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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주민만 111명... 정부의 늦어버린 약속

[2024 홈리스 추모제 기획연재 1] 홈리스의 주거권 보장

등록 2024.12.10 11:05수정 2024.12.1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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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의 사망률(연령표준화)은 연구마다 차이가 있으나 전체 인구집단 대비 1.8배~4.18배에 이릅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이태진 외 2022)에 따르면, 홈리스의 사망률은 계속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심각하고 악화하는 홈리스의 죽음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내야 할까요? 홈리스를 애도하고 추모하는 것은 무엇을 바꾸자는 다짐일까요? 2001년부터 동짓날을 즈음해 열리는 홈리스추모제(12.20.19시, 서울역광장)를 앞두고 '2024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주거', '공존할 권리', '추모'를 주제로 세 차례에 걸친 연속 기사를 작성합니다.[기자말]
'집'이 없이 산다는 건, 피로한 몸과 마음을 쉬게 할 곳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쪽방과 고시원, 노숙인 생활시설과 같이 집 아닌 곳에서의 삶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를 사는 '홈리스'의 일상은 무거운 등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긴장의 연속입니다.

비유도 아닌 것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많은 거리 홈리스들은 어깨 통증을 호소합니다. 두 벌 옷을 갖고 세탁하며 번갈아 입고 싶지만 배낭에 침낭 하나 넣고 나면 자리가 나지 않습니다. '홈리스'는 적정한 수준을 갖춘 주거가 없는 상태 또는 그러한 이들을 일컫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공통된 필요는 '주거'이고, 주거는 여타 사회서비스에 앞서 제공되어야 합니다.

주거지원에 취약한 '노숙인복지법' 개정

노숙인복지법은 '노숙인시설'에 많은 부분을 할애합니다. 총 28개 조항 중 11개가 노숙인시설 설치와 운영에 관한 내용입니다. 복지 서비스를 규정한 조항 역시 의료, 급식과 같은 지원은 '시설'을 통해서 제공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주거지원의 첫 유형으로 "노숙인복지시설에 의한 보호"를 제시하며, 시행령에서는 아예 "노숙인시설의 장의 의견을 고려하여 해당 노숙인 등에게 적합한 주거지원을 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노숙인복지법이 아니라 '노숙인시설 설치·운영법'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유는 노숙인복지법이 법 제정 이전에 존재하던 부랑인및노숙인보호시설설치·운영규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구태를 벗고 시설입소를 전제하지 않는, 거리 노숙 등 다양한 홈리스 상태에서 주거 제공을 중심으로 하는 법률로 개정되어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임시주거비 지원'을 '임시주거 지원'으로 개정해야 합니다. 노숙인복지법에 따른 '임시주거비 지원'은 거리 홈리스에게 임시주거를 얻을 수 있는 '비용'을 제공하는 정책입니다. '거처' 제공이 아니라 '비용' 제공이다 보니 고시원, 쪽방과 같은 비적정 임대시장을 부양할 뿐 제공되는 주거의 질이 취약하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임시주거로 활용되는 쪽방과 고시원 업자들은 임시주거지원 상한액인 주거급여에 맞춰 월세를 올려 받을 뿐 주거수준 개선을 위한 어떤 조치도 하지 않습니다.

문턱 높은 임시주거용 거처 임시주거를 구하기 위해 돈의동 쪽방에 방문한 K씨. 절단 장애로 휠체어를 이용하던 그는 좁은 계단과 높은 문턱들로 방을 구하지 못하고 2020년 7월, 건강 악화로 숨을 거뒀다.
▲문턱 높은 임시주거용 거처 임시주거를 구하기 위해 돈의동 쪽방에 방문한 K씨. 절단 장애로 휠체어를 이용하던 그는 좁은 계단과 높은 문턱들로 방을 구하지 못하고 2020년 7월, 건강 악화로 숨을 거뒀다. 강민수

서울시와 보건복지부는 임시주거용 거처의 수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준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승강기 미설치, 좁은 복도, 계단, 문턱 등 열악한 시설 설비는 장애인과 노인 같은 주거약자들을 배제하며, 성별 층간·편의시설 분리 등을 고려하지 않은 몰성적(沒性的) 운영으로 여성들의 접근도 매우 불리합니다.


