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에 쌓인 운동화 더미를 보며 든 생각

[난 늙을 줄 몰랐다] 세월은 변했지만, 삶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등록 2024.11.30 14:22수정 2024.11.3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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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 아이들이 김장을 하기 위해 왔다. 멀리서 찾아온 아이들이 불편 없이 머물다 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언제나 같은 아비의 마음이지만 며칠 머물다 보면 불편함도 있다.

아이들은 모든 전등을 켜 놓았고, 무덥도록 난방을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섣불리 이야기하면 마음이 상할 테고, 그냥 두자니 낭비가 아니던가? 부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고, 하지 않아도 될 소비는 줄여야 한다는 삶의 지론이다.


여느 날과 같이 들어선 체육관은 회원들로 붐비는데, 입구를 들어서며 늘 멈칫한다.
헛되이 불이 켜져 있고 곳곳에 쌓인 물건들이 길을 막아서다. 각종 물건들이 그렇고, 수북하게 쌓여 있는 운동화 더미가 눈에 거슬린다. 정리된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은 수많은 운동화는 주인이 누구일까?

관장에게 묻자 웃기만 하더니 주인이 있는데 누구인지 모른단다. 체육관을 그만둔 사람들이 두고 갔단다. 전화해도 무관심해 일정기간이 지나면 복지시설에 기증하기도 한단다. 왜 자기 운동화를 방치하느냐는 말엔 모르겠다면서도 살기가 좋아 저서 그런 것 아니냐며 되묻는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난 후의 교실풍경은 어지러웠다. 책상 위에도 그렇고 사물함 위에 널려 있는 교과서 때문이다. 소중한 교과서를 버린 듯이 둬도 되는 것인가? 오래전, 새 교과서는 지난 달력으로 표지를 싸서 공부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세월은 변했어도 많이 변했다. 점심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교과서도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시절이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점심 그리고 교과서가 소중하지 않을 리 없다. 내 부모가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어찌 소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풍요 속에 빈곤을 맛본다


모두가 살기 어렵다는 시절, 오랜만에 그럴듯한 식당을 별러서 갔다. 깜짝 놀란 것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다. 몇 달을 별러서 찾은 식당이 이렇게 붐빌 줄은 몰랐다. 모든 사람이 잘 사는데 나만 가난 속에 허덕이는 것은 아닌가? 풍요 속에 빈곤을 느끼는 곳은 수없이 많다.

고급 승용차가 줄을 이어 서있고, 비싼듯한 커피 한잔은 의례 손에 들려있다. 언젠가 찾았던 고속도로 휴게소, 옷을 파는 가게를 찾았다. 옷가게 주인 얼굴이 상기되어 있어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머뭇거린다. 젊은 부부가 옷을 사러 왔는데, 5000원짜리 커피를 들고 만 원짜리 옷을 깎으려 했단다. 5000원짜리 커피 두 잔이면 만원인데, 만 원짜리 옷을 깎으려 했단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인데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는 하소연이다. 생각이 다르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지만 마음만은 불편했다. 생각이 다르고 삶이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임을 알게 한다.


연초가 되거나, 수능이 끝나면 체육관은 붐빈다. 체육관뿐 아니라 화실이 그렇고 취미 교실이 붐비는 계절이다.

10여 년을 넘게 다니는 화실엔 임자도 알 수 없는 화구가 쌓여있다. 임자가 누구냐는 말에 누군지 모른단다. 쌓아 놓을 것이 아니라 처분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에 고개를 젓는다. 언제 찾으러 올지 모르기에 처분할 수도 없단다. 10여 년이 넘는 것도 있어도 고민이 많다는 설명이다. 수채화를 배우고 싶어 야심 차게 화실을 찾아 멋지게 그려내려는 사람들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몇 달이면 그림을 그려낼 줄 알았던 사람들은 실망하고, 서서히 고개를 젓는다.

몽골에서 만난 수도 몽골 사막에서 만난 수도시설, 먼 길에서 물을 길어다 넣어야 사용이 가능했다. 한방울의 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끼게 해주었던 기억이다. 풍요로움 속에 아끼고 절약하는 삶의 모습들이 절실한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함이 아쉽기도 하다.
▲몽골에서 만난 수도 몽골 사막에서 만난 수도시설, 먼 길에서 물을 길어다 넣어야 사용이 가능했다. 한방울의 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끼게 해주었던 기억이다. 풍요로움 속에 아끼고 절약하는 삶의 모습들이 절실한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함이 아쉽기도 하다. 박희종

세상에 쉬운 일은 한 개도 없다

몇 달 동안 열심히 해도 그림을 그려낼 수 없어 포기한 것이다. 평생을 그려도 어려운 수채화를 몇 달 만에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마음은 정리되었지만 어렵게 마련한 화구는 방치하곤 한다. 그만두기가 쑥스러웠는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지 알 수 없지만 값비싼 화구는 화실 구석에서 잠을 잔다.

지난 달력을 뜯어 교과서를 싸던 시절은 갔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마음만은 아직 남아있어도 입도 벙긋하기 어렵다. 세상이 변했다는 말엔 할 말이 없다. 전등불빛 하나도 소중하고 물 한 방울도 허투루 쓰면 안 됨을 안다. 교과서 한 권이 그리고 운동화 한 켤레가 소중하지만 드러내고 설명할 수 없는 세월이 서글프다.

왠지 사막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지만, 세월은 변했어도 삶엔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알려주고 싶다. 무던히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그림 한 점이고 늙음을 지켜주는 근육이다. 오래 전의 달력을 보고 느끼는 생각, 고무신을 연상하게 하는 쌓인 운동화를 보면서 하루를 여는 아침이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다.
#운동 #화실 #교과서 #세금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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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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