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평화전망대 맞은 편에 보이는 북한 강화평화전망대 맞은 편에 보이는 북한
조경일
제3국으로의 '탈남'
북향민들 중에는 '탈남'하여 월북한 사람도 있지만, 제3국으로 떠난 이들도 있다. 한국에 정착했다가 다시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제3국으로 망명한 북향민들이다. 이들에 대한 통계는 정확하지가 않다. 탈남했으나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 조건들이 많기 때문이다. 제3국에 망명할 때에는 가명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면 공식적으로는 북한에서 직접 망명한 난민으로 진술하기 때문에 그들이 '탈남'한 북향민인지 북한 사람인지 분류하기가 어렵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이런 '탈남러시'가 많았다. 물론 언어가 통하지 않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결국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탈남 이후 현재까지 유럽이나 서방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북향민들, 즉 망명자는 대략적으로 800명 가까이 된다. 한국경찰학회보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북향민 제3국 망명은 771명이었다. 아마 통계로 잡히지 않은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800명은 훌쩍 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제3국으로 떠났을까. 한국이 살기 힘들어서 떠났을까.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더 나은 꿈을 찾아, 복지를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자녀를 위해서, 돈벌이를 위해서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 밑에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정서는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면서 느낀 한계였을 것이다.
나는 이런 푸념도 종종 들었다. "같은 동포에게 '탈북자'로 손가락질 당하며 사느니 차라리 유럽에 가서 그저 '아시안'으로 손가락질 당하며 살겠다." 망명을 떠난 북향민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돈을 더 지원해 달라는 게 아니다. '탈북자'라고 차별만 하지 말아 달라".
일반적으로 동포 또는 재외동포를 바라볼 때 그 시선에는 어느 정도 차별이 존재한다고 한다. 해당 재외동포가 살고 있는 나라가 그 재외동포에 대한 신뢰와 관련된다고도 한다. 재외동포가 살고 있는 거주 국가가 잘사는 나라면 그들을 향한 시선에 차별적 거부감이 적다는 것인데, 가령 미주 한인 재외동포나 재일동포, 유럽에 사는 한인동포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환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반면 재중동포인 조선족, 북향민들 즉 한국보다는 저개발국가인 나라에서 온 동포는 기본적으로 배타적이거나 시혜적인 관점에서 수용된다. 미주 한인들은 고국인 한국에 주로 돈을 쓰러 오지만, 조선족이나 북향민들은 한국에 돈을 벌러, 혹은 난민 자격으로 오니 그 차이가 차별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차별은 나타나는데 대놓고 드러나는 차별도 있지만 은연 중에 나타나는 차별도 있다. 차별이지만 차별로 인식되지 않는 경우다. 서있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북향민 1세대가 완전히 지나가면, 혹은 2세대까지 지나가면 차별이 끝나는 것일까? 1세대 또는 1.5세대로 분류 되는 북향민으로서 나는 1970, 80년대 미국으로 이민 갔던 한인들의 삶을 생각해 본다.
1970, 8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갔던 한인들은 세탁소나 청소일 등 궂은 일들을 하며 지금의 한인사회를 일궈냈다고 배웠다. 1세대들은 다음 세대를 위한 터를 닦는 것으로 충분히 소명을 다했을 것이다. 내가 속한 세대의 소명도 이와 같지 않을까?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제도권 사회에서 더 이상의 배제와 다름에 부딪힘 없이 자연스럽게 통합되어 살 수 있는 그런 날을 만드는 것. 적어도 북에서 남으로 이민 온 북향민으로서 경험하고 겪었던 일들을 나의 대에서는 끊어내는 것 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여전히 10대 아이들이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고 동남아의 외딴 정글을 헤매며 '동포의 나라' 한국 땅을 밟으려 목숨을 건다.
한국사회가 살아가기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지금의 우리 삶이 그들보다 힘들 수는 없다. 그래서 한국사회에 정착한 북향민들은 모두 잘 살아내야 한다. 제3국이 아닌, 꿈을 찾아 마침내 당도한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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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경흥(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피스아고라 대표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한반도 리빌딩 2025>(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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