 앞에서 양심의 진실성을 호소해야 하고, 인권 침해적인 규율을 요구하는 교정시설에서 합숙복무를 해야 하며, 의미를 찾기 어려운 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대체복무제도가 병역거부자를 외면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회운동의 오랜 주장처럼 병역을 거부하고 전쟁에 저항하는 일은 모든 이들의 보편적 권리다. 대체복무는 이를 구체화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도입되었고, 이에 누구나 선택할 수 있도록 최대한 문턱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특정 종교의 신자에게 맞춰진 형태로 설계, 도입, 운영되어 대체복무 현장을 일반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있다.
결국 대체복무를 선택하는 병역거부자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당사자가 겪는 문제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으며, 병역거부자의 고통은 여전히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몫으로 남겨진다. 앞서 적었듯이 여기에는 국가가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시민사회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병역거부 운동의 다음 과제
20년 동안 전개된 병역거부 운동 덕분에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었다면, 이제는 그다음 단계에 맞는 전략과 투쟁이 요청된다. 제도 도입 이후 5년이 흐른 지금까지 제도 개선에 관한 별다른 움직임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제도에 대한 입장과 견해조차 불명확한 상황은 충분히 절망적이다.
병역거부를 동시대의 문제로 만드는 데 시민사회가 주요한 역할을 했던 것처럼 대체복무를 평화운동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법과 제도 안팎에서 투쟁을 이어 나가는 작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두기에는 너무 심각한 문제라는 말처럼 제도 역시 국가와 관료에게 맡겨두기에는 너무 중요한 문제다. 더욱이 제도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이들이 제도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서 똑같은 제도라고 하더라도 매우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고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시민사회의 개입이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체복무 제도화는 시민사회가 엄청난 노력과 수고를 들인 영역이지만, 정작 제도화 이후에는 관심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20년 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이 발발하고 이에 반대하는 이들이 거리에 모일 때, 병역거부는 전쟁에 저항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방법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지구 곳곳에서 파괴와 지배가 서슴없이 자행되는 때, 대체복무는 폭력을 끝장내고 세계를 바꾸는 유의미한 결정으로 선택받을 수 있을까? 한국 사회의 남성성, 군사화, 폭력 문화를 고민하는 이들이 대체복무제도를 당사자의 자리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대체복무제도가 병역거부 운동의 미래가 아니라고 선언할 수 없다면, 인권과 평화의 언어가 대체복무제도에 또렷이 새겨질 수 있도록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 군 복무와의 형평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제도의 취지를 왜곡하고, 병역거부를 특정 종교 신자의 선택으로 축소하는 이들이 제도의 한계를 긋는 시도에 맞서 대체복무제도가 민주적 가치를 보장할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한다.
대체복무제도를 개선하는 작업은 시민사회 운동, 그 가운데서도 평화운동의 시급한 과제라고 믿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얼마 전부터 제도 개선을 모색하는 모임이 꾸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5년의 침묵과 공백을 뛰어넘는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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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평화를 위한 대체복무제를 위해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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