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빈아빠는 지난해부터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고 이희남씨(같은 사건 피해자)의 남편과 같은 증상이다.
김예령
김혜빈씨가 입원 중이던 8월 10일, 첫 주 병원비 약 1300만 원이 청구됐다. 원무과는 집중 치료실의 경우 금액 단위가 커 매주 정산한다고 알렸다. 혜빈엄마는 '환자가 범죄 피해자인데 이 비용은 국가에서 해주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원무과는 관련해서 연락 온 곳이 없으니 부모가 정산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혜빈엄마: "우리가 너무 순진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국가가 뭘 해주길 바라봐야 우리만 바보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 일을 계기로 언론 취재에 적극적으로 응하기 시작했습니다."
- 언론에 나간 후 바뀐 게 있었나요?
혜빈엄마: "그제야 담당 검사가 찾아왔어요. 건강보험공단에서 70%를 부담하고, 법무부가 최원종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나머지 30%를 지급할 테니 안심하라고 일러줬죠. 병원비가 나오기 전에 이 사실을 알려줬다면 그렇게 마음 고생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모든 방법을 동원해 유족을 지원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특별한 지원이 있었나요?
혜빈엄마: "없었어요. 다 보여주기식인 거예요. 병원비 외에는 성남지청 범죄피해자 지원센터에서 준 3개월 치 긴급 생계비 540만 원, 장례비 400만 원 그리고 심리 상담이 전부입니다."
혜빈아빠: "이마저도 다 저희가 직접 찾아서 받은 거예요. 지원한다는 곳은 많은데 중복 지원이 안 되고, 합의금·보험금을 받으면 받은 돈을 환수한다는 건 매한가지였죠. 지원금 받는 과정 자체가 일종의 희망고문이었어요. 지원 심의를 하겠다며 우리 집 재산 조사를 할 때는 수치심까지 들었습니다."
| "다 보여주기 식인 거예요." |
| 김혜빈씨 장례식장에 분당 지역 국회의원 등 정치인 명의의 깃발이 여럿 들어섰다. 그 중 혜빈씨 병문안을 온 인사는 없었다. 부모는 정중히 사양했다. 깃발을 들고 온 관계자는 "사진 한 장만 찍고 가겠다"고 말했다. 부부는 더 이상 정중할 수 없었다. |
이 외에도 김혜빈씨 유족이 받을 수 있는 것으로는 수원지검에서 지급하는 유족 구조금이 있다. 피·가해자 간 합의가 안 되거나, 가해자에게 배상 능력이 없는 경우에만 받을 수 있다. 병원비와 마찬가지로 법무부에서 구조금을 우선 지급하고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받아내는 구조다. 범죄 일로부터 3년 안에 신청할 수 있다.
- 왜 1년이 넘도록 유족 구조금을 신청하지 않았나요?
혜빈아빠: "그걸 받는 게 최원종의 감형 사유가 될까 걱정됐습니다."
2심 두 번째 공판에서 최원종 측 변호사는 법무부가 최원종에게 병원비 30%에 대한 구상권을 청구한 사실을 언급했다. 이어 최원종이 이를 성실히 지급했다며, 가해자가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혜빈엄마: "이래서 범죄 피해자들이 생계가 막막해도 국가 지원을 못 받는 겁니다. 법무부가 '떼인 돈 받아주는' 곳인가요? 그렇게 받아낸 돈은 왜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거죠? 왜 국가 차원에서 피해자를 지원하지 않는 건가요?"
혜빈아빠: "우리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입니다. 형사 재판이 끝났으니, 최원종 모친 측 자동차 보험사에서 제안한 보험금과 정부의 지원금·구조금을 놓고 고민해 볼 여지라도 있으니까요. 다른 범죄 피해자들은 직장에서 잘리는 등 받은 피해를 보아도, 턱없이 적은 구조금을 받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 피해자가 피해자를 만났을 때 |
"당시 혜빈씨 어머님이 '이제 세금 내기 싫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습니다. 범죄 피해를 겪고 나면 모두 이렇게 생각하게 되죠." – 김진주 작가(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한국범죄피해자커뮤니티 운영자) |
16개월간 함께해준 사람들

