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7월 13일, 산내 골령골에서 진행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시설 현장평가’에서 대전 동구청 관계자가 현황보고를 하고 있다.
임재근
2012년 4월부터 4개월 동안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시설 조성방안 연구'가 진행되어 연구 결과가 도출되었으나 이후 추모공원 등 위령시설 조성을 위한 조치는 진척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추모공원 조성지역 선정 공모'가 진행되었다. 추모공원 조성 사업은 2016년에 조성지역을 선정하고, 2017년에 예산을 확보해 2018까지 부지매입을 끝마치고, 2019년부터 2년 동안 조성공사를 진행해 2020년 12월에 준공을 한다는 계획이었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 추모공원 조성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겠냐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대전 동구, 강원도 철원, 강원도 양구, 전남 영광 등에서 유치 신청을 했고, 그중 대전 동구(골령골)가 역사적 상징성, 지리적 접근성, 파급효과, 추진의지 등을 기준으로 산정된 후보지 선정 평가 합계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1순위 지역으로 선정됐다.
1순위 지역으로 선정된 대전 동구(골령골)는 추모공원 부지 면적이 당초 제안된 6만 평의 절반에 불과한 약 3만 평(9만 8601㎡)로 축소되었지만, 대부분 사유지에 해당해 토지매입 비용이 가장 큰 약점이었다. 공원부지 가운데를 관통하는 편도 1차선 도로의 이설도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또한 추모 공원 조성 전에 유해발굴도 끝마쳐야만 했다.
추모공원 준공을 2020년 12월로 설정했지만 진척 속도는 느릿느릿했고, 유족들은 속이 타들어갔다. 이 사업을 주관하는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단장은 퇴직을 앞둔 고위공무원들이 잠시 거쳐 가는 자리인 양, 6개월에서 길면 1년 사이에 교체되었다. 2019년 7월에서야 사업부지 토지보상이 시작됐고, 당초 계획대로라면 완공이 되었어야 할 시점에서야 공원 및 건축 설계 공모가 끝났다. 결국 추모공원 조성 시점은 4년 뒤인 2024년으로 연기됐다.
유해가 묻혀 있는 상태에서 추모공원을 조성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때문에 대전 골령골에서는 2020년부터 3년간 국가차원의 대대적인 유해발굴 작업에 들어갔다. 2015년 민간차원의 유해발굴을 통해 대규모 매장을 확인한 후 국가차원의 유해발굴을 촉구한 지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3년간 국가차원의 대대적인 유해발굴 작업을 통해 2020년에 234구, 2021년에 962구, 2022년에 191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에 의해 발굴된 유해 34구와 2015년 민간차원으로 발굴한 유해까지 합하면 총 1441구의 유해가 수습되었고, 2024년에 추가로 31구의 유해가 수습되면서 1472구로 늘어났다. 발굴된 유해는 세종추모의집에 임시로 안치되어 있는데, 그곳에는 다른 지역에서 발굴된 유해까지 합하면 4000구가 넘게 안치되어 있다.

▲ 한국전쟁 전후 벌어진 민간인 학살사건 희생자들의 유해가 임시 안치되어 있는 세종추모의집. 플라스틱 상자에 발굴된 유해와 유품이 담겨 있다. 현재 세종추모의 집에는 전국 각지에서 발굴된 유해 4000여 구가 임시로 안치되어 있다.
임재근
정부가 늑장부리는 동안 사업비만 상승... 사업타당성 재조사 결과는 오리무중
2020년 12월에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추모 공원 조성에 대한 기대감도 한층 높아졌다. 하지만 추모공원 조성이 늦춰지면서 그 사이 건축비 상승 등으로 총사업비가 최초 295억 원에서, 400억 원을 초과했다가 또 다시 591억 원까지 늘어났다. 추모공원 조성사업은 총사업비가 500억 이상이 되면서 타당성 재검토 대상이 됐다. 정부는 2023년 2월부터 사업 타당성 재검토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재검토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대전산내골령골피학살자유족회 전미경 회장은 "이제나저제나 평화공원 조성을 기다리던 고령의 유족 상당수가 세상을 떠났다"며 "유족들이 다 죽고 난 다음에 추모공원을 지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미경 회장은 이어 "가덕도 신공항, 대구·경북 통합 신공항을 비롯해 대전시 우주산업 클러스터 조성 사업 등 엄청난 사업비가 들어가는 대규모 사업들은 죄다 타당성 조사를 면제해 주면서,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 추모 위령 시설에 대한 사업 타당성 조사는 일 년이 넘게 질질 시간을 끄느냐"고 분노했다.
행정안전부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의뢰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단위 위령시설 조성' 타당성재조사를 실시했지만, 아직 기획재정부에서 타당성조사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 차례 연기해 2024년 준공을 목표로 삼았던 추모공원은 2024년의 끝자락에 있는 시점에도 준공은커녕 착공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 아직도 착공조차 못하고 있는 산내 골령골의 모습. 2024년 11월 14일 촬영.
임재근
다행히 추모공원 예정지 토지보상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빠르면 2025년에는 착공할 수 있을 거라 예상된다. 하지만 추모공원이 착공되더라도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남아 있다. 우선 추모공원에 들어설 전시 콘텐츠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추모공원 하드웨어(공원시설)와 소프트웨어(전시 기획)가 동시에 진척되어야 하지만 전시 콘텐츠 연구 용역은 단 1차례만 진행됐고, 그마저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총체적 내용도 제대로 포괄하지 못했다.
특히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김광동 위원장이 들어선 이후 조사 진척 속도가 느릴 뿐 아니라, 진실규명 신청자를 부역혐의자로 몰아가 진상규명이 오히려 퇴보하는 등 진실화해위원회의 설립 취지와는 완전히 배치되는 경향을 뚜렷하게 보이고 있는 가운데, 골령골에 들어서는 추모공원이 평화와 인권은 배제되고, 안보와 반공 교육의 현장이 될 거란 우려의 목소리도 생기고 있다.
유전자 검사로 신원 확인... 유족들 "발굴된 유해는 절대 화장 못 한다"

