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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맞서는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

[서평] 재난은 보편적 경험, 만화가 이종철의 <힌남노>(2024, 보리)

등록 2024.12.09 14:08수정 2024.12.0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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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이종철이 <힌남노>(2024, 보리)를 출간했다. 이 책은 택배 까대기 노동자의 일상을 다룬 <까대기>(2019, 보리)와 식당에서 일하는 이모들의 이야기를 다룬 <제철동 사람들>(2023, 보리) 이후 세 번째 책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까대기> 이후 출간된 두 책의 출간 시기가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창작자에게 있어서 매년 출간되는 신간을 특이하게 볼 필요는 없지만, 자기 고백을 창작 방법으로 삼는 작가의 경우는 이례적이다. 그 이유는 새로운 경험을 축적할 시간이 무한대로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주어진 서사를 한번 쏟아내고 나면 새롭게 쌓을 시간이 필요한데, 이런 여유도 없이 새로운 책이 출간된 것이다.


첫 책 <까대기>는 지방에서 올라온 무명 만화가의 일터(택배노동현장)가 작품 소재로 다뤄졌고, 두 번째 책은 만화가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고향 공단의 풍경을 담았다. 이처럼 이종철은 이미 '과거'와 '현재'를 창작의 소재로 모두 소진한 상태였다. 그런데 1년 후, 또다시 자기 서사를 들고나온 것이다. 그러니 한 명의 독자로서 텍스트에 숨겨진 사연에 고심하게 된다.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힌남노> 표지
<힌남노> 표지 보리출판사

그런데 막상 책을 펼쳐본 순간 이런 우려는 덮이게 되었다. 창작자인 그가 다소 급하게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작품에 고스란히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두 번째 작업인 <제철동 사람들>을 출간했고, 그 이후 고향에 내려가 쉬면서 지내려고 계획했지만, 고향에 내려가 있는 동안 태풍 '힌남노'를 만나게 된 것이다.

만화가는 초대형 태풍 힌남노를 겪게 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재난'을 난생처음 경험하게 된다. 그에게 이런 재난은 충격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재난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처음 겪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순간일 수 있다. 고향에 내려가 이런 경험을 겪었으니, 창작자는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재난을 겪는 과정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이웃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과정을 탐닉하고 있노라면 힘든 재난이 닥쳐오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맞서는 인간의 희망을 확인할 수 있다. 곁에서 용기를 주는 이웃의 힘을 느낄 수도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피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재난을 돌파할지 머리 맞대며 난간을 돌파하는 동네 주민들의 선량한 마음도 확인할 수도 있다.

작품에 숨겨진 인간의 선한 마음과 더불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초대형 태풍 '힌남노'의 위력보다도 태풍의 파괴력을 자연 스스로 충분히 치유할 수 있음에도,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태풍 피해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버겁기는 하겠지만, 아무리 큰 태풍이 오더라도 자연 스스로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득과 편리를 위해 인위적으로 물길을 틀고 폭을 좁혔다. 폭이 좁아지니 물은 잘 빠지지 않았고, 강물은 하류로 내려갈수록 물길이 넓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폭우가 쏟아졌을 때, 대응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강물은 순식간에 범람하게 되었다.

 〈힌남노〉 27쪽.
〈힌남노〉 27쪽. 보리출판사

강물이 한번 차오르면 걷잡을 수 없이 수위가 높아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폭우가 쏟아질 때는 바다보다 위험한 곳이 강가다. 2022년 9월 6일 이른 새벽 태풍 힌남노가 포항을 덮쳤을 때 마을은 그렇게 잠기게 되었다. 그 당시 포항에 있는 대기업 포스코 역시도 '힌남노'가 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어서 강력한 대비를 했음에도 범람하는 물을 막을 수 없었다. 인간을 위해 만든 편의 시설로 인해, 자연스럽게 내려가야 하는 물길은 멈추고 넘쳤다.


즉, 이종철의 <힌남노>는 재난을 극복하는 마을 사람의 이야기와 가족애가 주를 이루지만,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물길을 바꾸거나 덮었던 행위가 재난 피해를 가중시켰다는 사실을 작품을 통해 문제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작품에 등장하는 모자 쓴 '딴지 아재'라는 인물을 통해 그려진다. '딴지 아재'는 만화가에게 말한다.

"니, 2012년부터 냉천에 공사한 거 알고 있제? 그게 '냉천 고향의 강'이라고 '포스트 사대강 사업' 중 하난데, 포항시에서 삼백 억 넘게 들여서 한 사업이다. 수로 정비하고 온갖 편의 시설들 다 만들었는데, 사업하면서 정작 하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게 약해져 버렸다. 냉천 폭이 좁아지고 물도 잘 안 빠지면서 자연 물길 기능이 떨어지게 된 기다. 물길이라는 게 하류로 내려갈수록 넓어져야 하는데, 반대로 좁아져 버렸다 아니가. 냉천에 어디 그 사업만 문제였는 줄 아니? 1970년대에 제철소 지을 때 부지 넓힌다고 물길을 오른쪽으로 꺽어 버렸제. 냉천 상류에는 몇 년에 아파트 짓는다고 물길을 직각으로 꺽어 버렸고 태풍 온 날, 니 말대로 몇백 년 동안 있을까 말까 한 비가 내렸고 최상류에 있는 저수지 물이 넘쳐 버렸다. 산에서 물은 쏟아지지. 하늘에서 비는 퍼붓지, 그 물이 아파트 공사한다고 물길 바꾼 동네 덮치고 또 하류로 내려가면서 바다로 빠져나가야 하는데, 하필 바다가 만조라 물이 역류해 버렸지. 그리고 이 냉천교, 높이가 낮고 교각도 많아서 홍수에 약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나뭇가지나 쓰레기들이 걸리면서 다리가 물을 막는 보 역할까지 해 버린 기라. 물길이 막히니까 불어난 물이 넘쳐서 동네로 제철소로 간 기지."(95~97)

'딴지 아재'는 힌남노가 몰아쳤을 때, 대기업 포스코가 가동이 중지되지 않았거나, 쏟아진 폭우로 가슴 아픈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슈퍼 태풍이 덮쳤다고 한들, 지방에 작고 가난한 동네에 누가 관심"이나 가졌겠냐고 반문한다.

만화가의 의도에 의해서 연출된 이 장면은 여러 생각할 것들을 제공한다. 피해라는 것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있는 그대로가 아닌, '상징'적인 기표로 인해 결정 난다는 것을 말해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힌남노〉 207쪽.
〈힌남노〉 207쪽. 보리출판사

우리는 '재난'이 일어났을 때, 가족을 지키고 이웃을 지킬 수 있을까. 만화가 이종철의 이 텍스트는 의심 없이 그렇다고 말한다. 곁에서 서로를 챙겨주고 지켜줄 수 있다고 말한다. 만화가 이종철의 만화는 이처럼 인간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재난을 겪게 된 이후 만화가는 분명히 알게 된 것이 있다고 적는다. 재난은 특별한 것이기보다는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보통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안부를 묻고 타인의 재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재난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 주변에 늘 빈번히 자주 일어나는 아픈 이야기다. 그러니 재난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 텍스트를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를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

제11호 태풍 힌남노 - 재난이 휩쓸고 간 자리, 그곳에 남은 사람들

이종철 (지은이),
보리, 2024


#문종필평론가 #이종철만화가 #힌남노 #재난만화 #보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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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를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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