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듣기
  • 전남 장성 백양사에 가거든 꼭 봐야 할 초상화

    동학농민혁명 시기 전봉준과 함께 나선, 접주급 지도자 응운 스님

    등록 2024.12.17 11:36수정 2024.12.17 11:39
    0
    원고료로 응원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필자는 역사학자로서 동학농민혁명에 스님들도 방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합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시기에 전봉준과 함께 동학농민 봉기에 승려 신분으로 참여하였고, 접주급 지도자였던 백양사 주지 응운 스님의 활동과 그의 초상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기자말]
    백양사 홈페이지에 백양사의 영각(影閣)에 응운 스님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다고 나와 있다. 필자는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지난 12일 이를 확인하고자 백양사 탐방에 나섰다.

    전남 장성군 소속의 백양사에 도착하자, 백양사 성보박물관 이홍식 학예연구실장과 백양사 무공 주지스님께서 필자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무공 주지스님께서 응운 스님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는 진영각(眞影閣:스님들의 초상화를 모신 집)으로 안내하여 주었다. 진영각은 백양사 대웅전의 왼쪽에 있었다. 진영각 안에는 20여 명 이상이 되는 스님들의 초상화가 진열되어 있었다. 무공 스님께서 왼쪽에 있는 한 초상화를 가리켰다.

    응운(應雲, 호는 응운(應雲), 법명은 우능(雨能), 성은 박씨(朴氏), 1854∼1896) 스님 초상화였다. 필자는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응운 스님 초상화를 보고 감동하였다. 초상화에는 '응운 대종사의 초상(應雲堂大宗師之影)'이라고 쓰여 있고, 만암(曼庵) 송종헌(宋宗憲, 1876∼1956)이 지은 한시가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응운(應雲, 1854∼1896) 스님 초상화. 백양사 진영각 안에 있음(2024년 12월 12일 촬영)
    ▲응운(應雲, 1854∼1896) 스님 초상화. 백양사 진영각 안에 있음(2024년 12월 12일 촬영) 박용규
    "온갖 꽃은 응운 선사에 감응하고
    응운 선사의 정기(正氣)는 세상의 못된 형세와 기운을 눌렀네.
    초상화가 진짜 응운 선사의 얼굴과 비슷하니
    응운 선사는 단연 무리에서 뛰어났도다."
    (花能感應 氣壓風雲
    彷彿眞相 嵬然出群)

    이상과 같이 만암 송종헌은 선배 응운 스님에 대해 최고의 헌사를 바쳤다. 백양사에 있던 만암 스님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시기에 19세의 나이였고, 백양사의 주지 응운 스님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사실을 목도한 당사자였다. 21세가 되던 만암 송종헌은 1896년에 응운 선사(당시 나이 43세)가 전주감영에 압송되어서, 교수형이 집행되어 순국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만암 송종헌은 선배 응운 선사의 업적을 인멸하지 않고자, 응운 선사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였고, 직접 한시를 지어 선양하였다.

    백양사 무공 주지스님은 필자에게 "송만암이 주지스님으로 있던 때인 1920년대에 응운 초상화를 그렸다. 사실에 가까운 초상화이다. 다행히 초상화가 도적을 맞지 않았다"라고 말씀해 주었다. 귀중한 증언이었다.


    필자가 확인한 바 만암 송종헌은 1916년 7월에 백양사 주지가 되었고, 이후 일제강점기가 끝날 때까지 주지로 있었다.

    백양사 진영각(眞影閣). 진영각은 스님들의 초상화를 모신 집이다.(2024년 12월 12일 촬영)
    ▲백양사 진영각(眞影閣). 진영각은 스님들의 초상화를 모신 집이다.(2024년 12월 12일 촬영) 박용규

    지금까지 백양사는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응운 스님의 초상화를 104년간 잘 보전해 왔다. 백양사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백양사 진영각 안에만 있던 응운 스님의 초상화를 언론에 처음으로 소개한다. 누구라도 백양사에 가서 진영각의 초상화 관람을 요청하면 볼 수 있다.


    고불총림 백양사 백양사 모습(2024년 12월 12일 촬영)
    ▲고불총림 백양사 백양사 모습(2024년 12월 12일 촬영) 박용규

    이어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응운 스님이 머물었던 백양사의 운문암(雲門庵)을 탐방하였다. 이홍식 연구실장이 운문암, 청류암, 응운선사 탑비까지 운전해 주고 안내해 주었다. 운문암은 산 높은 곳에 있었다. 운문암의 높은 지대에서 내려다본 경치는 아름답기가 그지없었다.

    백양사 운문암의 뒤에서 바라본 전경. 운문암 모습(2024년 12월 12일 촬영)
    ▲백양사 운문암의 뒤에서 바라본 전경. 운문암 모습(2024년 12월 12일 촬영) 박용규

    1894년에 운문암의 주지 경담(鏡潭) 선사가 운문암의 암자를 중건하고자 앞장서서 응운 스님을 추대하여 화주(化主:시주승)로 삼아 공사를 시작하였다. 때마침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응운 스님이 추진하던 운문암 중건 공사도 중지되고 말았다.

