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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도래지 '달성습지'에서 항공 소방 훈련... 철새들 어떡하나

달성습지에서 헬기 소방 훈련 실시... 대구 소방 "앞으로는 시정될 수 있도록 할 것"

등록 2024.11.30 10:40수정 2024.11.3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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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성습지 한가운데서 대구소방 소속 소방항공대 헬기에서 사람이 내려오는 소방 훈련을 하고 있다.
달성습지 한가운데서 대구소방 소속 소방항공대 헬기에서 사람이 내려오는 소방 훈련을 하고 있다.정수근

지난 29일 두 개의 큰 국가하천인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달성습지 하중도 위로 갑자기 헬기 한 대가 낮게 내려와 소방 훈련을 한다. 그러자 이곳을 찾은 겨울 철새들이 혼비백산 달아난다. 그중에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큰고니도 있다.

그 많던 철새들이 삽시간 흩어졌다. 철새들이 모두 떠난 그 자리엔 헬기 소리만 요란하다. 이곳은 대구 달성구청이 흑두루미와 재두루미 등의 겨울 철새들이 올 것을 대비해 갈대와 잡풀 등을 밀어내고, 평탄한 개활지로 만들어둔 곳이다. 철새들이 날아와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달서구청 차원의 배려를 행한 것이다.

 많은 겨울철들이 달성습지를 찾아 쉬고 있다. 가운데 흰색 큰 새가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큰고니다.
많은 겨울철들이 달성습지를 찾아 쉬고 있다. 가운데 흰색 큰 새가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큰고니다. 정수근

 평화롭게 쉬고 있던 겨울철새들이 혼비백산 달아나고 있다.
평화롭게 쉬고 있던 겨울철새들이 혼비백산 달아나고 있다.정수근

철새도래지 달성습지에서 헬기 훈련을 하는 나라

그런데 그 바로 옆 2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달성습지 하중도 안으로 헬기가 한 대 날아와 소방 훈련을 벌였다. 그 덕분에 겨울철새들을 위한 이 공간에 있던 철새들은 모두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서대구 달성습지에서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이 나라에는 정말 윤리도 없는가, 너무 화가 난다"

이 현장을 지켜보던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인 생태학자 김종원 전 계명대 교수가 기가 막힌 듯 이렇게 말했다. 옆에 있던 대구환경운동연합 회원 도예가 배제일 선생도 "빨리 항의 전화라도 해야 한다"라며 전화기를 들고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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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도래지로 유명한 달성습지에서 대구소방이 항공 소방 훈련을 하고 있다. 이 덕분에 이곳을 찾은 겨울철새들이 혼비백산 달아났다. ⓒ 정수근


 달성습지에 내려 쉬고 있던 큰고니가 날아간다.
달성습지에 내려 쉬고 있던 큰고니가 날아간다.정수근

사실 이들은 달성습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강정고령보 앞 광장에 건설된 4대강사업 홍보관 디아크 앞에서 금호강 르네상스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던 차였다. 대구시가 이 일대에 화려한 관광교량을 설치해 겨울 철새들과 야생동물들의 삶터를 교란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정작 달성습지 안에서는 헬기를 이용한 소방 훈련을 실시해서 겨울철새들과 야생동물들을 내쫓는 기가 막힌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금호강 난개발 저지 대구경북공동대책위에서 금호강 르네상스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금호강 난개발 저지 대구경북공동대책위에서 금호강 르네상스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정수근

 대구소방 소속 헬기가 달성습지에서 소방 훈련을 실시하다가 거센 항의를 받았다.
대구소방 소속 헬기가 달성습지에서 소방 훈련을 실시하다가 거센 항의를 받았다.정수근

망원경으로 그 헬기가 119 대구소방 소속 헬기란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119로 전화를 걸어 "철새도래지에서 어떻게 헬기 훈련을 하느냐"라며 "당장 훈련을 중단하라"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대구소방안전본부(대구 소방)는 "아마도 우리 소속 소방항공대에서 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연락해서 상황을 알아보겠다. 알아보고 소방항공대에서 연락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답했다.


항의 전화 후 시간이 조금 흐르자 훈련은 중단됐다. 하중도 위에서 정지비행을 하던 헬기는 하중도에 내렸던 소방대원들을 다시 실은 후 서서히 북서쪽 하늘로 날아갔다. 잠시 후 연락이 온 대구소방 119항공대 소속 담당 팀장은 "그동안 정기적으로 행해오던 소방 훈련이다. 전혀 그런 사실을 몰랐다. 앞으로는 시정될 수 있도록 더 알아보고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말했다.

생태 윤리가 없는 나라... 윤리를 회복해야

겨울 철새들로 장사진을 이루던 곳은 텅 비었고, 달성습지에는 고요만 남았다. 휑한 바람 소리만 요란하다.

이런 훈련을 그동안 정기적으로 했다니 정말 기가 막히고 이해가 안 되는 노릇이다. 이곳이 대구의 유명한 습지란 사실은 대구 시민이면 다 아는 사실이고, 습지가 철새들을 비롯한 무수한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란 사실은 상식 아닌가.

 철새들이 하나도 없이 다 떠나버리고 빈 공간만 남았다.
철새들이 하나도 없이 다 떠나버리고 빈 공간만 남았다.정수근

 겨울철새들은 모두 떠나고 빈 공간만 덩그러니 남았다.
겨울철새들은 모두 떠나고 빈 공간만 덩그러니 남았다.정수근

달성습지는 인간의 영역이 아닌 야생의 영역이다. 철새를 비롯한 야생동물들이 인간 개발을 피하고 피해서 마지막으로 머물게 되는 그들의 마지막 남은 영토다. 이런 곳에서 헬기를 이용한 훈련이 행해지고 있고, 대구시는 그 앞으로 화려한 관광교량을 세워서 이 일대를 관광단지로 개발하려 하고 있다.

"이 나라에는 (생태) 윤리가 없다. 정말 너무나 천박하다"

김종원 전 교수의 일성이 내내 머리에 머물게 되는 하루다.

 금호강 르네상스 개발사업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이 벌이지고 있다.
금호강 르네상스 개발사업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이 벌이지고 있다.정수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금호강르네상스 #달성습지 #겨울철새 #대구소방 #항공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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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간의 기사를 엮은 책 <강 죽이는 사회>(2024, 흠영)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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