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 간담회를 마친 뒤 백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변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두고 어제오늘 보도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단어입니다. 이런 식입니다.
상법 개정 필요성을 적극 주장해 왔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상법 개정보다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주주보호 원칙을 두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11월 28일 자 연합뉴스)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을 강력하게 주장해 온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상법 개정보다 자본시장법 개정이 더 합리적"이라며 정부 기조에 발을 맞췄다. (11월 28일 자 한국일보)
이 원장은 지난 6월 26일 한국경제인협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 세미나에서 "현재 기업지배구조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 상충에 취약하고, 기업의 성과와 주주 가치가 괴리되기 쉬운 만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난 7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상법 개정 입장 유지 여부를 묻는 말에, 이 원장은 "정부 출범 이후부터 주주가치 제고 노력을 중요한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것은 맞다"며 "개인적으로도 그렇다"는 소신도 밝혔습니다.
이처럼 이 원장은 공식 석상에서 "이사 충실 의무의 대상 확대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심지어 이 원장은 지난 6월 상법상 이사 충실 의무에 주주를 포함하도록 명시하되 배임죄를 폐지하자는 내용의, 일종의 '거래'를 제시한 당사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 언론에서 '변심'이라 표현할 만하죠.
사실, 상법 개정의 핵심 논리 자체는 대단히 단순합니다. 교과서대로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거든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기관투자자·학계·법조계 인사 109명과 함께 어제 내놓은 "상법 개정 완수하라"는 성명의 이 대목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자본시장이 활력을 잃고 경제가 신성장 동력을 잃어가는 가장 큰 이유는 너무나 당연한 주식회사의 기본 메커니즘이 돌아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식회사는 경영자가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주주가 경영자를 감독하는 견제와 균형을 통해 활력을 유지하는 시장경제의 꽃입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전제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교과서에서만 존재해 왔습니다.
주주를 위해서도 충실해야 한다고 법에 넣자는 것, '뿐이죠'.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측이 성명에서 상법 개정이 어떻게 기업에 대한 규제냐며 이렇게 물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헌법에 대통령 직선제를 규정하면 정부에 대한 규제입니까?
이 원장의 앞서 입장 또한 이와 같았습니다. "현재 기업 지배구조가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 상충에 취약하다"거나 "기업의 성과와 주주 가치가 괴리되기 쉽다"는 말, 그의 기본 입장 또한 상법 개정은 '교과서적인 당위'라는 것이었던 거죠.
교과서에만 존재하는 '당위', 이것이 또한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주주가 회사를 믿지 못하니 투자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고, 그만큼 기업 가치가 실제보다 낮게 평가될 개연성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 주식 시장으로 뛰어들기 너무 무서워요.
"주주야, 나를 믿니?"
- "네, 이사님."
"투자해, 주주야."
그러면서 양손을 벌리고 뒤로 넘어져도 받아줄 거라고 하던 청년, 정작 몸을 옆으로 빼버립니다. 곧바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죠. "꺅".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의 '상법 개정 숏츠 영상 공모전' 금상 수상작의 한 장면입니다. 이 원장의 '변심', 그리고 이를 대하는 소액주주들 상황 또한 이렇지 않을까요. 예, 한 마디로 '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