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특수성을 넘어 세계적 보편성으로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갖는 의미에 대하여

등록 2024.12.16 16:28수정 2024.12.16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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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0일 한강의 노벨상 수상자 선정 소식이 전해졌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상이기에 국민적 울림은 컸다. 하지만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기념하기에 앞서 우리 국민이 그토록 목말라하는 노벨상의 배경을 짚는 것으로 이 글을 시작하려 한다.

1888년 노벨은 프랑스의 한 신문에서 자신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죽음의 상인, 알프레드 노벨 사망' 그의 형의 죽음을 노벨의 죽음으로 착각한 오보였다. 그가 '죽음의 상인'이란 호명에 큰 충격을 받고, 그 때문에 유언장을 고쳐 노벨상을 제정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노벨상의 권위를 밑받침하는 것은 그 어느 상보다 가장 큰 규모의 재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벨은 어떻게 이렇게 막대한 부를 축적했을까?

1866년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했다. 다이너마이트는 주로 산업용이나 건축용으로 쓰였지만, 보불전쟁이 일어나자 프로이센군의 살상용 무기로 사용됐다. 이 때문에 노벨은 프랑스인들에게 '죽음의 상인'으로 각인되었다.

다이너마이트에 대한 특허가 있었던 노벨은 이때도 돈을 많이 벌었지만, 정작 그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 준 것은 1887년에 개발한 최초의 무연 화약 '발리스타이트(Ballistite)'였다. 발리스타이트는 다이너마이트와는 달리 처음부터 군수용 화약으로 만들어졌다.

이 화약은 소총, 대포, 지뢰, 폭탄 등 갖가지 무기에 사용되며 유럽은 물론 대서양 건너 미국부터 아시아에서 일본까지 보급돼 제국주의 전쟁의 시대에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는데 쓰였다.

노벨은 그렇게 세계 제일의 갑부가 되었고 유럽 전역에 별장을 두고 호화로운 삶을 누렸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자기가 만든 폭약을 비롯한 여러 제품의 특허권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분쟁을 계속하기도 했다.


1964년 샤르트르는 노벨상 수상을 거부했다. 당시 그는 수상 거부 이유로 주로 작가정신에 대해 언급했지만, 한편으로는 수상자가 서방 작가들에 치우쳤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주로 서방국가에 치우쳐 있으며 여성 수상자 비율이 10% 미만인은 점은 계속 비판의 대상이 된다. 노벨문학상만 봐도 현재까지 수상한 121 명 가운데 아시아 작가는 다섯 명 뿐이고 그 중에서 여성 작가로는 한강이 유일하다.


그러나 비록 노벨상이 제국주의 전쟁에서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의 피로 얼룩진 돈 위에 세워졌다 하더라도, 제국주의와 식민지 수탈을 주도했던 서방 국가 중심이었다는 비난이 타당하다 해도, 어쩌면 그렇기에 오히려 한강의 이번 수상은 값지다.

노벨이 살았던 19세기 이후 현재까지는 가히 '과학의 시대'라 할만 했고, 비록 식민지 수탈이라는 어두운 그림자와 막대한 희생, 그리고 가공할 만한 파괴적인 전쟁이 있었지만,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넘쳤다.

인류는 이 시기에 중세 암흑시대로부터 벗어나 우주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신비를 하나하나 벗겨나가며, 번영을 구가했다. 그렇다면 21세기를 맞이한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과학기술 문명은 지구를 망가뜨리지 않고도 이 많은 인구가 질 높은 삶을 계속 누릴 수 있게 해줄까?'

2020년 영국 리즈대학교에서 연구팀이 <네이처 지속가능성> 지에 발표했던 연구의 주제이다. 연구 결과 이 질문에 대한 답은 'NO'였다. 국제 생태발자국 네트워크의 연구도 있다. 우리가 소비하는 자원의 양을 그 자원 생산에 필요한 땅 면적으로 환산했을 때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인구는 현재의 절반도 안 되는 30억 명 정도라고 결론지었다. 이는 프랑스인의 생활수준을 기준으로 했을 때이고, 한국인을 삶을 기준으로 하면 그보다 적은 22억까지로 줄여야 한다.

역사의 진보에 대한 근대적 믿음이 기후와 생물 다양성의 위기 앞에 무너지고 있는 21세기, 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벅차건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과 빈곤이 진행 중이다.

