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구례 봉덕정 언덕에서 바라본 노고단. 산 아래는 눈이 녹았지만 높은 산봉우리에는 눈이 그대로 있다.
박안수
그러면 산봉우리가 높다는 것이 언제 잘 드러날까? 만년설로 덮여있는 산을 보면 그 산이 높다는 것을 바로 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만년설로 덮인 산이 없다. 그러면 산이 높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가벼운 눈이 내린 이른 겨울 아침이다. 높은 산봉우리는 산 아래보다 기온이 매우 낮기에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지만, 산 아래는 기온이 높기에 눈이 녹아 산의 나무들이 마치 비에 촉촉하게 젖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때 비로소 그 산봉우리가 높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산의 위아래가, 곧 온 산이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면 산의 높낮이를 알 수 없다. 봄과 여름은 푸르름으로 온 산이 덮여 있다. 가을은 아름다운 단풍이 온 산을 수놓고 있다. 겨울은 하얀 눈으로 온 산이 덮여 있다. 이렇게 되면 산의 위아래를 구별할 수 없기에 산의 높낮이를 알 수 없다. 고고는 홀로 고상하여야 한다. 이럴 때는 고고한 모습이 드러날 수 없다.
또 골짜기를 피어오르는 안개는 비록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풍광이지만, 산의 높낮이를 오히려 흐려놓는다. 추운 겨울날의 반가운 따뜻한 장밋빛 햇살도 고고한 모습을 해치는 존재이다. 그 햇살은 가볍게 눈을 쓰고 있는 산봉우리의 눈을 녹여 높이를 사라지게 한다.
고고한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고한 모습은 가볍게 눈이 내린 이른 겨울 아침에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고고한 삶을 엿보며
퇴임하자마자 산골로 들어왔다. 산골에 있으니 자연스레 세상의 관심사에 멀어지고 지인들과 만남도 드물다. 그리고 세상사의 큰 관심사인 권력, 지위, 돈에서 이미 멀어진 몸이다. 인생을 사계절로 나눈다면 '이른 겨울'에 들어선 나이가 되었다. 이제라도 고고한 삶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고고한 삶의 기본 조건은 제대로 갖춘 것 같다. 하지만 고상한 삶은 나에게 버거운 짐이다. '골짜기로 피어오르는 안개'에 현혹되어 언제 마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 '장밋빛 햇살'의 달콤한 유혹에 언제 빠질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혹이나 유혹에 끌리지 않을 만큼 그동안 내공을 쌓지 못했다. 고고한 삶에 대한 꿈은 내려놓는 것이 건강에 좋다.
꿈은 내려놓았지만, 그래도 고고한 삶을 살짝살짝 엿보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삶이 너무 세속화되어 허물이 내 몸을 감쌀 것 같다.
거백옥(위나라 대부)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공자도 거백옥을 존경했다고 한다. 어느날 거백옥이 공자에게 심부름꾼을 보냈다. 공자는 그 심부름꾼에게 거백옥의 안부를 물었다. 그때 심부름꾼이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선생(거백옥)은 자신의 허물을 줄이려고 하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논어>의 '헌문(憲問)'편에 나오는 말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허물을 쌓았다. 이제 더 이상 허물을 쌓으면 안 된다. 이제 그 허물을 씻어내며, 더 쌓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허물은 행동과 말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행동은 바르게 하고 말은 겸손하게 하여야 한다. <논어>의 ''헌문(憲問)'편에 나오는 말이다.
무엇보다 눈이 내리는 이른 겨울 아침, 초연하게 우뚝 솟아 있는 산봉우리의 모습은 내가 경외해야 할 대상이지 꿈꾸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나는 아직도 조그만 한 일에 분노를 잘한다. 그런데 이러한 어설픈 인품은 고쳐지질 않는다.
고고한 삶을 곁눈질하며 행동을 바르게 하고 말은 겸손하게 하려는 생각이나마 놓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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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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