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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4.12.01 16:44수정 2024.12.0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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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인데도 가게에 손님은 없었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주인 할아버지는 두 눈을 꼭 감고 선잠을 자고 계셨나 보다. 드르륵하는 낡은 문 소리에 화들짝 놀라 일어나시는 할아버지.
단잠을 깨웠나 싶어 미안했다. 언젠가부터 손님보다 장사꾼이 더 많아 보이는 시골 장터다. 양쪽 판매대 사이를 지나 가노라면 멈춰 서기를 바라며 쳐다보는 상인들의 눈빛이 부담이다.
신발을 맡기던 지난 장날에도 손님이 없어 괜히 미안했었다. 할아버지는 들뜬 운동화 밑창을 접착제로 붙이고 양쪽을 빙 돌아가며 꿰매는데 만 오천 원은 받아야 한다면서 차라리 새걸 사 신으라고 하셨다. 2만 원이면 한 켤레 산다고. 잠시 망설임이 일었으나 밑창이 들떴다고 통째 버릴 수는 없었다.

▲꿰맨 신발 양쪽 신발을 꼼꼼히 꿰맸다.
전희식
도시에서 양화점을 하셨던 분답게 할아버지가 건네주는 내 운동화는 야무지게 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운동화의 하얀 밑 창과 잘 어울리게 옅은 보랏빛 나일론 실로 꿰매서 전혀 다른 신발처럼 보였다.
나는 천 원을 더 건넸다. 장화도 때워주시고 등산화나 작업화도 고쳐 신게 해 주시는데 이 가게 문이 닫으면 나는 갈 데가 없어서다. 깎자는 사람은 봐도 돈을 더 주는 사람은 처음 본다면서 싫지는 않은 기색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땜장이 아저씨가 동네마다 다녔다. 찢어진 고무신도 붙여주셨고 닳아서 물이 새는 냄비도 숯불에 달군 인두로 감쪽같이 때워주셨다. 전파사라는 곳에 가면 라디오건 전축이건 다리미건 고장난 건 다 고쳐주었는데 요즘은 그 회사 에이에스 센터까지 가야 하고 툭하면 구형이라 부품이 없다면서 새 제품을 권한다.
한때의 영화를 말해주듯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금강제화'라는 간판이 비스듬히 기운 가게를 나서는데 할아버지가 나를 불러 세웠다. 가게 선반에 진열된 덧양말 한 켤레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신발 깔개만 팔더니 이제는 덧양말과 샌들도 팔고 계신다. 두툼한 덧양말을 받고 보니 내 천 원보다는 비싸 보였다. 사양하려다가 그대로 받은 건 앞집에 사는 할머니 생각에서다.
나와 밤 줍기 경쟁하던 앞집 할머니
할머니는 이제 장터에 혼자서는 오시지 못한다. 텃밭도 해마다 줄여가신다. 지팡이에 의지해 몇 걸음 걸으시면 한 손을 허리 뒤로 돌리고는 "아이고~" 소리를 얹는다. 무엇보다 나와 숨 가쁜 경쟁을 벌이던 종목들을 하나 둘 다 내려놓으셨다.
할머니와 주인 없는 산 밤을 먼저 주우려 경쟁하던 때가 있었다. 전날 바람이라도 불었으면 어둑발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집을 나서곤 했다. 산길에서 만나면 하는 둥 마는 둥 인사를 건네고는 옆길을 타고 큰 밤나무를 차지하려고 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두릅이나 취 같은 봄나물도 그렇지만 야생 머위나 으름 넝쿨을 따는 것도 이젠 내 독차지다. 한 분 두 분 세상을 뜨는 동네 노인들을 보며 언젠가 내 차례가 오겠지 싶을 때가 있다.
올해도 밤을 혼자 주우며 느긋하다 못해 게을러터진 나를 책망했었다. 하루 걸러서 가도 주워가는 사람이 없으니 밤은 그 자리에서 나만 기다리고 있다. 벌레들도 나 같은 경쟁자는 시답잖아서인지 예전 같지 않다. 벌레 먹은 밤보다 성한 밤이 더 많다.

