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담북클럽 마지막 초대손님은 현기영 작가이다. 2024년 12월 12일 현기영 작가는 <문학과 땅> 주제로 정담북클럽의 8번째 작가두고앞담화 시간에 참여하고 있다.
문가은
"항쟁이 정말 옳은 선택이었는가? 항쟁이 없었다면 그만큼의 수난이 없지는 않았을까? 이것은 영원한 질문이지요. 실제로 그들은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뛰어들었어요. 해방 후, 이데올로기적으로 사회주의 달성을 목적으로 가진 남로당도 있었고, 한반도의 통일된 정부를 바라면서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미군정에 의해 득세한 친일파를 거부하는 뜻도 있었고요.
그리고 이데올로기와 무관하게 생물학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가뭄과 콜레라, 일제 때 못지 않은 강제공출을 겪으면서 죽음의 위험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체포와 고문 같은 강압적인 통치였습니다. 복수과 굶주림 앞에서 목숨 걸고 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도 미군정에 맞서는 항쟁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작 몇 년 전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고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이끌어 낸 미국이라는 나라의 위세가 얼마나 컸겠는가. 그들에 맞서겠다고 제주 청년들은 일본군이 떨구고 간 구식 총 서른 자루를 바다에서 건져냈다. 탄약도 거의 없다. 그들의 무기는 죽창이고 생명이었다.
이제 막 땅거죽을 뚫고 솟아나기 시작한 죽순들이 발에 차였다. 지난 삼년간 왕대밭의 죽순처럼 왕성한 생명력으로 빠르게 성장해온 그들이었다. 그 성장의 열정이 무자비하게 짓밟힌 지금, 그들은 왕대를 베어 죽창을 깎았다. 낫자루를 꽉 쥔 손의 뼈마디가 하얗게 두드려졌다. - <제주도우다> 3권 77쪽
소설 <제주도우다>의 화자는 두 사람이다. 현기영 작가는 한 사람의 시점으로 4.3을 말하기 곤란하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노령의 증언자는 실제 경험한 기억을 증언하고, 젊은 영상제작자는 각종 자료를 학습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 대를 이어서 기억하는 '재기억 re-memory'은 육지 출신의 젊은이를 통해 세대적, 지역적 확장으로 실현된다.
주인공 안창세는 정두길 선생에게 선물받은 만년필로 4.3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증언과 함께 만년필을 임창근(손자사위이자 다큐제작자)에게 건네준다. 그리고 독자 또한 작품 <제주도우다>를 통해서 만년필을 이어받은 당사자가 되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작품에는 당시 민중들이 불렀던 노래와 시가 삽입되고, 사랑방에 모인 청년들의 대사가 희곡 형식으로 등장하고, 실제 증언 청취록이 인용되는 등 다양한 방식의 말하기가 사용된다. 해변의 조천마을과 중산간의 와흘리를 오가는 역사적 인물과 허구의 인물의 삶이 자연스럽게 섞이며 생동감이 넘친다.
특히 그들이 뱉은 제주말은 낯설고 거칠지만 그 땅에서 솟아난 인물들이 어째서 "우리는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닌 제주도우다(제주도입니다)"라고 외치는지 이해하게 만든다.

▲현기영 작가와 함께하는 정담북클럽 현장 한 주 전에 모여서 직품을 읽고 토론한 것을 바탕으로 작가에게 질문을 한다. 참여자들의 작품 이해도가 높다.
문가은
북클럽 참여자 조은미씨는 주인공 안창세의 누나 안만옥의 당당함이 몹시 좋았지만 실제로 여성의 목소리가 이렇게 컸느냐고 질문했다. 현기영 작가는 해녀이자 말을 다루는 테우리로 언제나 호탕하게 웃던 안만옥을 가장 아끼는 인물로 꼽으면서 제주 출신인 지인의 어머니가 실제로 말떼를 (말)배에 태워 수출하는 말장사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작품에 투영했다고 한다. 육지와 다르게 '자기 쌈지'가 있었던 제주 여성은 남편에게 눌리지 않았고 자신도 그런 모습을 좋게 보았다고 한다.
