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이인 재현(가명) 님이 실습 경험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수민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한때 현장실습생이었던 99년생 김재현(가명)이다. 마이스터고에 진학하여 2017년도에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그해 9월에 공업계열 중소기업에 현장실습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학교 졸업 후 해당 기업에서 5년간 일했다."
- 마이스터고등학교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어떤 학교인가?
"마이스터고등학교는 직업계고등학교지만 특수목적고등학교이기도 하다. 진학이 아니라 취업을 목표로, 여러 기업과 협업을 이루고 있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졸업했던 학교에서는 1학년 때 기초적인 수준인 세 가지의 전공 수업을 모두 수강한 후 전공을 정한다. 나는 정밀기계과였다. 마이스터고에 들어오기 위해서 서류 심사, 필기시험, 면접을 거쳤다."
- '5년간' 일했다면, 현재는 퇴사한 상태인지? 퇴사한 계기가 무엇인지?
"퇴사하게 된 계기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이유는 일하다가 손가락의 힘줄이 끊어져서 깁스한 상태로 기계를 사용하다 보니 불량이 났던 날, 사장이 동료들을 가장 큰 회의실에 불러 모아 불량 원인에 대해 묻고, 다친 손가락으로 일한 나를 모욕적으로 비난했다. 일이 적성에 잘 맞았음에도 가끔 그 순간이 떠올라 괴로웠다. 두 번째 이유는 직접 상해를 입기도 했고, 동료들이 산재를 당하는 것을 목격하며 차라리 퇴사를 하고 현장의 환경을 바꿔보고자 안전관리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 해당 실습 현장에는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
"학교와 MOU를 맺은 회사에서 올린 공고를 보고, 선배들이 대우가 괜찮다고 하길래 가게 되었다. 제일 처음 갔을 때는 청소만 했다. 전국대회나 세계대회에 나가는 기능반 소속 친구들은 좀 더 전문적인 일부터 시작했지만, 대부분은 청소부터 한다. 선배들이 체격 같은 것도 보면서 어떤 기계에 적합할지, 얼마나 성실한지, 성격이 어떠한지 등 청소하는 모습을 보며 알아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청소만 시키길래 불만이었고, 빨리 학교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작업에 들어가고 싶어서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선배나 사수들이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실습생들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고, 이 또한 한참 지나서 이해하게 되었다."
- 처음 실습 현장에 갔을 때 어떠했는지?
"어린 마음에 학교 수업을 듣지 않게 되어서 좋았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가서 마주한 분위기는 꽤 냉엄했다. 실습생 신분으로 '실습 현장'에 갔지만, 회사는 학교와 다르기에 실습생을 통해서도 이익을 창출하고자 했다. 무언가 실수하면 학교에서처럼 혼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과해야 했다. 심하면 모욕적인 언사를 듣기도 했다. 동료 선배들도 엄하게 굴었다.
하지만 동료 선배들은 공업계열 사업장이고 기계를 다루다 보니 한순간의 실수로 평생 가는 상해를 입을 수도 있고, 그로 인해 몇 천만, 몇 억 원의 손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에 엄하게 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선배나 사수들이 이해되지만, 당시에는 이런 점들을 설명해주지 않고 대뜸 화내거나 세게 말했기 때문에 사실 많이 힘들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새로 들어온 실습생이나 직원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보고 나서야 선배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 실습 초반에 일이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았는지?
"실습 현장에서 하게 된 일은 적성에 맞아서 즐거웠고, 오히려 더 잘 해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변 친구들을 둘러보면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다른 곳으로 가고 싶거나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학교의 설득으로 각자 현장에 머물렀다."
- 학교가 실습 현장에 간 실습생을 보호하거나 관리하는지?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학교에 의지하고 싶었으나, 학교와 선생님들은 마치 '영업사원' 같았다. 학교라는 회사가 학생이라는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여 기업에 팔아넘기는 느낌이었다. 다들 학생들에게 졸업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어떤 회사에라도 들어가서 버티라고 하며, 높은 취업률을 만드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못 버티고 돌아온 학생이 등교하면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실습 하나 못 견뎠다고 하면서, 정작 그 학생이 '무엇을' 못 견뎠는지에 대해서는 관심 없었다. 또한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학생이 실습 현장에 갔다가 학교로 돌아올 경우, 다시 기숙사에 들어가야 하는데 재배치 과정이 쉽지 않고 번거로웠다. 이를 감당하기 싫은 학생들은 어떻게든 실습 현장에서 버티려고 했다. 그 수가 적지 않았다."
- 적응 이후에도 여러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떠했는지?