▲ 부모는 "혜빈이 친구들, 피해자전담경찰관 등 많은 분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난 16개월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며 "국가의 빈 자리를 사람이 채워줬다"고 말했다.
김예령
- 다른 유족과 만나봤나요?
혜빈아빠: "혜빈이가 입원 중일 때 고 이희남씨 유족이 찾아오셨습니다. 고인이 떠난 지 얼마 안 된 때라 경황이 없으셨을 텐데, 혜빈이의 쾌유를 빌며 50만 원을 쥐여주고 가셨죠."
50만 원엔 사연이 있었다. 고 이희남씨가 최원종이 운전하는 차에 치이자, 한 여성이 고인에게 심폐소생 등 응급처치를 했다. 유족은 경찰을 통해 그에게 옷값으로 50만 원을 보냈다. 이희남씨는 숨지고, 김혜빈씨는 아직 병원에 있을 때였다. 여성은 사례금을 정중히 사양하며, 이를 김혜빈씨의 치료비로 써주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 올해 혜빈씨 생일(7월 9일)은 어떻게 보냈나요?
혜빈아빠: "혜빈이 없는 혜빈이 생일은 처음이었습니다. 항상 생일은 가족끼리 보내곤 했거든요. 혜빈이 빈자리를 더 크게 느꼈어요. 혜빈이 친구들이 찾아와 같이 미역국 먹고, 그 중엔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온 친구가 있어 그것도 나눠 먹었죠."
혜빈엄마: "혜빈이 친구들이 왔는데, 하필 다음 날이 2심 결심 공판이었습니다. 재판부에 어떻게 우리 심정을 전할지 고민하느라 생일 파티에는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 지난 혜빈씨 기일은 어떻게 보냈나요?
혜빈엄마: "가족끼리 추모식을 하려다, 그동안 탄원서 등으로 도와준 분들이 생각났어요. 그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추모식을 준비했죠. 힘써준 분들을 초대해 함께 혜빈이를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혜빈엄마는 1주기 추모식에서 눈물을 보이는 김혜빈씨 친구들을 보며 "함께 아파한 모두가 피해자이자 생존자"라는 생각을 했다.

▲ 김혜빈씨 1주기 추모식 현장.
김혜빈씨 유족
혜빈아빠: "도와준 분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처음엔 '탄원서 한 장 써주는 게 힘든가' 싶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혜빈이 친구들은 SNS로 소식을 전파할 뿐만 아니라, 학교 출입문에 부스까지 만들어서 탄원서를 받았죠."
1심부터 2심까지 약 11개월 동안 모인 자필 탄원서는 2498장에 이른다.
김혜빈을 기억해주세요
"아직 사망신고를 못했어요."
혜빈아빠: "지금도 혜빈이 친구들이 혜빈이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와요. '좋은 데 왔는데 너(김혜빈씨)도 보여주고 싶다'며 사진을 보내는 친구도 있고, '술 먹다 네 생각 나서 전화했다'는 친구도 있고."
혜빈엄마: "사망신고를 하면 그 친구들은 어디에 연락을 하나요. 우리 딸이 처음부터 없던 아이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에요."
부모는 김혜빈씨가 잊히지 않길 바란다고 밝혀왔다. 이에 김진주 작가는 그의 손글씨를 모아 지난 6월 '그리운 깔깔 혜빈체'를 만들었다.
혜빈엄마: "혜빈이가 졸필이에요. 글씨를 하도 작게 써서 읽기도 힘들었죠. 생전에 '내가 네 글씨를 폰트로 만들어서 네 일기를 다 해독할 거야' 하는 농담을 한 적이 있어요."

▲ '그리운 깔깔 혜빈체'로 쓴 문장.
이필립
지난해 8월 김혜빈씨가 병원에 있을 때 부모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며 그의 휴학을 신청했다. 그가 여전히 건국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학생인 이유다. 혜빈엄마는 건국대학교 근처에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혜빈엄마: "혜빈이 그리고 혜빈이 친구들의 연대를 기리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미대생들이 사비를 들여 전시회를 열더라고요. 그런 친구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전시장도 되고, 형편 어려운 아이들이 미술을 배울 수도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 고 김혜빈씨 부모는 딸이 다니는 건국대학교의 점퍼를 입고 인터뷰에 응했다.
김예령
혜빈아빠: "이렇게 혜빈이를 계속 기억하고, 저와 혜빈엄마가 떠난 뒤에도 잊히지 않도록 하는 게 저희가 앞으로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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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지난밤이 궁금합니다. 오늘은 어떤 사건이 날 부를까요.
김예령 기자 입니다.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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