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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이 불가능한 이유 하나를 꼽으라면

언제 어디서나 녹화·녹취가 가능한 휴대폰의 위력

등록 2024.12.04 15:43수정 2024.12.0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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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청 진입하는 계엄군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국회 본청 진입하는 계엄군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불과 닷새 전 열린 청룡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던 영화는 <서울의 봄>이었다. 1979년 12월 12일,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단 9시간의 '어이없는' 이야기를 영화에 담아 1,300만 관객을 모았다.

굳이 손을 이끌어 <서울의 봄>을 함께 관람했던 아들과 딸은 80, 90년대 출생인지라 12·12 군사반란에 관한 이야기는 사회 교과서 한 구석에 '12.12사태'라는 단편적 용어로 기억될 뿐이어서, 그 의미와 성격을 입 아프게 설명해주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영화 '서울의 봄' 자료사진
영화 '서울의 봄'자료사진제작사 이미지 캡처

아뿔사. 무려 45년이 지난 2024년 12월에 그와 빼닮은 반란이 고스란히 재현되리라곤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어젯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6시간의 '어이없는' 상황은 부모 세대가 어떤 질곡의 시대를 살아야 했는지 아이들이 생생하게 느끼기에 충분했을 것 같다. 어렵게 일군 민주주의가 쉽게 무너지는 것이 아니란 교훈과 함께.

<서울의 봄>에서는 당시 반란을 막을 기회가 10번은 있었다고 했다. 그만큼 반란군은 치밀하지 못했고 '하찮은 수준'이었다는 것. 그럼에도 그를 막지 못했다. 국민 대부분은 도대체 뭔일이 발생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상황이 끝나 버린 것이다. 반란을 막을 수 있었던 당사자들의 무능과 책임 회피는 보는 내내 고구마 먹은 느낌을 주었다.

2000년 이후 쿠데타가 불가능한 5가지 이유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월간중앙> 9월호 '군은 청와대를 어떻게 보나' 기사에서 현역 사단장 K소장이 "이제 한국에서 군사 쿠데타는 영원히 불가능하다"며 들었던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쿠데타 모의 단계


"휴대전화 때문에 보안 유지가 불가능하다.", "설사 모의가 성공했더라도 거사로 이어지기 어렵다, 특정 부대, 특정 집단의 일거수일투족이 사람들에 의해 순식간에 세상에 알려지기 때문이다."

쿠데타 발발 시점


"군사와 장비를 집결시키고 중앙으로 치고 들어오려고 해도 교통체증 때문에 이동이 어렵다.", "과거 통행금지가 있던 때는 신속한 이동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당국의 통제가 없는 한 수도권 교통체증을 극복하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점령을 시도한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집결해 계엄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점령을 시도한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집결해 계엄해제를 요구하고 있다.권우성

쿠데타 성공 단계

"설사 병력과 장비를 중앙에 진출시켰다 해도 국민을 설득할 방도가 없다.", "과거처럼 몇몇 신문 방송사 접수만으로 국민 동의를 구할 수 없으며 휴대전화와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국민은 쿠데타군을 응징할 것이 분명하다."

"더 이상 군이 한국 사회의 최고 엘리트 집단이 아니다.", "군사 쿠데타는 다른 사회 부문보다 군이 가장 앞선 곳에서나 가능하다. 그래야 군이 명분과 힘을 가지고 다른 부문을 압도한다. 그러나 이젠 그런 시대가 지났다."

"너무도 명백한 앞의 4가지 사실을, 누구보다 군이 먼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쿠데타는 더 이상 없다."

작년에 20년 전 자료를 인용한 YTN 이대건 기자는 "20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 한국 사회가 더 촘촘해지고 더 개방되어 이제 무모한 쿠데타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라고 썼다. 그럼에도 불과 1년 만에 유사 쿠데타 시도가 발생했고 처참하게 실패했다.

핸드폰, 핸드폰 그리고 핸드폰

나는 쿠데타와 반란이 불가능한 이유를 압축해 한 가지만 꼽으라면 '깨어있는 시민이 치켜든 핸드폰의 위력'이라 말하고 싶다.

첫째, 시도 때도 없이 녹화·녹취가 가능한 휴대폰은 가담자들의 소통 자체를 최소화한다. 범죄 가담 자체를 위축시키고 신뢰할 만한 극소수끼리만 소통이 가능하니 그만큼 가담 병력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

둘째, 명태균 게이트가 생생하게 보여주었듯 온 세상에 까발려지는 헨드폰 통화 내용은 부정하고 위법한 행위에 가담하였을 경우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주었고 그만큼 반란 가담을 어렵게 한다.

비상계엄에 항의하는 시민들
비상계엄에항의하는 시민들YTN화면캡처

셋째, 국민들 손과 손마다 들려 있는 핸드폰은 그 자체로 1인 방송국이고, 다큐 제작자이며, 역사 기록물이다. 1980년 광주의 그 가슴 아픈 사진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갈 '바보'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 짓을 벌인 그자와 그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또 무속일까? 그저 무지하고 무모한 탓이라 하기엔 모자라 보여 드는 생각이다.

'용산의 반란'은 물거품이 되었다. 단 한 사람의 소중한 생명도 다치지 않고 그가 국민들 시선 밖으로 사라질 수 있게 되어 참 감사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넷언론 진실의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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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시민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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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982 한국해양대학, 1984 한진해운 항해사, 신조선 김독, 1992 의료재단 전산실장, 기획실장, 마산대학교 겸임교수, 2006년 서프라이즈 대표, 2010년 천안함 사건 민주당 추천 조사위원, 2011년 인터넷언론 진실의길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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