"공업 계열, 즉 공장이었으니 환경이 좋지는 않았다. 의외로 공장을 지을 때 항온, 항습이 고려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다. 여름에는 거의 39도까지 올라가는데 선풍기 한 대로 버텼다. 땀을 많이 흘리니까 정수기 위에 놓인 소금을 생으로 먹기도 했다. 열사병으로 쓰러진 사람을 본 적도 있다.
겨울에는 기계가 얼어서 기름을 뿌려가며 사용한다. 공장이 넓은데 쉴 만한 공간은 딱히 없어서 대부분 화장실에 가서 쉰다. 심지어 하루에 한 번, 사장님이나 회장님이 순회하는 시간에는 화장실에도 못 간다.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인데, 이를 위해 일을 아껴뒀다가 그 시간에 몰아서 하기도 했다.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 혹시 산재 경험도 있는지?
"새끼손가락 인대가 끊어졌고, 산재 인정은 못 받았다. 애초에 신청도 못 했다. 영수증을 가져오면 현금으로 주겠다고 했고, 실비 신청하면 병원비의 몇 퍼센트를 돌려받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회유했다. 산재가 많이 발생한 회사는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산재를 신청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관리자와 부딪힐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관리자나 회사의 말이 감언이설인 줄 알면서도 듣게 된다.
나는 손가락만 깁스했기 때문에 계속 일할 수 있었지만, 한 친구는 중량물에 깔려서 2년 정도 산재를 인정받고 회사를 쉬었다. 그런데 공장에서 사무실로 인력 재배치가 되었고, 사무실로 돌아갔을 땐 자리가 없었다. 사무실에서는 자리가 없으니 나가라고 하고, 공장에서는 사무실로 재배치되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압박을 주었다. 언제까지 있을 거냐고 했다. 이런 사례도 보았기 때문에 더욱 산재 신청에 대한 심적 부담감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 현장 실습 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현장 실습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장 실습을 통해 실제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좋은 추억도 많았다. 현장 실습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취업하고 나서 여러모로 편했다. 그러나 왜 실습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도 이해된다. 실습생들은 사각지대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은 실습생뿐만 아니라 현장의 노동자들도 비슷하게 겪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노동 현장에 문제가 많다고 해서 노동을 그만둘 수는 없는 것처럼, 실습 또한 문제가 있다고 제도 자체를 폐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실습 제도의 취지를 살려 실습생들을 실습생으로서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실습생들은 노동이 아니어도, 실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니까."
- 그렇다면 실습 제도를 폐지하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 실습 현장을 개선해 나갈 수 있을지?
"현장 실습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만족도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학교나 회사에 지원금이나 제재를 가하는 방법이 가능할 것 같다. 직접 실습하는 주체는 학생들이니, 학생들의 의견이나 처지를 알고 실습 현장을 개선하는 데에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직업계 고등학생과 그들에게 연대하는 이들의 단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며 알게 되었다. 그런 단체나 조합에 실습생들과 교사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현장에서 실습하고 이후에 노동자로서 일하며 성실한 실습생들도 많이 보았지만, 그렇지 않은 실습생들도 꽤 있었다. 여러 이유로 책임감을 지니지 못했거나 방황하는 아이들이었다. 단체나 조합의 일원이 된다면 어느 정도 책임감을 지니고 진심으로 실습에, 더 나아가 노동에 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학생과 학교, 학생과 현장 사이의 신뢰와 책임감이 중요한 것 같다."
-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안전관리사가 되어, 고등학생 때부터 일했던 현장으로 안전 시찰을 가는 것이다. 안전 시찰이나 점검 때 거짓말을 하거나 문제가 있던 부분을 감추던 관리자들에게 '내가 여기서 일해 봤으니까 거짓말하지 마라, 다 안다'라는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 중이다."
인터뷰어였던 조원들은 실습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공통의 의견을 지니고 있었다. 실제로 노동자가 아니라 학생 신분인 실습생들이 노동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많은 실습생들이 그 과정에서 소모되고 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실습 제도를 멈추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장실습을 직접 경험한 재현님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실습 제도를 바라보고 있다. 실습 현장에서의 경험이 필요하며,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젠가 실습 현장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습이 아니어도 학생들이 학습할 수 있는 경로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습 제도를 당장 폐지하더라도 학교의 실적이 취업률로만 평가되는 구조가 변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계속해서 원치 않는 곳에 취업하고,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버티게 될 것이다.
하여 이러한 구조적 문제부터 주목해야 한다고 보았다. 착취의 경험, 불평등의 경험, 사고의 경험과 그로 인한 고통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왜 발생했는지를 들여다보고 치열하게 토론하며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구조가 바뀌면 실습 제도는 자연히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도 모른다. 실습생들이 '실습생'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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