따라서 '임시주거비 지원'을 '임시주거 지원'으로 변경하고, 하위 법령에 임시주거지원의 구체 내용을 규정해야 합니다. 이때, 구체 내용으로 성별·장애·건강 등 특성을 고려한 주거제공, 주거정착을 위한 충분한 지원 기간 보장, 임시주거지의 구체 주거기준(실별 면적, 주방·세면장·화장실 등 편의시설의 설치기준 등) 등을 포함해야 합니다.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 지구 연내 지정


2021년 2월 5일, 정부는 국내 최대 쪽방촌인 동자동 쪽방촌 일대를 공공주택사업으로 정비하겠다 발표하였습니다. 이 계획을 요약하면, 쪽방 주민 등 기존 거주자의 재정착을 위한 공공주택(임대 1250호, 분양 200호)을 건설하되, 건설 과정에 임시주거를 제공해 재정착을 돕고, 이 과정이 끝나면 민간분양주택 960호를 건설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계획은 "선(先)이주 선(善)순환"식 개발이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일정 계획을 보면 ▲2021년 공공주택지구의 지정, ▲2022년 지구계획 수립 및 보상, ▲2023년 임시이주 및 공공주택 단지 착공, ▲2026년 입주로 예상되었습니다. 그러나 2024년이 채 한 달도 안 남은 현재, 2021년도에 마무리됐어야 할 첫 단계인 '공공주택지구의 지정'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국토교통부는 건물주들의 시위, LH공사에 대한 불신 등을 사업추진 지연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건물주들은 왜 반대하는 걸까요?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령(제3조)은 공공주택 사업을 할 경우 공공임대주택을 35% 이상 건설하도록 규정합니다. 반면, 건물주들의 요구대로 민간 개발을 할 경우 서울특별시 고시 '재개발사업의 임대주택 및 주택규모별 건설비율'에 따라 최소 15%만 건설하면 됩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사업대상지 내 건물 222동의 소유주 중 실거주자는 18.7%에 불과합니다.

즉, 건물주 대부분은 동자동 공공주택 예정지 내 건물을 '주거'가 아닌 '이윤'을 목적으로 소유하고 있고, 개발이익을 더 뽑아내기 위해 공공주택 사업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런 탐욕에 근거한 반대에 국토교통부의 '설득'이란 전략은 가당치 않습니다. 부동산 불로소득에 대한 탐욕과 "서민의 주거안정 및 주거수준 향상"을 위한 공공주택사업은 반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산 자의 소망, 죽은 자들의 원망. 공공주택 사업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발표 3년을 맞은 2월 5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공공주택 사업 발표 이후 돌아가신 주민들의 영정을 들고 공공주택 지구의 신속한 지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산 자의 소망, 죽은 자들의 원망. 공공주택 사업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발표 3년을 맞은 2월 5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공공주택 사업 발표 이후 돌아가신 주민들의 영정을 들고 공공주택 지구의 신속한 지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2024홈리스주거팀

공공주택사업이 지연되는 사이, 일부 쪽방 건물주들은 주민등록 업무 지침의 허점을 이용해 쪽방 주민들의 전입신고를 막고 있습니다. 공실을 늘려 임대주택 건설 등 세입자 대책을 약화시키려는 속셈인 것입니다. 그로 인해 해당 쪽방 주민들은 '거주·이전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를 부정당하고 있습니다. 우편물 수령 등 기본적 일상도 침해당하며, 엄연히 상주하고 있음에도 거주불명등록 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계획이 발표된 이후 10월 4일 기준, 돌아가신 주민은 111명에 이릅니다. 서울역 일대 쪽방 주민 868명(2023년 말 기준)의 13%에 이르는 높은 수치입니다. 그렇기에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 사업은 이미 너무 늦어버린 약속입니다. 지연되는 시간은 주민들에게 퇴거와 죽음의 시간임을 국토교통부는 직시하고 신속히 공공주택지구 지정 고시를 시행해야 합니다.

고시원 거주자의 주거안정 대책 마련

국토교통부의 '주택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2022, 5년 단위)에 따르면 전국 고시원·고시텔 거주 15만8374가구의 절반 이상인 8만1884가구가 서울에 존재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서울시가 임시주거비 지원을 통해 거리 홈리스에게 지원하는 거처의 대부분 또한 고시원입니다. 이렇듯, '고시원'은 주거취약계층의 거처로 현실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비중이 큽니다. 그러나 이들 고시원 주민의 주거 실태는 취약하기만 합니다.

