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괴물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반국가세력'이라는 괴물이. 해방 이후 여러 번 이름을 갈아치웠지만 정체성은 여전히 수구보수인 정치세력, 군대, 경찰이 이 괴물을 퇴치한다는 명분으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시작은 1948년 제주4.3 봉기였다. 지체되는 통일정부 수립과 해방 이후 미군정의 지배, 군경과 서북청년단의 지속되는 고문과 탄압에 분노한 제주도 남로당은 한라산 오름마다 봉화를 올리며 4.3항쟁의 신호탄을 쐈다. 미군정 등에 업혀 당선된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주의는 악', '빨갱이 사냥'이라는 미국의 반공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전남 여수에 주둔한 군대를 제주로 보내 4.3을 진압하라고 명령했다.
군대가 동포 학살은 할 수 없다며 거부하고 무장반란을 일으키자, 이승만 정권은 '반국가적 반란'이라며 첫 계엄령을 선포했다. 진압군에 의해 2500명 민간인이 살해됐다. 제주에 계엄령을 선포할 때도 명분은 '매국 극렬분자 소탕'이자 '악당 탄압'이었다. 집권 정부에 반하는 좌익 세력은 모두 반국가적이라는 논리다. 이 계엄령은 4.3에서 참혹한 학살극인 '초토화작전'으로 이어졌다.
불법으로 집권하고, 권력을 내려놓고 싶지 않은 독재자들은 반대세력을 '계엄령'을 통해 탄압했다. 4.19혁명 때 이승만이, 6.3항쟁과 부마항쟁 때 박정희가, 5.18 민주항쟁 때 전두환이 그랬다. 전두환의 계엄 명분도 '북괴남침설'이었다. 비상계엄 확대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신군부가 조작한 것이었다. 지난 3일 밤에는 느닷없이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기 위한 조치란다. 45년 만에 선포된 계엄령인데, 어째 레퍼토리가 뻔하다.
가만 보니 이 나라에서 '종북'과 '반국가세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반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종북은 '자신과 정치적으로 의견이 다른 집단'으로 '반국가세력'은 '국가'가 아니라 '나에게 반하는 세력'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든다. 위에 언급한 4명은 모두 보수정당에 몸담은 이들이니 진보 이념을 가지면 모두 북한을 따르는 세력인가? 그들 논리대로면 사회민주주의가 발달한 유럽도 '종북'이라는 건가? 다 떠나서 민생도, 경제도, 정의도 짓밟는 대통령의 폭주에 반대하는 게 좌우가 갈릴 문제인가? 진정한 보수라면 나라의 위신을 추락시키는 대통령에게 충고라도 해야 되는 게 아닌가?
이처럼 권력을 지키고 싶다는 바람이 자신과 다른 정치적 세력을 '적'이자 '괴물'로 규정하는 건 다른 나라 사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공동의 적'으로 만들고 탄압해 나머지 국민을 단결시킨다. 설사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괴물이 무참히 학살당하는 모습을 본 이들은 겁에 질려 쉽게 저항하지 못한다. 600만 유대인을 죽인 끔찍한 홀로코스트의 역사다.
이런 히틀러도 외부에서 적을 찾았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사뭇 다르다. 트럼프조차 '이민자'라는 외부의 적을 마련해 대선에서 승리했다. 우리나라는 내부에서 적을 찾았다. 다른 민족이라고 해서 그래도 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같은 민족끼리, 그것도 우리가 만들어낸 논리도 아닌, 철 지난 미국의 반공논리로 국가가 나서 실체 없는 '괴물'을 만들어 학살하고 탄압해 왔다니 기가 막히지 않는가. 미군정은 끝났지만, 그 헤게모니는 아직 유효한 셈이다.
45년 만에 선포된 계엄령은 의회 주도로 빠르게 해제됐다. 하지만 아직도 괴물 운운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그 세력들에게 단호히 말하겠다. 당신들이 말하는 그런 괴물은 없다고. 다른 이념을 가진 정치세력을 괴물로 규정하는 당신들 안의 '괴물'부터 들여다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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