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향민과의 사회통합에 대해 강의하는 조경일 작가
조경일
어우러진다는 것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 북에서 온 사람들과 어우러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뭘 어떻게 하라는 걸까?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할 필요도 없다. 한 가지만 바뀌면 좋은 것이다. 바로 북한에 대한 관점이다. 북한은 하나의 마을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다. 수많은 퍼즐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듯, 북한도 여러 조각들이 모여 완성되는 넓은 그림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북한을 하나의 전체 그림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림의 일부인 조각을 그림 전체로 오해해서 바라본다.
아오지에서 온 청년은 '아오지'라는 퍼즐 한 조각이며, 평양에서 온 청년은 '평양'이라는 퍼즐 한 조각임에도, 그 한 조각의 퍼즐에서 비쳐진 모습을 북한 전체의 이야기로 오해하는 것이다. 아오지 청년과 평양 청년은 삶과 경험도 판이하게 달라서 공통점을 공유하면서도 다른 점이 많다. 그래서 북한을 바라볼 때는 퍼즐판 전체를 보는 마음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미사일과 핵만 쏘는 북한이 아니라, 굶어죽는다는 소식만 가득한 북한이 아니라, 진짜로 북쪽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아가는 것, 그것이 있을 때 북향민들과 더 잘 어우러질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더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그런데 북한을 탈출하면 모두가 같은 '탈북자'일까? 아니다. 극단적으로 아오지 출신 청년 조경일과 외교관 출신 태영호는 출신 배경과 살아온 경험이 전혀 다르다. 평양 상류층 엘리트와 음식을 훔쳐 먹던 아이의 경험이 같을 수는 없다. 같은 맥락으로 3만 5000명에 가까운 북향민들도 모두 다르다. 이들을 그저 '탈북자'라는 단일한 이미지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북한이라는 다이내믹한 세상을 제대로 바라 볼 수가 없다. 이는 북한을 계속 미지의 세계에 방치한 채 무지의 영역에 두는 것이다.
나는 한국 사회가 정말 북한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한다. 현재로서는 핵실험을 하고 군부에서 누가 해임되고 추방됐는지 정도만 알 뿐 일반 북한 인민들의 일상이 얼마나 치열하고 경쟁적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신흥자본가인 '돈주'들이 어떻게 부동산에 투자하고 분양권을 확보하는지 등 치열한 그들의 생존에 대해서는 겨우 북한전문가들이나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북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난무하고 이는 두려움과 경계심을 부른다.
뉴스에서 북향민 사망 소식이 들려온다. 특별한 죽음이 아닌데도 무연고 북향민의 죽음이라 그런지 언론에 소개된다. 가족 하나 없이 홀로 살아가다 1년이 지난 후에야 백골로 발견되었다. 시간이 너무 지나 사인을 밝히기 어려워 사인은 '원인불명'으로 처리되었고,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어서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해 망자를 보낸다. 나는 뉴스를 보며 같은 북향민으로서 조용히 애도를 표한다.
여전히, 기회의 땅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에서 매년 발행하는 북향민 사회통합지표를 보면 2022년 북향민들의 경제활동은 일반 남한 국민들처럼 활발하다. 경제활동 참가율을 보면 63%로 일반국민들과 비슷하다. 고용률은 59%로 일반 국민 63%보다 살짝 낮다. 반면 실업률은 6.1%로 일반 국민 실업률 3%보다 두 배나 더 높다. 2020년 실업률은 세 배나 높았다. 주당 근로시간을 보면 36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한 비율이 83%로 일반 국민 78%에 비하면 더 많은 시간 일하는 걸로 나타났다. 평균 임금은 238만 원으로 일반 국민 평균임금보다 50만 원이나 적다. 평균 근속기간은 35.3개월로 일반 국민 평균인 72개월의 절반이 채 안된다.
북향민들은 경제활동에 활발히 참여하지만 짧은 근속 기간과 적은 월급을 받고 있는데 이는 이유가 있다. 월급이 적은 거야 비정규직의 단순노동이 많아 그런 것이고, 근속 기간이 짧은 이유는 개인 사정을 제외하면 회사에서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이 힘들어서라기보다는 동료들과의 관계나 이질적인 문화와 거리감에서 오는 정서적 괴리가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북향민들의 사회경제적 성취 만족도는 54%로 일반 남한 국민 19%에 비하면 25% 포인트나 더 높다.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 개선 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훨씬 높다. 북향민들이 남한에서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 개선 가능성이 높다고 답한 비율이 70%로, 25%인 일반 남한 국민들에 비하면 3배나 높다. 자식세대에 대한 기대도 그렇다. 북향민들은 자기 자식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 개선 가능성에 67% 높다고 답했는데 이는 29%인 일반 남한 국민들에 비하면 기대치가 두 배가 훨씬 넘는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아무리 대한민국이 '헬조선'이니 해도 북향민들에게 한국 사회는 여전히 기회의 땅이자 희망의 땅이다. 더러는 반겨주지 않더라도, 차별과 배제를 느끼더라도 북향민들은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기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자식세대에서만큼은 정체성으로 호명되거나 배제되지 않도록 철저히 '한국화'되기에 매진한다. 철저히 한국 사람처럼 보여 별일 없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의 실향민들은 7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고향이 그립고 슬프다고 한다. 북향민은 제2의 실향민이다. 실향민과 다른 점은 원래 조국에서는 배신자로, 새로운 조국에서는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조국과 저 조국은 서로 적대적이며 왕래가 불가능하니 두 개의 조국 사이에 놓인 경계에 북향민들의 존재와 삶이 있다.
경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조국이 있다. 분단이 없는 나라, 정체성으로 호명되지 않고 남쪽과 북쪽의 경계가 허물어진 비전의 나라 말이다. 우리는 그곳을 향해 묵묵히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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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경흥(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피스아고라 대표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한반도 리빌딩 2025>(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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