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가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장면.
5.18 기념재단
하지만 특전사 존재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5.18 광주 민주항쟁을 피로 진압하면서부터다.
특전사는 앞서 1979년 12.12 내란 때 핵심 참여부대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특전사의 박희도, 최세창, 장기오 준장 등이 이른바 모의 자리인 경복궁 모임(수경사 30 경비단장실에 모였던 핵심 멤버들)에 참석했다.
당시 전두환은 특전사 1(박희도), 3(최세창), 5(장기오) 공수특수 여단장들에게 각각 역할을 부여했다. 제1공수특전여단은 국방부와 육군본부 점령, 제3 공수 특수여단은 특전사령부 본부 건물을 습격과 정병주 특전사령관 체포, 제5공수여단은 효창운동장으로 출동, 대기 등이었다. 제3공수특전여단의 경우 사령관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사령관의 부관인 김아무개 소령을 사살하는 참극을 빚기도 했다.
이듬해 5.18민주화운동 때는 특전사 3, 7, 11여단이 31사단 부대원들과 20사단(현 11사단 예하 결전여단), 항공작전사령부 헬기 조종사와 사수들과 함께 계엄군으로 광주에 투입됐다.
계엄군은 폭압적이었다. 진압봉으로 두들겨 팼다. 대검으로 찔렸다. 성폭행 했다. 총기를 난사해 시민을 살해했다.
내란에 참여한 특전사 핵심들은 승승장구했다. 박희도 제1공수특전여단장(준장)은 중앙청과 육군본부를 점령한 공적으로 26사단장(소장), 특수전사령관(중장), 육군참모차장(중장), 3군사령관(대장), 육군참모총장(대장)으로 초고속 승진, 대장으로 전역했다.
최세창 3공수특전여단장(준장)도 20사단장(소장), 수도경비사령관(소장), 1군단장(중장), 육군참모차장(중장), 3군사령관(대장), 합동참모본부의장(대장),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장기오 5공수 특전여단장(준장)도 수도사단장(소장), 수도군단장(중장), 교육사령관(중장), 총무처 장관을 지냈다.
특히 박희도는 특수전사령관으로 부임하자 1981년 4월, 사령관 직할부대인 707대대를 창설했다. 역쿠데타를 우려해 자신을 경호하는 친위부대를 만든 셈이다.
이후 707대대는 86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 안전 대비 등 대테러특수임무대로 자리를 굳혔다. 이름도 707특수임무단으로 바꿨다. 2007년에는 아프가니스탄에 선교하러 갔다가 탈레반에 납치된 샘물교회 선교단 인질 구출 작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707특수임무단은 평시에는 대테러와 해외 파병 작전이 기본 임무지만, 전시에는 참수 작전 중 가장 결정적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모든 부대원의 신상 정보 자체가 2급 군사기밀로 지정돼 있다.
2024년, 또 하나의 '오명'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국회 앞에 등장한 무장한 계엄군들.
권우성
하지만 2024년 12월 3일 특전사는 다시 한번 공수부대의 악명을 떠올리게 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특전사의 제1공수특전여단 277명과 제707특수임무단 197명이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군인들과 방첩사 병력과 함께 계엄군이 돼 국회에 불법 진입했다.
이들은 계엄 해제 결의안 투표가 진행 중인 국회 본관 정문이 막히자, 창문을 깨고 진입했다.

▲ 12.3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에 동원되어 부대원들과 함께 국회에 투입되었던 김현태 제707특수임무단장(대령·육사57기)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와 대통령실 건너편인 전쟁기념관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대원들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용당한 피해자"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무책임한 지휘관 때문에 대원들을 사지로 몰았다”며 "'대원들은 많이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있다. 부대원들 한 명도 다치지 않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권우성
지난 9일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은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자처해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특전사 지휘부에 최소한 100여 통의 전화를 하며 지시를 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 과정에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 내용을 들었다"라고 폭로했다.
그다음날인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현안질의 자리에서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결의 직전인 4일 새벽 0시 30~40분께 윤 대통령이 비화폰으로 두 번째 전화를 걸어와 "'의결정족수가 아직 다 안 채워진 것 같다.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다 끄집어내라'라고 지시했다"라고 증언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국방부장관,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은 45년 전 공수부대의 악명을 떠올리게 했고, 대테러특수임무대인 707특수임무단까지 끌어들여 '불법 계엄군'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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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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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공수부대 떠올리게 한 윤석열 계엄군 특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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