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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4.12.05 09:49수정 2024.12.05 09:49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새벽에 나가는 알바 때문에 오후 10시 30분 전후로 잠자리에 든다. 어젯밤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한번 훑어보던 참이었다. 10시 30분이 살짝 넘은 시간이었다. 뉴스 속보로 '계엄령'이라는 말이 눈꼬리에 걸리면서 지나갔다. 처음에는 뭔가 잘못 본 줄 알았다. 2초 정도 후,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서 다시 뉴스 홈으로 돌아가 봤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윤석열 대통령, 10시 30분 비상 계엄령 선포!"
비상 계엄령? 군사 독재 시절을 장식하던 그 단어? 영화나 소설, 드라마에서나 환기되던 용어? 그런데 그건 이미 다 지나가 버린 과거 아니었나? 과거의 망령이 갑자기 살아나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도 이제 막 하루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 참에.
겁이 나거나 놀라기보다 너무 황당했다. 이 상황이 마치 한 편의 코미디 같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군인들이 나서는 건가? 해외 출국 금지? 비상 계엄이 되면 뭐가 달라지는 건데?'
역시 이미 잠자리에 누운 남편한테 급히 알렸다. 내 말에 화들짝 놀란 남편도 서둘러 핸드폰을 검색해 보더니 마찬가지로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곧 별일 아닐 거라고 했다. 정말 별일이 아닐까?
불안과 걱정이 넘치는 사람들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점령을 시도한 국회앞에서 시민들이 집결해 계엄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이 국회 담장에 올라가 있다.
권우성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 궁금해서 네이버 뉴스 댓글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접속이 안 되었다. 뭔가 이상했다. 이번에는 네이버 카페 창을 열었다.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점점 기분이 안 좋아졌다.
노트북 대신 핸드폰으로 네이버 카페에 접속했다. 이번에는 카페들이 떴다. 조금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카페 명을 클릭했더니 오류가 났다는 글만 뜰 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기분이 급속히 나빠졌다.
'이게 말로만 듣던 언론 통제인 건가?'
쿠데타가 일어나면 언론부터 장악한다더니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다른 사람의 반응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자 그제야 조금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을 순 없었다. 평소 잘 가는 온라인 주부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다행히 그곳은 별 이상이 없는 듯 사람들이 와글와글 떠들고 있었다.
한편으론 이게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또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적 여파를 걱정했다. 내일 학교 등교하느냐, 주식 시장은 어떻게 될까, 네이버 카페에 접속이 안 된다, 당장 부모님이 내일 비행기 타셔야 하는데 비행기가 뜰까 등등 사람들이 불안과 걱정이 넘쳤다.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점령을 시도한 국회앞에서 시민들이 집결해 계엄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권우성
하지만 누구도 그에 대해 뚜렷이 답을 줄 수가 없었다. 모두들 이런 엄청난 상황이 벌어진 데 대해 황당함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보이스톡이 다급하게 울렸다. 싱가포르에 있는 아들도 뉴스를 본 모양이었다. 아들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우리도 답해 줄 말이 없었다. 그렇게 통화하던 중, 아들이 말했다.
"엄마 아빠, 그냥 이쪽으로 올래요?"
웃음이 나왔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싱가포르에 간다는 건 말도 안 되었다. 괜찮을 거라고 아들을 안심시키고 나는 일단 잠을 청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어쨌거나 내일 새벽 알바는 가야 했기 때문이다.
새벽 2시 정도에 잠이 깼다. 제일 먼저 핸드폰부터 켰다.
"계엄령 해제 의결안 통과."
뉴스창에 헤드라인이 크게 떠 있었다. 아,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비상계엄 상황이 아니구나. 안도하는 기분으로 다시 잠을 청했다.
창피하다, 정말 창피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예상대로 온 세상이 난리였다. 국내 뉴스도, 외신도, 우리나라의 하룻밤의 비상계엄으로 폭발할 것 같았다. 알바를 끝내고 오는 길에 미국에 있는 친구와 카톡을 했다. 카톡 대화 끝에 우리는 둘 다 같은 말을 했다.
'정말 창피하다.'
오전 중에 가족 단톡방에 아들에게서 괜찮냐는 톡이 올라왔다. 서로 괜찮다는 말을 하다가 다시 한번 같은 말이 나왔다.
'정말 창피하다.'
일을 저지른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국민이 창피해야 하는 걸까? 비상계엄이란 것은 대통령이 사용할 수 있는 정말 '최후의, 최후의, 최후의 수단'이 아닐까? 대통령 본인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생각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정말 국민을 위한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공직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의무다.
지도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후의 비상 권력을 남용함으로써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안게 되었다. 그런 지도자를 둔 것이 국민으로서 창피할 따름이다. 기후 변화와 물가 폭등으로 그렇지 않아도 다사다난했던 2024년을 장식하는 말이 하나 더 늘었다. '비상계엄령.' 그리고 거기에는 한 단어가 하나 더 따라 붙었다. '창피함.' 부디 이 창피함이 마지막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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