    응운 스님은 중생(민중) 구제에 전념하고자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로 나서서 동학 포(包)의 대오를 지휘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이 진정되자, 운문암에 돌아온 응운 스님은 1895년에 운문암 중건 일을 거의 완수하였다.

    그러나 응운 스님은 1896년에 장성 백양사에서 관군에 체포되어 전주감영에 압송되었다. 전주감영의 감옥에 구금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전주부재판소 이병훈(李秉勳) 판사는 1896년 8월 8일(양력)에 그를 교수형에 처하고, 집행하였다. 승려 응운은 최후 진술에서 이렇게 당당히 발언하였다.

    "나는 동학의 우두머리 전봉준(全琫準)의 무리로 진실로 여러 곳을 수행하였으나 오히려 체포에서 벗어났다. 오늘에야 체포되었다. 이는 진실로 내 목숨이 다한 때이다.(矣身이以匪魁全琫準之徒黨으로果爲隨行各處而尙在漏綱이다가被捉於今日하니此實矣身命盡之秋이다.)"(「전주부재판소 판사 이병훈 보고서」(1896년 8월 8일 제4호), <사법품보(司法稟報)>)

    이번 백양사 탐방의 또 다른 목적이 응운선사 탑비 답사에도 있었다. 최근 김남수 편집장은 <동학혁명에서 순절한 응운應雲 스님>(<불광미디어>, 2024. 11. 19)이라는 글을 통해 '응운선사순공지탑(應雲禪師殉公之塔)'의 내용과 원문을 소개하였다. 김 편집장의 글에 나오는 응운선사 탑비의 원문 가운데 몇 개의 한자가 누락이 되어 있어, 필자는 이를 보완하고자 하였다.

    응운선사 탑비는 백양사 성보박물관을 지나 1백미터 오른쪽의 부도(승탑군) 안에 있었다. 승탑군 입구에서 가장 오른쪽 가장자리에 응운선사 탑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응운선사 탑비의 상태는 매우 양호하였다.

    탑비에는 일제강점시기인 1940년 6월에 백양사 주지 만암 송종헌 스님(65세)과 영호(映湖) 박한영(朴漢永) 스님(71세)과 제자 기룡(基龍) 차성희(車成熙) 스님(60세)이 합세하여 비를 세웠다고 쓰여 있었다.

    ‘응운선사순공지탑(應雲禪師殉公之塔)’과 필자 (2024년 12월 12일 촬영)
    ▲‘응운선사순공지탑(應雲禪師殉公之塔)’과 필자 (2024년 12월 12일 촬영) 박용규

    필자는 탑비의 원문 전체 글자를 모두 확인하였다. 응운선사의 탑비 바로 왼쪽에는 스승 한양선사(漢陽禪師)의 탑이 있었다. 응운선사의 탑비에서 한 계단 바로 아래에 제자 기룡선사(基龍禪師)의 탑이 있었다. 응운 스님의 스승과 제자가 사후에도 모두 한 곳에 모셔져 있어, 매우 아름다웠다. 다음 기회에 '응운선사순공지탑(應雲禪師殉公之塔)'의 전체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백양사에 가거든 진영각(眞影閣) 안에 있는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응운 스님 초상화와 운문암 그리고 부도(승탑군) 안에 있는 '응운선사 탑비'를 살펴보는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다른 매체에 송고한 바가 없음

    주요 지리정보

    #응운 #스님 #초상화 #동학농민혁명 #백양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고려대 한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과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와 한글학회 연구위원을 역임하였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육영수 피격 사건 1년여 뒤, 일본 경찰이 찾아낸 또 다른 '자료' 육영수 피격 사건 1년여 뒤, 일본 경찰이 찾아낸 또 다른 '자료'
    2. 2 "영상 찍은날 밤, 열이…" 인삼 두 뿌리 씹은 영주 부시장의 고백 "영상 찍은날 밤, 열이…" 인삼 두 뿌리 씹은 영주 부시장의 고백
    3. 3 살아있다면 나흘 후 전역... 아들 쓰러진 곳까지 엄마는 걸었다 살아있다면 나흘 후 전역... 아들 쓰러진 곳까지 엄마는 걸었다
    4. 4 "하나 된 국민의힘" 외치자마자 "꺼져라"... 갈등만 노출한 장외집회 "하나 된 국민의힘" 외치자마자 "꺼져라"... 갈등만 노출한 장외집회
    5. 5 '텐트 안 그 소리' 뭐였을까, 고양이 논란 캠핑장 직접 가봤습니다 '텐트 안 그 소리' 뭐였을까, 고양이 논란 캠핑장 직접 가봤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