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경계를 넘는 사람들

[조경일의 '리얼리티와 유니티'] ⑫ 제3국으로의 '탈남'

등록 2024.12.16 10:39수정 2024.12.16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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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 개념에 의해 해명되듯이, 리얼리티는 관점에 의해 설명된다. 이 연재는 청년 세대의 관점에서 바라본 북향민의 리얼리티다. 그리고 다시금 통일에 대한 비전을 기록한다.[기자말]
다시 경계를 넘는 사람들

2022년 1월 1일 새해 벽두에 뉴스가 들려왔다. 30대 북향민 청년이 휴전선을 넘어 북한으로 돌아갔다는 소식 이었다. 그는 1년 전 탈북해 한국을 찾은 청년이었다. 그런데 정착한 지 1년 만에 다시 자신이 넘어온 휴전선을 다시 넘어 북으로 돌아간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그의 월북을 두고 간첩이라 손가락질을 했지만 그가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간첩이 그렇게 요란하게 휴전선을 넘나들 일이 없으니.

그는 그에게 익숙했던 고향으로 돌아간 것 뿐이었다.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왜 지옥 같은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나 싶겠지만, 그에게는 남한이 더 지옥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이의 사정을 듣지 못했지만 그가 직면한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한국에서의 삶은 일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일하면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일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최소 조건은 남자의 경우 '신체적 조건'일 때가 많다. 건설현장 같은 곳에서 일당으로 일할 수 있어야 최소한의 생계 유지가 가능한데, 키가 평균보다 훨씬 작거나 몸무게가 평균에 못 미치는 경우 하루 일당을 벌 신체적 조건이 되기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빈번하게 아사했다는, 말 그대로 굶어 죽었다는 북향민 소식이 들려온다. 하루 일당을 벌어서 살든 어떻게 살든 신체가 건강하기만 하다면 북향민들에게 한국사회는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한국은 닫힌 땅이다. 게다가 누가 온정으로 공감해 주는 땅도 아니다.

동포애를 믿고 남쪽을 찾는 북향민들은 남쪽에 도착하고 난 후 그런 것은 찾을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치열하게 자본주의에 적응할 뿐이다. 그렇게 "같은 동포한테 '탈북자'라고 손가락질 당하며 사느니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잘 정착해서 나름대로 경제적 조건을 갖춘 사람들조차 의외로 마음 같아서는 돌아가고 싶다고 종종 고백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결코 북쪽이 좋아서가 아니다. 어차피 돌아가면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잘 적응한 북향민조차 그런 고백을 하는 것일까? '동포의 땅'을 생각하며 왔음에도 자기 처지가 '동포'가 아니라 '난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어떤 삶을 다시 생각할까?


강화평화전망대 맞은 편에 보이는 북한 강화평화전망대 맞은 편에 보이는 북한
▲강화평화전망대 맞은 편에 보이는 북한 강화평화전망대 맞은 편에 보이는 북한 조경일

제3국으로의 '탈남'

북향민들 중에는 '탈남'하여 월북한 사람도 있지만, 제3국으로 떠난 이들도 있다. 한국에 정착했다가 다시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제3국으로 망명한 북향민들이다. 이들에 대한 통계는 정확하지가 않다. 탈남했으나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 조건들이 많기 때문이다. 제3국에 망명할 때에는 가명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면 공식적으로는 북한에서 직접 망명한 난민으로 진술하기 때문에 그들이 '탈남'한 북향민인지 북한 사람인지 분류하기가 어렵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이런 '탈남러시'가 많았다. 물론 언어가 통하지 않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결국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탈남 이후 현재까지 유럽이나 서방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북향민들, 즉 망명자는 대략적으로 800명 가까이 된다. 한국경찰학회보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북향민 제3국 망명은 771명이었다. 아마 통계로 잡히지 않은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800명은 훌쩍 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제3국으로 떠났을까. 한국이 살기 힘들어서 떠났을까.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더 나은 꿈을 찾아, 복지를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자녀를 위해서, 돈벌이를 위해서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 밑에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정서는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면서 느낀 한계였을 것이다.

나는 이런 푸념도 종종 들었다. "같은 동포에게 '탈북자'로 손가락질 당하며 사느니 차라리 유럽에 가서 그저 '아시안'으로 손가락질 당하며 살겠다." 망명을 떠난 북향민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돈을 더 지원해 달라는 게 아니다. '탈북자'라고 차별만 하지 말아 달라".

일반적으로 동포 또는 재외동포를 바라볼 때 그 시선에는 어느 정도 차별이 존재한다고 한다. 해당 재외동포가 살고 있는 나라가 그 재외동포에 대한 신뢰와 관련된다고도 한다. 재외동포가 살고 있는 거주 국가가 잘사는 나라면 그들을 향한 시선에 차별적 거부감이 적다는 것인데, 가령 미주 한인 재외동포나 재일동포, 유럽에 사는 한인동포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환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반면 재중동포인 조선족, 북향민들 즉 한국보다는 저개발국가인 나라에서 온 동포는 기본적으로 배타적이거나 시혜적인 관점에서 수용된다. 미주 한인들은 고국인 한국에 주로 돈을 쓰러 오지만, 조선족이나 북향민들은 한국에 돈을 벌러, 혹은 난민 자격으로 오니 그 차이가 차별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차별은 나타나는데 대놓고 드러나는 차별도 있지만 은연 중에 나타나는 차별도 있다. 차별이지만 차별로 인식되지 않는 경우다. 서있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북향민 1세대가 완전히 지나가면, 혹은 2세대까지 지나가면 차별이 끝나는 것일까? 1세대 또는 1.5세대로 분류 되는 북향민으로서 나는 1970, 80년대 미국으로 이민 갔던 한인들의 삶을 생각해 본다.

1970, 8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갔던 한인들은 세탁소나 청소일 등 궂은 일들을 하며 지금의 한인사회를 일궈냈다고 배웠다. 1세대들은 다음 세대를 위한 터를 닦는 것으로 충분히 소명을 다했을 것이다. 내가 속한 세대의 소명도 이와 같지 않을까?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제도권 사회에서 더 이상의 배제와 다름에 부딪힘 없이 자연스럽게 통합되어 살 수 있는 그런 날을 만드는 것. 적어도 북에서 남으로 이민 온 북향민으로서 경험하고 겪었던 일들을 나의 대에서는 끊어내는 것 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여전히 10대 아이들이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고 동남아의 외딴 정글을 헤매며 '동포의 나라' 한국 땅을 밟으려 목숨을 건다.

한국사회가 살아가기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지금의 우리 삶이 그들보다 힘들 수는 없다. 그래서 한국사회에 정착한 북향민들은 모두 잘 살아내야 한다. 제3국이 아닌, 꿈을 찾아 마침내 당도한 이곳에서.
덧붙이는 글 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작가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를 썼다.
#조경일 #리얼리티와유니티 #아오지까지 #북향민 #탈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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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경흥(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피스아고라 대표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한반도 리빌딩 2025>(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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