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마주보이는 경기도 하성면 민통선
조경일
북향민들은 남한에서 각자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독재와 민주주의를 둘다 경험한 사람들이다. 두 체제 안에서 살았다는 건 굉장히 특이한 경험을 가졌다는 뜻인데 그래서 일각에서는 북향민들이 남과 북을 잇는 통일 브리지, 즉 가교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정작 한국 사회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고도로 양극화된 한국사회에서, 그것도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은 남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조차 어려운 일이니 북향민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북향민들에게도 먹고사는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이상적인 가교역할은 너무 멀기만 하다.
남한에서 살아가는 북향민들의 이야기는 북한 주민들,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전달되곤 한다. 북한 사람들이 탈북을 하면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과 영영 소식이 끊기기도 하지만, 브로커를 통해 북한에 남은 가족들과 주기적으로 소통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길게 전할 수는 없지만, 수화기 너머로 짧게 전달되는 목소리만으로도 북한 사람들은 많은 정보를 얻는다. 희망과 걱정이 모두 담겨있는 목소리다.
먼저 탈북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남은 가족들을 데려오고자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다 탈북 브로커 비용으로 쓰고, 그렇게 남한에 있는 가족을 믿고 탈북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브로커 비용은 탈북을 위한 과정에 쓰일 뿐 사람의 안전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고, 탈북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중국 공안이나 군인에게 붙잡혀 북송되기도 한다.
북송되면 탈북하기 전보다도 못한 상황이 되고 만다. 그러면 남쪽에서 가족들을 데려오려 애썼던 북향민들은 브로커 비용 마련 때문에 빚만 진 채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런데 무사히 탈북하면 해피엔딩일까?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살기 힘들다 말하는 북향민들이 늘어났다. 그렇다 보니 그들도 북에 남은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할 때 희망보다는 그들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편이다. 기회의 땅 남한도 살아가기에는 벅찬 곳이라면서. 이렇게 전달된 이야기가 북에서 조용히 퍼져간다. 이런 점에서 통일과 북향민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라 하겠다.
북향민들의 한국사회 정착이 통일준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북향민의 사회 정착은 그것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만이 아닌 북한 사회에 은연 중에 퍼져나가는 현실적인 민간 교류 역할도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당신들이 알아서 생존하라고 방치할 문제는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통일을 추구한다면 말이다.
북향민들을 통일의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향후 북한 주민들과 통합에 대비했을 때 미리 북향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미리 남북한 주민 통합을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 제도권 안에서 잘 정착하여 산다면 통일은 가까워질 것이고, 반대로 북향민들이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통일 또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북향민들과의 사회통합은 중요하며 이들이 얼마나 잘 정착해서 사는지 살펴봐야 한다. 북향민들이 출신배경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보통의 시민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잘 살아간다고 여긴다면, 이들의 삶은 그 자체로 이미 남과 북을 잇는 전달자,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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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 작가는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피스아고라 대표로 활동한다. 통일부 정책자문, 평화통일 강의, 칼럼과 책 집필 등의 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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