▲지붕 고치기 태풍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양철 지붕을 뚫고 안방으로 꽂혔다.
전희식
산길은 아예 엄두도 못 내는 할머니를 보면 가슴 짠하다. 몇 달 전에는 뒷밭 은행나무 가지가 태풍에 부러져 할머니 양철 지붕을 뚫고 안방까지 불발 로켓 포탄처럼 내려 꽂힌 적이 있다. 집에 계셨더라면 경기를 일으켰거나 까무러쳤을 것이다. 급히 군청 산림과 직원들에게 연락해 대형 장비까지 동원해서 안방에 꽂혀있는 은행나무를 제거하고 지붕을 고쳐드리기도 했다.
장마 때 정전이 되어 깜깜절벽 속에서 밤을 새우고 냉장고 음식이 상해서 다 버리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도회지 아들네 아파트는 죽자 사자 반대다. 가막살이(감옥살이)라면서. 산송장 신세라 하면서. 추운 겨울에는 두세 달 딸네 집과 아들 집을 순례하기도 하지만, 산골짜기 그늘진 곳에는 녹다가 남은 눈이 제법 있을 즈음에 다시 시골로 내려오신다.
천 원→덧양말→고구마... 마음을 데우는 신비의 연금술

▲고구마 glenhayoge on Unsplash
해거름에야 볼일을 마치고 막차를 타고 동네로 돌아왔다. 버스 종점에서도 1킬로미터는 걸어서 올라간다. 할머니 집에 먼저 들렀다. 내 손에는 까만 비닐봉지가 두 개였다. 하나는 잔망스레 달랑거리는 덧양말이고 다른 하나는 농협 하나로마트 안에 있는 제과점에서 산 롤 케이크였다.
할머니 집에는 환갑이 넘은 서울 사는 아들이 와 있었다. 주말이라 내일까지 고구마도 캐고 들깨 타작도 도우러 왔다고 한다. 저녁을 먹던 두 모자는 알록달록한 혼방 덧양말 한 켤레를 보고는 어쩔 줄을 몰라 하신다. 맨날 받기만 한다면서 안절부절 하신다.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져서 방에서도 발가락이 바늘로 쑤시는 듯 시리다면서 할머니는 덧양말을 신어보고 따뜻하다신다.
롤 케이크를 마루에 내려놓자 두 사람은 다투어 내 손목을 잡아끌며 저녁을 뜨고 가란다. 방 안의 티브이에서는 예년보다 겨울이 일찍 찾아오고 매서운 추위가 예상된다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내 천 원짜리 한 장이 덧양말로 변신하더니 여기에 롤 케이크가 더해져서 할머니 저녁 밥상을 따뜻하게 밝혔다.
서울 아들이 가져왔다는 호두과자 두 개만 손에 받아 들고 가로등도 없는 실 핏줄 같은 길을 따라 더듬더듬 집으로 돌아왔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개 집 지붕에도 짚을 덧씌웠다.
다음 날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대문간에서 뭐라 뭐라 사람 소리가 나서 주섬주섬 입가를 훔치고 나가 봤더니 아무도 없다. 대문 언저리에 까만 비닐봉지가 두 개 보였다. 막 캔 고구마가 가득 들어있다. 뒷산 가을 단풍처럼 수줍은 듯 발갛게 빛나는 고구마.
대문 밖 길가로 나가 고개를 빼고 둘러봤더니 저만치 골목 어귀에서 할머니와 그 아들이 돌아보며 손을 번쩍 치켜든다.
단돈 1000원이 덧양말로 둔갑하더니 다시 고구마가 되는 신비의 연금술이 펼쳐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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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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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원이 덧양말이 됐다가 고구마로 돌아온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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