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써 온 글을 읽으시는 주일순 어르신의 뒷모습
최은영
노래에 얽힌 글을 읽을 때는 아무도 웃을 수 없었다. 아픈 친정 엄마를 위해 이민 생활을 갑자기 접고 한국에 돌아와 7년 간 돌봄을 해야 했다는 한 어르신의 이야기였다. 갑자기 귀국해서 오랫동안 가족과 떨어져 살고 계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세한 전후 사정은 그날 글로 처음 알았다.
그다음 숙제는 트로트 가수를 좋아하신다는 어르신 차례였다. 임영웅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영탁의 <막걸리 한 잔>이라고 하신다. 또 나만 모르는 거 같아서 이번에는 아는 척을 했다. 어르신은 새해에 영탁 콘서트를 보러 부산까지 가신다고 했다. 전국구로 팬을 몰고 다니는 트로트 가수는 임영웅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당연히 재미있는 덕질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아버지에 대한 글이었다. 어르신은 글을 읽다가 결국 눈물을 보이셨다.
"제가요. 실은 아빠를 미워했거든요. 그런데 이 숙제를 하면서 괜히 아빠한테 미안하고 보고 싶고 그런 거 있죠. 저도 제가 이럴 줄 몰랐어요."
다들 고개를 끄덕이시며 추임새처럼 자기 아버지를 원망했던 사연을 툭툭 던져 놓는다. 들어보면 고단한 시절 탓에 어쩔 수 없이 드리워진 상처들이다. 사연 끝에 누군가가 '어째 글쓰기 수업에만 오면 나도 모르게 속내를 쏟아내는지 모르겠다'라고 하셨다.
나는 그게 글쓰기의 묘미라고 대답했다. 그냥 수다보다 훨씬 내밀하게 만나는 게 글이라고. 그 내밀함을 나 자신과도 할 수 있고, 같이 쓰는 동료하고도 할 수 있다고, 그런 이유로 다른 복지관에서도 글쓰기 반에서 만나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자주 본다고 말했다.
너무 빨리 흐르는 두 시간
노래와 글이 유려하게 흐르는 두 시간이 끝났다. 너무 빨리 가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다. 나는 영탁의 막걸리 한잔을 쓰신 어르신을 붙잡았다. 오늘 쓰신 글 조금만 다듬어서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송고해 보시는 건 어떻겠냐고 여쭤봤다. 어렵지만 해보겠노라 하셨다.
정호승 시인의 '이별'을 쓰신 어르신께는 전화를 따로 드렸다. 이 분은 그 전주에 쓴 글로 오마이뉴스에서 기사 채택이 된 적이 있다. 어르신은 저번에는 운이 좋아서 됐지만 어떻게 또 기사채택이 되겠냐고 반문하신다. 나는 이번 글이 더 좋으니 조금만 수정해서 꼭 내자고 다시 부추기면서, 첨삭 메일을 보내드렸다.
다행히 두 분의 글 모두 기사채택이 됐다. 두번째 기사를 쓰신 어르신은 심지어 메인 기사로 채택됐다. 다음은 그 두 기사다.
1월 가수 영탁의 콘서트가 기다려지는 이유 https://omn.kr/2b6o1
파킨슨 병 엄마와 보낸 7년, 그후의 이야기 https://omn.kr/2b6df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보면, 두 주인공은 각각 다른 시대와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잡화점의 오래된 편지를 통해 각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내게 두 어르신의 글이 오마이뉴스에 채택되는 순간은, 잡화점의 편지가 닿는 것처럼 새로운 인연의 시작 같았다.
기사가 올라간 것을 확인하고서 나는 어르신들과 문자로 기쁨을 나눴다. 내 또래 친구들과 수다 떠는 기분이었다. 20년 이상의 세월을 가로지른 우리는 그동안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왔지만, 글을 통해서 연결되고 있었다.

▲기사 채택 확인 후 문자 본인 글이 메인이 됐다는 것도 모르셨던 어르신
최은영
나미야 잡화점의 편지가 세대와 시공간을 넘어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켰듯 그들의 글도 세상을 향해 나아가며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것이다.
어쩌면 열 명 남짓과만 나누고 끝났을 수 있을 글들이 더 큰 판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가 닿는다는 게 내게는 작은 기적처럼 느껴진다.
복지관 글쓰기 수업이 어르신들에게 그저 단순한 취미생활 이상이 되길 바란다. 글을 쓰시면서 서로 더 친해지셨으면 좋겠다.
글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순간을 즐기셨으면 좋겠다. 나는 어르신이 가는 그 길에 더 나은 안내자가 될 수 있는 궁리를 시작한다. 기분 좋은 숙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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