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도 했으니 뭐든 할 수 있다? 개인기는 한계가 있다

[조경일의 '리얼리티와 유니티'] ⑪ 보이지 않는 벽

등록 2024.12.11 15:10수정 2024.12.1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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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 개념에 의해 해명되듯이, 리얼리티는 관점에 의해 설명된다. 이 연재는 청년 세대의 관점에서 바라본 북향민의 리얼리티다. 그리고 다시금 통일에 대한 비전을 기록한다.[기자말]
 "때론 보이지 않는 벽이 보이는 벽보다 더 넘기가 어렵다"
"때론 보이지 않는 벽이 보이는 벽보다 더 넘기가 어렵다" 조경일

약자에게 관대한 사회는 그리 많지 않다. 탄탄한 복지 국가에서도 약자는 힘겨운 법이다. 특히 서로가 대립하는 체제에서 온 '이방인' 정체성이 있다면 '약자'라는 벽을 넘어 '마음의 벽'이라는 경계를 한 번 더 넘어야 한다.

북향민끼리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한국 사회가 이방인을 대하는 온정을 말한다면, 첫 번째로 보통의 외국인을 환대하고, 두 번째가 조선족, 그다음 세 번째 쯤에 북향민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그만큼 북향민들이 환대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마음을 토로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국 생활이 쉬울 리 없다.

물론 북향민들 중에서도 꽤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서 늦게 시작했지만 악착같이 벌어서 집도 사고 빌딩까지 올린 사람들. 이들은 중산층으로 편입돼 남부럽지 않게 살아간다. 어떻게 보면 먹고 사는 문제는 누구나에게 똑같은지라 북향민 청년들만이 당면한 어려움은 아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어렵다. 누구나 먹고살기 위해 분투한다.

생계를 위해 도전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겪는 정서의 문제가 있다. 마음에서 발생하는 벽은 개개인이 손 쓸 도리가 없다. 북향민들에 대한 사회적, 정서적 신뢰가 부족하므로 여기에서 오는 시선이 차별로 다가오는 것이다. 신뢰 부족에서 오는 경계심이나 마음의 벽을 당장 허물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낮아졌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서라도 북향민들로 대표되는 성공 사례가 많아지는 게 중요하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사회적 모범과 그 모델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심리 변화를 이끌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해나 편견이 신뢰와 긍정으로 바뀔 수 있고, 이런 변화는 가깝게는 북향민의 삶에 용기와 가능성을, 멀게는 남북통일에 대한 요청과 비전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향민들의 한국살이가 낙관적인 의지만으로는 해명되지 않는다.

혹자들은 "탈북하던 정신으로 살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맞다. 죽을 각오로 생사의 경계를 넘은 사람들이니 그런 각오로 열심히 살면 될 것이다. 아니, 상당수의 북향민들이 이미 그런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사회 구조 속에서 개인의 능력은 금방 밑바닥이 드러난다.

개인기에는 한계가 따른다. 각자 가진 능력에도 편차가 있고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적응을 돕는 시도나 활동 없이 탈북하던 정신으로 살아가라며 건네는 조언은 그다지 쓸모 없다. 이건 푸념이 아니고 고통 고백도 아니다. 사회 구조 앞에서 개인은 생각보다 무력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구조는 제도만 있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견고한 벽과 그 벽에서 보이고 들리는 무언의 압박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한다. 그 벽 앞에 서 있는 사람들만이 느끼는 차별과 배제의 체험에서 '같은 동포'나 '한민족'이라는 기대와 연민은 잘 들리지 않는다. 북향민 개개인이 각자도생하여 그 벽을 넘으라 하지만, 끝내 벽를 넘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다른 경계를 넘어버리기도 한다.
덧붙이는 글 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작가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를 썼다.
#조경일 #리얼리티와유니티 #아오지까지 #북향민 #탈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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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경흥(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피스아고라 대표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한반도 리빌딩 2025>(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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