▲ 2021년 말 행정안전부에서 공개한 ‘한국전쟁 전국단위 위령시설 조성사업 설명자료’에 화장 후에 유해를 안치하겠다는 계획이 담긴 자료.
행정안전부

▲ 2024년 6월 27일에 진행된 ‘대전산내골령골학살사건 제74주기 제25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에서 유족들은 ‘민간인 학살 희생자 발굴 유해 화장 반대 서명운동’에 본격 나섰다.
임재근
또 하나 과제는 추모공원에 들어설 유해 안치 시설이다. 현재 계획된 바로는 '화장 후 희생지역별로 합동 안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결정한 상태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유족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2024년 6월 27일에 진행된 '대전산내골령골학살사건 제74주기 제25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에서 유족들은 '민간인 학살 희생자 발굴 유해 화장 반대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유족들은 서명운동을 통해 "화장은 민간인 학살의 증거를 지우는 일이며, 신원을 확인하고자 염원하는 유족들의 희망을 꺾는 일"이라며, "모든 유해를 발굴된 상태로 평화공원에 안장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2016년 이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추모공원 사업이 본격 추진되면서 전문가 자문을 얻어 위령시설 조성 실행계획을 수립하면서 '화장 후 봉안'이 논의되었고, 2018년 작성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단위 위령시설 조성 기본계획수립연구' 용역 최종보고서에는 "화장 후 희생지역별로 합동 안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유해의 화장 방안은 이보다 앞선 2012년에 작성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시설 조성 방안'에 관한 연구용역 최종보고서에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보고서에는 "유족은 유해를 화장 후 봉안하는 방법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이었다면서도 "이것은 유전자 검사만으로 유해의 신원 확인이 어렵다는 과학적 사실을 점차 수긍한 결과였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후 유전자 감식으로 발굴한 유해의 신원이 확인되면서 유족들의 입장이 변하기 시작했다. '연기 국민보도연맹 사건' 매장지에서 발굴된 유해와 DNA 정보가 일치하는 유족을 2020년 12월에 확인해 냈다. 2022년까지 1441구가 발굴된 골령골에서도 2023년 10월에 처음으로 유해의 신원이 확인됐다. 유해의 주인은 제주도 조천면 북촌리 출신의 행방불명 4·3희생자 고 김한홍씨였다. 2024년 4월에는 대전 산내 골령골과 충남 아산 배방 성재산 방공호에서 발굴된 유해에서 각 1구씩 총 2구의 신원이 확인됐다. 11월에는 옛 광주형무소 터에서도 발굴된 유해 중 제주4·3 당시 행방불명된 희생자의 신원이 확인되기도 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유전자 감식을 통해 유해의 신원 확인이 가능해졌고, 향후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면서 유족들은 발굴된 유해를 화장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변화된 환경에 따라 계획도 변경되어야 하는데, 변화를 무시하고 유해의 화장을 고집하는 것은 정부가 가해증거를 인멸하려는 것으로 충분히 오해받을 만하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 추모공원'은 국가가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유족들을 위로하는 동시에 역사의식 함양을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위로받아야 할 유족들이 고령의 나이로 인해 세상을 떠난다는 현실을 외면한 채, 추모공원 조성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국가가 책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추모공원이 조속히 완공되어야겠지만, '제대로' 완공되어야 한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조성된 추모공원이 유족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상처를 주고, 평화와 인권이 배제된 공간이 된다면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 될 것이다.

▲ 산내 골령골에서 발굴된 유해 중에 제주도 조천면 북촌리 출신의 행방불명 4·3희생자 고 김한홍씨의 신원이 확인되어 유해가 2023년 10월 4일 세종 추모의 집에서 가족들에게 인계되고 있다. 고 김한홍씨가 행방불명된 지 74년 만에 한줌의 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임재근
*글쓴이 임재근은 (사)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고, 공주대학교와 목원대학교에서 북한 및 한반도 평화와 통일과 관련된 강의를 하고 있다.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교수와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집행위원장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살아있는 근현대교과서-국립대전현충원>(봄인터렉티브미디어, 2022, 공저), <철도, 대전의 근대를 열다>(대전동구문화원, 2023, 공저), <대전현충원에 묻힌 이야기>(문화의힘, 2024, 공저)가 있다. 논문으로는 <한국전쟁 시기 대전지역 민간인 학살 연구> <한국전쟁기 대전전투에 대한 전쟁기억 재현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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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학살 추모공원, 유족이 다 죽은 뒤에 만들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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