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난 민중의 애국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시작

등록 2024.12.11 11:36수정 2024.12.11 11:36
0
원고료로 응원
수많은 혁명을 성공시킨 민중이 언제나 분노에 찬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비겁하고 나약했다. 대부분 소심하고 변덕스럽다.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느라 소시민으로 지내는 이들이 행동에 나섰다. 입시와 취업 전쟁에 시달리고 있는 청소년들까지 시위에 나섰다. 부산 집회에서는 '시위하는 청소년은 멋있지 않고, 기특하지 않고, 당신의 동료일 뿐입니다'라는 팻말도 등장했다. 시위현장을 외면하는 청소년들에게 '요즘 청년들은 왜 이래' 하며 못마땅해하던 기성세대를 오히려 부끄럽게 했다. 그만큼 시국이 엄중하고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정치학자 비롤리는 "나라 사랑이라는 것은 타고난 감정이 아니라 정치와 공적인 삶에 시민이 참여할 때만 불붙는 열정이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벌인 친위 쿠데타가 도화선이 되었다. 분노한 국민은 저마다 불꽃을 들고 광장으로 모였다. 제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양초처럼 사람들은 추위와 불편함을 이겨내고 더 나은 삶을 향해 투쟁한다. 심장에 이상이 없다면 자기 심장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애국의 역사는 심장에 상처 난 주권자가 '비정상'을 깨닫으면서 시작한다.

새로운 자극과 기술은 대중에게 '계몽의 기회'를 주었다. 인쇄기가 등장하면서 대중은 스스로 성경을 읽었다. 봉건 사회의 낡은 종교 체제를 깨뜨려야 한다는 지식과 사상이 널리 퍼졌다. 수많은 대중은 이제 종교개혁을 지지했다. 봉건시대 내내 서유럽에서는 제도화한 기독교를 둘러싼 공격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십자군전쟁은 봉건 사회에 균열을 냈다. 십자군 원정으로 방문한 이슬람 사회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풍부한 유산과 함께 뛰어난 의학, 과학 기술을 뽐냈다.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남은 유럽인 수만 명은 우물 안이 얼마나 모순과 비합리로 가득 찼는지 깨달았다.

백년전쟁은 이들에게 봉건 지배계급과 거의 대등한 무기를 갖고 싸우게 했다. 더 이상 귀족이 무력으로 농민을 통제할 수 없어지자 정치권력도 점차 약해졌다. 농민 봉기는 단순히 가뭄과 기근을 해결하려는 게 아니었다. 반란을 일으킨 농민은 평등한 정치 권리를 열망했다. 억압과 착취로 쌓인 불만이 터지면서 더 밀접한 민주주의를 향해 저항했다. 이후 사회운동이 왜곡되고 무너져도 사람들은 다시 시위에 나섰다. 잔인한 독재와 폭력에도 대부분 보통 사람들이 승리를 거뒀다. 다시, 또다시 투쟁은 계속됐다. 우리는 결국 이런 승리 덕분에 중세 선조들이 꿈꾼 것보다 더 많은 권리와 자율이 보장되는 세상에 산다.

국가는 민중의 애국으로 발전한다. 제1차세계대전 중 병사들은 자국 정부가 퍼뜨린 애국주의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때로는 아군 '상급자'가 난폭하게 군다고 생각하면 살해하기도 했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서 한 지휘관은 "실탄을 챙기라"는 상부 지시에도 대원들에게 실탄과 공포탄을 지급하지 않고 민간인과 충돌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국가에 무조건 충성하는 '애국'이 아니라 헌법이 수호하는 민주주의에서 비롯한 자긍심을 지키는 '애국'이 사회를 진보로 이끈다.

공자는 '윤리적 결기'를 강조했다. 법이 윤리적 정당성을 잃거나 법을 집행하는 공권력이 민심을 잃었을 때, 자신에게 닥칠 생명, 신체, 재산에 대한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올바른 선택을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결의와 용기를 가진 사람들에게 '법의 구속력'은 현저히 줄어들거나 사라진다.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폭압 정부에 항거하다가 실제로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목숨까지 잃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인류 역사가 입증한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지속했더라도 끝내 민중의 애국이 승리했을 것이다. 가혹하고 잔인한 처벌에 따른 두려움에 의존해야 하는 법일수록 정당성은 더욱 줄어든다. 비윤리적인 법은 더 많은 사람들의 윤리적 거부감을 자아낸다. 정당성을 잃은 법을 지켜야 할 윤리적 의무는 없다.

개개인 내면의 변화가 모여 세상을 움직인다. 민중은 지배계급이 아닌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헌법은 근대국가가 성립하면서 국가의 상징이 되었다. 독일 연방헌법 1조는 말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 기구의 의무다.' 이제 권력의 주체는 전제군주에서 국민으로 바뀌었다. 부자도, 유명인도 아닌 보통 사람들이 투쟁해서 모두를 평등하게 지키는 인권이 생겼다. 2024년 한국에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시위에 국민 수백만이 모인다. 우리는 실패해도 무관심이나 절망에 빠지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려는 의지를 가졌기에 거대한 진보를 이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낭만파 시인이지만 유대인의 반항심을 담거나 때로는 선동적이었던 하이네의 시를 떠올려 보자.


독일의 시인이여! 너의 노래가 우리의 영혼을 지배하고 우리들을 실천에 고무되도록, 날마다 불러라! 울려 퍼져라! 호통쳐라! 마지막 압제자가 도주할 때까지 이 방향으로 노래하라.

▣ 제보를 받습니다
오마이뉴스가 12.3 윤석열 내란사태와 관련한 제보를 받습니다. 내란 계획과 실행을 목격한 분들의 증언을 기다립니다.(https://omn.kr/jebo) 제보자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되며, 제보 내용은 내란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데만 사용됩니다.
#비상계엄 #애국 #시위 #공자 #하이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평수 줄여 이사 간 은퇴 부부, 이게 제일 좋다네요 평수 줄여 이사 간 은퇴 부부, 이게 제일 좋다네요
  2. 2 여수 가게마다 긴 줄, 먹어보니 이유를 알겠다 여수 가게마다 긴 줄, 먹어보니 이유를 알겠다
  3. 3 "파르테논 신전급" 캐나다 건축가가 극찬한 서울의 건축물 "파르테논 신전급" 캐나다 건축가가 극찬한 서울의 건축물
  4. 4 "폭리는 반사회적 악행" 대통령 경고에 정유·주유소 업계 심야 '백기투항' "폭리는 반사회적 악행" 대통령 경고에 정유·주유소 업계 심야 '백기투항'
  5. 5 줄넘기로 '세계 1위' 찍고 대학 특기생 진학... "아시아 여성 최초예요" 줄넘기로 '세계 1위' 찍고 대학 특기생 진학... "아시아 여성 최초예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