지난 세기에 문학은 대체로 '인류애'라는 주제에 매진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인류애'의 차원을 넘어선 질문을 던져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인류는 그간 스스로가 믿고 추구해왔던 가치들이 자기가 속한 세계와 자기 자신마저 파괴하는 것을 계속해서 보아야 했다.

밝은 표정으로 노벨문학상 수상하는 한강 작가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받고 있다.
▲밝은 표정으로 노벨문학상 수상하는 한강 작가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 시점에 한강의 문학이 있다. 그는 가장 예민한 문학적 촉수로 인간의 깊고 검은 상처의 정 가운데를 건드리고 그 밑바닥에 고인 핏덩이를 헤집어 올린다. 한강의 문학은 한국적 경험과 문화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들이 던지는 질문들은 그보다 훨씬 깊다.

그는 자신만의 문학적 독창성으로 역사적 구체성을 통과하며 그 질문들을 가장 깊은 곳까지 밀어붙인다. 인간이란 한계를 넘고, 인간의 몸이 처한 조건마저 넘어서는 문제의식을 끝까지 집요하게 밀어붙인 한강의 작품을 읽는 것은 그래서 불편하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 작별하지 않는다'는 고통 연작 시리즈라고 할 만큼 인간의 고통을 다룬다. 고통의 서사를 이해시키기보다, 날것 그대로의 고통을 생생한 시적 묘사로 살려낸다.

그 고통은 폭력으로부터 오는 것이지만, 폭력은 단순히 외부에만 존재하지는 않고, 어떻게 보면 인간 자신이 처한 존재의 조건 안에 이미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그가 그린 고통은 한국이라는 국가의 역사적 경험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매우 본질적이며 보편적이다. 그 역시 이를 잘 인식하고 있고, 그의 소설 속에는 이를 상기시키는 장면과 말들이 의미심장하게 삽입되어 있다.

예를 들어 '작별하지 않는다' 속 인선의 말이 그렇다. "대만에서도 삼만 명, 오키나와에서는 십이만 명이 살해되었는데요." "그 숫자들을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곳들이 모두 고립된 섬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작별하지 않는다' 136쪽) 이렇게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는 4.3의 경험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류의 경험으로 확장된다.

또 작가는 이 고통을 시간적으로도 과거에만 놓아두지 않는다. 무참히 학살당한 제주도민의 고통은, 소설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주인공이 질병으로 느끼는 신체적 고통이나, 눈밭을 헤매며 길을 잃은 막막함, 살갗을 덮쳐오는 죽음에 이를 것 같은 추위, 홀로 빈 집에 남겨져 죽어간 새의 죽음, 그라인더에 손가락이 잘려 3분마다 신경을 되살리기 위해 바늘을 찔러 고통을 느껴야 하는 친구의 고통과도 겹쳐지고 교차된다.

그는 이렇게 역사적 비극을 현재를 사는 독자의 통점까지 아주 감각적으로 데려다 놓는다. 꿈과 생시, 삶과 죽음까지 넘나들며, 숨 막히는 묘사를 통해. 스웨덴 한림원의 표현대로 그렇게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먹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에 어찌 보면 가장 철학적인 질문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서 '먹는 존재인 인간은 누구인가?'까지 한 발 더 나아간다. 그리고 질문은 단순히 인지적인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피 흘리고 미쳐간다.

'소년이 온다'의 화자 또한 계속 묻는다. '누가 나를 죽였지? 왜 죽였지?' 반복적인 질문을 통해 이 소설은 단지 80년 광주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학살과 모든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21세기에 문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잊었던 이런 본질적인 질문들을 불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한강의 문학에서 한국 문학의 역사적 특수성이 세계적 보편성으로 나아감을 읽을 수 있다. 한국을 더 이상 이데올로기로 찢겨진 상처를 지닌 가난한 식민지의 나라라고만 할 수 없다.

1인당 전력 소비량 세계 3위, 에너지 소비량 세계 9위인 국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빚이 아주 많은 나라이다. 그렇기에 한국과 한국인은 이런 본질적인 질문들을 가장 정면으로 껴안아야 할 책임이 있다. 노벨상 수상으로 한강의 책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읽히고 있음을 환영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 <종교와 평화> 12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재투고하여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한강 #노벨상 #소년이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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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노동 인권, 공교육, 미혼부모,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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