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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장애인활동지원사 이야기] 중요한 건 장애인 당사자와 신뢰 쌓기

    등록 2024.12.06 14:58수정 2024.12.06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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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비상계엄령 뉴스 보셨..."

    아차, 시작부터 실수다. 지난 4일 장애인활동지원사로서 실습 첫날, 시각장애인 선생님께 무심결에 '보셨냐'는 표현을 쓴 것이다. 친근하게 대화를 시작하려던 의도였으나, 방안 TV에서 흘러나오던 뉴스 보도에 무심코 말을 얹으려던 게 문제였다. 나머지 말들을 후다닥 뭉뚱그려 상황을 수습했지만, 죄송함과 부끄러움이 확 밀려왔다.


    그러나 자책할 겨를이 없었다. 선생님의 병원 일정이 있어 서둘러 집을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외출 채비를 마친 선생님을 보고 문득 고민이 스쳤다. 가방을 들어드려야 할까. 그러나 이내 깨달았다. 지나친 배려가 오히려 편견일 수 있고, 일상에서 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는 것이 활동지원사의 본질이라는 것을. 우리는 각자의 짐을 챙겨 현관을 나섰다. 그렇게 난생처음 시각장애인과의 동행이 시작됐다.

    *안내 보행 팁 : 안내자는 시각장애인보다 반보 앞에 선 후, 팔꿈치를 시각장애인에 살짝 내밀어 잡도록 한다.

    불편이 '당연함'을 흔들다

    서울에서 용인까지의 여정은 두 번의 지하철 환승과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해야 했다. 집을 나선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불편'이란 단어가 실감 났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대부분 포화 상태였고, 노약자와 젊은 대학생 등 비장애인들이 밀고 들어오는 탓에 우리가 설 자리는 좁아지기 일쑤였다.

    물론 이동권은 장애인만 보장받는 권리가 아니기에 그 혜택이 장애인에게 더 많이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교통약자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약자, 유아차를 끈 부부, 임산부 등등 다양하다. 나 역시 큼지막한 캐리어를 끌고 다닐 때는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적도 있다. 다만, 시각장애인이 먼저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비장애인이 조금만 배려해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시각장애인과 지하철을 타고 병원으로 가던 날
    ▲ 시각장애인과 지하철을 타고 병원으로 가던 날 최서정

    엘리베이터를 포기하자, 길게 늘어진 에스컬레이터에서 또 다른 불편함이 생겼다. 흔히 한국에서는 바쁜 사람을 배려해 '한 줄 서기'가 일반적이다. 통상 왼쪽 줄은 걸어가고, 오른쪽 줄은 서서 간다. 평소 같았으면, 성격 급한 나도 왼쪽으로 걸어 올라갔겠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시각장애인과 이용할 때는 나란히 서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뒷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시각장애인의 앞뒤로 이동하는 것이 사고의 주원인이라고 한다. 예상대로 나로 인해 시작된 '두 줄 서기'는 정체 현상을 만들어냈고, 곧이어 "왜 안 가는 거야?"라는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한 줄 서기 문화가 불편해진 순간이다.


    지하철 승강장과 전동차 사이의 간격은 오늘따라 유난히 넓어 보였다, 혹여 선생님의 발이 빠지지는 않을까, 내내 마음을 졸였다. 지난해부터 서울시가 지하철 승강장 '발 빠짐 사고'를 막기 위해 자동안전발판 시스템을 설치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는데,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는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무엇보다 평소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소리가 온 신경을 자극했다. 통화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 심지어 패딩의 스치며 나는 사부작거리는 소리까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사실상 '소음'이었다. 지하철의 덜컹거림은 말할 것도 없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어디를 가는 그 자체가 일이구나' 싶었다. 동시에 활동지원사가 왜 필요한지도 절실히 느껴졌다.

    긴장이 최고조로 도달했던 건, 퇴근 시간과 맞물린 9호선 '만원 지하철' 안에서였다. 발 디딜 틈 없는 혼잡 속에서 간신히 손잡이를 잡았지만, 분주하게 타고 내리는 승객들에 이리저리 치이며 중심을 잡기조차 어려웠다. 사실 열차를 타자마자 많은 인파에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던 나를 좌석 근처의 비교적 안전한 공간으로 이끈 것도 선생님이었다.

     시각장애인과 지하철을 타고 병원으로 가던 날
    ▲ 시각장애인과 지하철을 타고 병원으로 가던 날 최서정

    물론 사람들을 헤집고 안으로 들어서는 우리를 향해 잠깐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말이다. 활동보조 이론교육에서 배운 대로라면 자리 양보를 부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모든 게 서툴고 어렵기만 하다. 그래도 머지않아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어둔 양보 요청 문구를 여러 사람에게 들이댈 수 있는 당돌함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어디까지 '개입'해도 되는 걸까?

    모든 순간,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활동지원사의 역할은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것이지만, 어디까지가 '적절한 도움'이고, 어디서부터가 '과도한 간섭'일까.

    일례로 선생님은 장애인 콜택시를 부르기 위해 스마트폰 '토크백' 서비스(화면의 상태를 소리로 말하고 듣는 기능)를 사용했지만, 음성 인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내가 나섰다면 몇 번의 클릭으로 금세 끝날 일이었겠지만, 선생님의 요청이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결국 선생님은 잠금 비밀번호를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동행 첫날 만에 선생님의 사생활을 알게 된 것이다.

    앞으로도 선생님의 눈을 대신하며, 사생활에 개입해야 하는 순간이 무수히 많을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지원과 침해의 경계에서 고민하며, 자책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매 순간 장애인 당사자와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고, 그들의 의견을 우선으로 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의 선택권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자립생활의 가치에 역행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스스로 답을 찾으려 하지 않고, 함께 답을 만들어가는 것이 활동지원사의 진정한 역할이 아닐까.

    📍시각장애인에 대한 흔한 오해, '앞이 아예 안 보인다?'
    다 그런 건 아니다. 시각장애인은 전혀 보이지 않는 '전맹'과 잔존시력이 있는 '저시력'으로 나뉜다. 저시력 장애인은 빛과 사물의 윤곽을 최소한으로 인지할 수 있다. 국내 시각장애인의 90%가 저시력 장애인에 해당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의 일부는 제가 진행하는 관악FM 라디오에도 방송될 수 있습니다.
    #장애인활동지원사 #20대장애인활동지원사 #시각장애인 #자립생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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