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응시에서 변화로 나아가기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읽고

등록 2024.12.12 15:49수정 2024.12.1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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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 구경하는 사회> 표지
<고통 구경하는 사회> 표지 웨일북

"보고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대규모 구경이 되어 버릴 뿐이다."

이 책을 집어들게 한 문구였다. 시선이 문장에 닿는 순간 마음이 뜨끔했던 건 고통을 보고 그저 안타까워할 뿐 행동에 나서지 못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서였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10년간 광주 MBC 보도국에서 사회부 기자로, 그리고 그 이후엔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며 수많은 고통의 현장을 취재해 왔다. 하지만 뉴스보다는 뉴스가 끝난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 그래서 슬픔을 다루는 데 서툰 우리 사회에서 함께 공적 애도의 태도를 고민하며, 고통을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시작점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그런 변화를 위해 저자는 먼저 언론의 보도 자세부터 성찰한다.

약자의 고난은 구경거리로 보여지고, 재난 현장은 대상화되어 정치적 포토월로 전락한다. 예를 들면, 일가족이 생명을 잃은 반지하 침수 현장을 찾아간 사진이 고통을 굽어살피는 지도자의 이미지인 양 홍보 자료로 유포된다. (중략) 냉방 기기는커녕 선풍기조차 없는 쪽방촌의 힘겨운 여름, 장마철 침수 걱정에서 자유롭지 않은 반지하 거주민, 변변한 난방 기구 없이 영구 임대아파트에서 지내는 독거노인. 그런 생활을 정치인이나 기자가 며칠간 심지어는 하루 동안 '체험'해 보는 뉴스. 이 뉴스들이 정말 약자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을까? 문제를 끝내지 못했기에 뉴스는 계절상품처럼 반복되고, 문제가 지속되고 있기에 반복에 대한 타당성을 얻는 기묘한 순환에 갇혀있는 듯하다. 지자체가 우리의 '이웃'을 위한 폭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클로징 멘트만 돌림노래처럼 이어진다. - 본문 중에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언론은 사회적 약자의 공간을 침범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들의 힘겨운 계절 나기를 시청자들에게 전송한다. 그렇게 약자의 고난은 해마다 하나의 구경거리가 된다.

연말이면 전 재산을 기부하는 기초생활수급자 할머니. 이건 '이야기가 된다', 뉴스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는 확신이 들었다. (중략) 자본주의의 하층부에 있는 '이렇게나 가난한' 사람이, 늘 더 많은 것을 욕망하는 자본주의의 논리에서 벗어나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눈다는 것에 놀라며 뉴스를 전하는 태도 자체가 자본주의의 비좁은 틀 안에서만 그녀의 삶을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중략) 그녀의 '형편'을 보여주는 대신 그녀가 가진 기부의 철학에 대해 더 많이 들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 본문 중에서

저자는 또한 좁은 맥락 안에서만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조명하는 언론의 태도에 대해서도 자성의 목소리를 낸다. 기초생활수급자 할머니의 선행과 기부철학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어려운 형편'을 강조하며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도덕심을 환기하는 뉴스의 속성에 대해 말하는 저자를 보며 나 역시 사회적 약자들을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이 아닌 연민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반성이 일었다.

언론의 태도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이뿐만이 아니다. 사회적 아픔을 보도할 때 시청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뉴스에서는 자주 아픔에 '닮음'을 덧입히는 전략을 사용한다.


그들은 우리와 너무나도 닮았다. 바로 그 점이 이 일을 이렇게나 충격적이게 한다. 우크라이나는 유럽 국가다. 넷플릭스를 보고 인스타그램을 하고, 자유선거에 투표하고, 검열받지 않은 신문을 읽는다. 전쟁은 더 이상 빈곤하고 외딴곳에 사는 이들에게만 찾아오지 않는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 The Telegraph, 다니엘 해넌(Daniel Hannan)

푸른 눈에 금발을 한 유럽인들이 매일같이 푸틴의 미사일에 죽어가는 걸 보면 울컥한다. - BBC, 우크라이나 관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당시 유럽 언론들은 시청자들의 연민을 자극하기 위해 '닮음'을 강조했다. 언뜻 보면 별 문제없어 보이는 이런 전략은 동질성을 지니지 않은 집단을 배제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자칫 피부색, 종교, 언어, 문화가 다른 이들은 전쟁의 위험에 노출되어도 괜찮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보도 전략은 우리 언론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참사와 재해를 전하는 뉴스에서 시청자와의 연결고리를 강조하며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일', '나일 수도 있었다'라는 멘트를 하는 앵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렇게 타인의 고통을 나와 연결 짓는 걸 적극적이고 바람직한 공감의 자세라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나'라는 좁은 테두리에 갇힌 시각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저자는 나와 연관되지 않은 일 역시 중요하기에, '나'의 테두리를 빠져나와 더 큰 '우리'의 세계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통을 보도하고 소비하는 세태를 진단하고 언론이 대상화하는 고통의 참모습을 들여다본 저자는 변화로 나아가기 위해 공적 애도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때로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본다. 이미 최악의 고통과 끔찍한 상실을 겪어낸 뒤에 기자에게 다가오는 사람들. 공론화를 시작하는 사람들. 이미 그의 세계는 다 망가져 폐허가 됐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바늘 자국 없이 이어내는 데 곤란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다만, 잔해 속에서 부러진 나뭇가지를 집어 들어 고통을 막을 수 있는 길을 가리킨다. - 본문 중에서

저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SPC 제빵 노동자 끼임 사고, 세월호참사, 10.29 이태원 참사 등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있었던 다양한 아픔을 조명하며 희생자 가족들의 사적인 애도를 그저 바라보기만 할 게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해 줄 수 있는 일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상실과 슬픔 속에서 고통이 되풀이되는 걸 막기 위해 사고 이후의 이야기를 써 나가는 유가족들에게 '왜', '무엇을', '어떻게'라는 답을 채워줌으로써 사적인 애도가 우리의 애도가 되는, 좀 더 온기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대형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우리 사회의 온도 변화를 보아 왔다. 처음엔 애도하던 사람들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냐며 유가족들을 힐난했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피해자들은 진상 규명을 위해 투사로 돌변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거짓 뉴스와 진실 왜곡이 더해져 새로운 혐오가 생겨났다.

이런 상황에서 뉴스는 매일 수많은 아픔을 새로 보도하고 넘쳐나는 고통 콘텐츠 속에서 무감각해진 사람들은 더 새롭고 자극적인 고통에만 반응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변화의 방법을 모색하는 이 책이 그래서 반갑게 느껴졌다.

12.3 내란 사태 이후 혼란하고 어지러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행동하는 시민들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사회의 변화는 이런 깨어있는 시민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동안 공동체가 지닌 아픔을 외면했던 이들이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더 관심을 갖길, 그래서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길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제 브런치스토리와 블로그에 함께 실릴 수 있습니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은이),
웨일북, 2023


#고통 #참사 #구경 #공적애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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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와 책 리뷰를 적는 브런치 작가입니다. 다정하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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