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점령을 시도한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집결해 계엄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권우성
쿠데타 성공 단계
"설사 병력과 장비를 중앙에 진출시켰다 해도 국민을 설득할 방도가 없다.", "과거처럼 몇몇 신문 방송사 접수만으로 국민 동의를 구할 수 없으며 휴대전화와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국민은 쿠데타군을 응징할 것이 분명하다."
"더 이상 군이 한국 사회의 최고 엘리트 집단이 아니다.", "군사 쿠데타는 다른 사회 부문보다 군이 가장 앞선 곳에서나 가능하다. 그래야 군이 명분과 힘을 가지고 다른 부문을 압도한다. 그러나 이젠 그런 시대가 지났다."
"너무도 명백한 앞의 4가지 사실을, 누구보다 군이 먼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쿠데타는 더 이상 없다."
작년에 20년 전 자료를 인용한 YTN 이대건 기자는 "20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 한국 사회가 더 촘촘해지고 더 개방되어 이제 무모한 쿠데타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라고 썼다. 그럼에도 불과 1년 만에 유사 쿠데타 시도가 발생했고 처참하게 실패했다.
핸드폰, 핸드폰 그리고 핸드폰
나는 쿠데타와 반란이 불가능한 이유를 압축해 한 가지만 꼽으라면 '깨어있는 시민이 치켜든 핸드폰의 위력'이라 말하고 싶다.
첫째, 시도 때도 없이 녹화·녹취가 가능한 휴대폰은 가담자들의 소통 자체를 최소화한다. 범죄 가담 자체를 위축시키고 신뢰할 만한 극소수끼리만 소통이 가능하니 그만큼 가담 병력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
둘째, 명태균 게이트가 생생하게 보여주었듯 온 세상에 까발려지는 헨드폰 통화 내용은 부정하고 위법한 행위에 가담하였을 경우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주었고 그만큼 반란 가담을 어렵게 한다.
![비상계엄에 항의하는 시민들](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4/1204/IE003385790_STD.jpg)
▲비상계엄에항의하는 시민들
YTN화면캡처
셋째, 국민들 손과 손마다 들려 있는 핸드폰은 그 자체로 1인 방송국이고, 다큐 제작자이며, 역사 기록물이다. 1980년 광주의 그 가슴 아픈 사진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갈 '바보'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 짓을 벌인 그자와 그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또 무속일까? 그저 무지하고 무모한 탓이라 하기엔 모자라 보여 드는 생각이다.
'용산의 반란'은 물거품이 되었다. 단 한 사람의 소중한 생명도 다치지 않고 그가 국민들 시선 밖으로 사라질 수 있게 되어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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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982 한국해양대학, 1984 한진해운 항해사, 신조선 김독, 1992 의료재단 전산실장, 기획실장, 마산대학교 겸임교수, 2006년 서프라이즈 대표, 2010년 천안함 사건 민주당 추천 조사위원, 2011년 인터넷언론 진실의길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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