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TBC 12월 4일 뉴스특보. '대통령 불법 계엄 파장'이란 자막이 눈에 들어온다
정호갑
이곳저곳 채널을 돌리다 보니 화면 왼쪽 위의 자막이 눈에 들어본다. '12ㆍ3 비상계엄 사태', '비상계엄 해제', '대통령 불법 계엄 파장', 그리고 '뉴스특보'이다. 비상계엄을 바라보는 방송국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릴 이유가 없다. 한두 개 채널에서 오간다.
산골 묻혀 지내는 촌부라서 그런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말이 화면에 계속 나온다. '질서 있는 퇴진'이란 말이다.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사회, 국가에서, 질서의 근원은 공동체 모두가 인정하는 규범이다. 그 규범 중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는 것이 헌법이다. 지하철에서 소매치기하는 현행범을 모른 척해도 안 되는데, 하물며 국가를 위기로 몰고 간 사람들이 아직 그대로 있다.
현행범을 헌법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나라에 내가 살고 있다.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불성립되었다. 오물 풍선 원점 타격, 평양 무인기 침투 의혹에 대해 국방부는 침묵하고 있다. 나를 대표한다는 국회의원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 나보고는 투표장에 나와 달라고 그렇게 하소연하더니만, 자기는 탄핵안에 투표하지 않는다. 이 국가에서,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다시 불안하다.
분노를 넘어선 슬픔
우울증이 걸린 것 같다. 몸이 가라앉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 빠졌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국회에서 현안 질문에 답하는 국무위원들과 계엄에 관련된 군 지휘관을 보면서 분노를 넘어서 슬픔을 느낀다.
'전 정권 장관 중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나?'라고 자랑하던 대통령이 말이 떠오른다. 국회에 나와 하나 같이 몰랐고, 경황이 없었다고 한다. 마지못해하는 답변도 어리벙벙하다. 저들은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 사회가,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중심을 잡아 주어야 할 위치에 있는 고위 공직자들이다. 이런 자들이 굳이 고위 공직자라는 자리에 있어야 할까? 없어도 되지 않을까?
군 지휘관을 보면 더 가관이다. 이들은 위기 상황에서 하나뿐인 생명을 걸고 적과 맞서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군인정신의 용맹함, 지혜는 찾아볼 수 없다. 위기 상황이 오면 저들이 과연 앞장서 적과 마주하겠는가? 저들은 안전한 벙커 속에서 젊은 군인들에게 돌격만 외칠 것이 아니겠는가?
12월 11일 국회에서 이소영(국회의원)이 국무위원들에게 상기시켜 준 말이 그래도 위로가 된다.
다만, 힘에 밀려 내란 세력에 끌려간 형적이 없지 않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힘에 밀려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하였다고 변명하는 것은 하료(下僚)의 일이고, 피고인들과 같이 지위가 높고 책임이 막중한 경우에는 이러한 변명이 용납되지 않는다. [서울고법 1996. 12. 16. 선고 96노1892 판결].
이 글을 마치려는데 12일 오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배경에 대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야당이 반국가세력이며 괴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야당이 예산을 삭감한 것도, 국무위원을 비롯하여 공직자들에 대해 탄핵을 추진한 것도 헌법과 법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국회가 올린 특검을 거부한 대통령, 또한 헌법과 법률에 근거한 것이다. 법에 따라 판단하는 것에 대해 잘잘못을 따질 수 없다.
다만 그 행위는 다음에 투표로 나타날 것이다. 거대 야당을 만들어 준 것 또한 국민이다. 그래서 비상 계엄에서도 국회를 마비시킬 수 없도록 헌법과 법률에 명시해 놓은 것이라고 촌부는 생각한다.
요즘 나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있다. 나와 다른 생각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산골이라 밖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다. 먼저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알아본다. 지금 나의 두려움과 우울증을 치료하는 길은 광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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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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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이후 두려움과 우울증... 치료하는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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