먼저, 고시원 주민들은 부당한 퇴거 압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습니다. 올 한 해 동안 '2024홈리스주거팀'에 접수된 고시원 퇴거 문제(서울지역)만 해도 재개발에 따른 P고시원 주민 퇴거(4월), 재건축에 따른 E고시원 주민 퇴거(5월), 용도변경에 따른 A고시원 주민 퇴거(7월), 재건축에 따른 A고시원 주민 퇴거(10월) 등 줄을 이었습니다.

'2024홈리스주거팀'은 E고시원 퇴거 문제에 개입하며 법원을 통해 ▲건물주에게 신청일로부터 3개월의 퇴거 기한을 줄 것, ▲ 퇴거와 동시 각 300만 원씩 연대하여 지급할 것, ▲ 건물의 점유와 사용에 필요한 전기, 수도, 가스 등의 공급 중단과 출입방해 등의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정을 끌어낸 바 있습니다(결정문 보기).

학습이 아닌, 주거를 용도로 고시원에 거주하는 이들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이 보장한 계약 기간 동안 해당 건물을 사용·수익할 정당한 권한이 있습니다. 대법원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상 주거용 건물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실제 용도에 따라서 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기도 하였습니다(대법원 1996.3.12. 선고 95다 51953). 따라서 고시원 거주자들이 부당하게 퇴거당하지 않도록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등 지자체는 고시원 주민 부당 퇴거 방지 및 구조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약자 팔이 말고 고시원 대책 달라 7월 5일, ‘약자와의 동행’ 홍보를 위해 동자동 쪽방을 찾은 오세훈 시장에게 퇴거 대상 고시원 주민과 2024홈리스주거팀 활동가들이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약자 팔이 말고 고시원 대책 달라 7월 5일, ‘약자와의 동행’ 홍보를 위해 동자동 쪽방을 찾은 오세훈 시장에게 퇴거 대상 고시원 주민과 2024홈리스주거팀 활동가들이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2024홈리스주거팀

고시원 거주자에게 불합리한 처우를 강요하는 계약 관행도 폐지해야 합니다. 일부 고시원들은 입실원서, 입실계약서 등의 서류를 통해 "민원 발생 2회 시 자동계약 해지 및 강제퇴실", "원장, 총무(관리자)의 타당한 권고를 임의로 거부한 경우 강제퇴실" 등 임의적이고 부당한 내용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거급여 인상 시 임대료 인상', '별도 키를 통한 개별실 임의 개방과 간섭' 등 명문화하지 않은 부당한 운영도 다수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는 고시원 거주 주민들의 주거안정을 해치는 부당 조치들로, 국토교통부와 지자체의 주거 담당 부서들은 이와 같은 현실을 파악하고 공평한 임대차 계약 및 운영이 이뤄지도록 개입해야 합니다.

그 외에도 쪽방·고시원 등지 거주자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에 활용되는 매입·건설임대주택의 공급 확대와 같은 개선도 필요합니다. 정책 대상이 수십만 명에 해당하는 만큼 체계적이고 안정적 운영을 위해 국토교통부의 '훈령'이 아니라, '법률'로 승격하여 제도적 위상을 강화할 필요도 있습니다.

'홈리스추모제'는 극한의 주거 빈곤 상황에서 돌아간 동료 시민들을 추모하는 자리입니다. 따라서 '홈리스추모제'는 누구도 예외 없이 적정 주거에 살 권리를 요구하고 결의하는 장이어야 합니다. 그 자리, 그리고 그 이후 이뤄질 요구의 자리에서 함께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2024홈리스추모제 포스터 2024년 12월 20일(금), 동짓날을 하루 앞 둔 이날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추모제가 열린다.
▲2024홈리스추모제 포스터 2024년 12월 20일(금), 동짓날을 하루 앞 둔 이날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추모제가 열린다. 2024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
2024홈리스추모제 일정 2024홈리스추모제는 12월 2일, 추모주간선포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주거팀, 공존권팀, 추모팀 주관의 활동들이 진행된다.
▲2024홈리스추모제 일정 2024홈리스추모제는 12월 2일, 추모주간선포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주거팀, 공존권팀, 추모팀 주관의 활동들이 진행된다. 2024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동현씨는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입니다.
#노숙 #쪽방 #홈리스 #고시원 #홈리스추모제
댓글

홈리스행동은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약칭,노실사)'에서 전환, 2010년 출범한 단체입니다. 홈리스행동에서는 노숙,쪽방 등 홈리스 상태에 처한 이들과 함께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인권지킴이, 미디어매체활동 등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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