강은혜씨도 안만옥이 가장 매력적이었다면서, 행방불명이라는 그의 마지막을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나 작가는 고개를 저었다. 1948년 당시에 행방불명은 곧 죽음이었다. 주인공 안창세가 자신은 '살아있으나 죽은 자'라고 말하는 이유도 모두 죽고 홀로 살았기 때문이다.
<제주도우다>의 인물들은 주로 10대 20대의 젊은 청년들이다. 혼란하고 엄혹했던 해방공간에서 그들은 우정과 웃음을 나누고, 사랑과 미래를 키우고, 아름답고 뜨거운 꿈을 품었다. 그들은 이길 수 없는 싸움에 죽창을 들었고 '낫으로 보리밭 보리 베듯 밋밋이 쓰러'(3권 241쪽)져 죽어갔다. 죽음 이상으로 참혹한 것은 싸움의 실체였다.
외세에 대한 싸움이 이제는 동족 간의 싸움으로까지 번져갔다. 산과 해변의 대립은 살벌했다. 좌우 양쪽이 번갈아 서로를 죽이고, 그 가족을 죽이고, 그 집에 불을 질렀다. 복수심에 눈멀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친구가 친구를 잡아먹고, 친척이 친척을 잡아먹었다. 천년의 공동체, 무엇으로도 끊어낼 수 없을 것 같던 끈끈한 우애와 혈연의 공동체, 씨줄 날줄로 정교하게 엮인 그 돈독한 공동체가 무참히 찢겨나가고 있었다. - <제주도우다> 3권 128-129쪽

▲현기영 작가, 문정현 신부, 강형철 시인 군산에서 함께하다. 정담북클럽을 시작하기 전, 현기영 작가, 문정현 신부, 강형철 시인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환담을 나누었다.
김규영
현기영 작가와 문예진흥원과 작가회의에서 함께 일한 인연이 있는 강형철 시인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전쟁의 기원>(2023, 글항아리) 개정판 서문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당시 제주도민들이 미군을 '해방군이 아니라 훼방꾼이여'라고 지적한 배경을 상세히 알 수 있다.
정담북클럽에 참석한 문정현 신부는 평택과 강정에 이어 군산의 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해 평화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역사 속에, 소설 속의 문제가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의 문제들이 우리 주변에 산적해 있다.
현기영 작가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2024년 12월 현재, 우리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윤석열 내란 사태를 목도하고 있다. 지금, 문학의 역할은 무엇인가?
"80년대의 치열한 민주화 운동은 90년대 신자유주의 체제로 급변하면서 혁명의 꿈이니 이데올로기 하는 것은 망했지요. 새로 등장한 테크놀로지는 진보도 아니고 성장도 아니었습니다. 광란에 가까운 디지털에 중독되는 현상을 보였지요. 한때 꿈꿨던 사회적 정의, 인권, 공동체, 올바른 역사 등에는 무지하고 무관심하여 왜곡되고 망각되어도 방관하고 있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윤석열이 벌인 쇼 덕분에 광장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80년대의 동지들이, 응원봉을 든 젊은이들이 모두 나와서 함께 하나가 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의 몰가치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문학은 편안함과 위로를 제공하는 것에만 머물며 사회적 글쓰기를 멈추고 있지 않았던가요. 그것을 한강이 해낸 것이지요. 침체된 한국문학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우리는 자기만을 응시하던 눈을 들어 사회를 보아야 합니다.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쉬는 시간도 없이 2시간 넘게 연로한 작가를 붙들고 대화를 이어갔다. 지난 6월부터 작가와 독자의 깊이 있는 만남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2024정담북클럽의 마지막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글도 여기서 멈춰야 하겠으나 뒷풀이 자리의 에피소드 하나를 꺼내지 않을 수 없겠다.
정담북클럽 시작할 때 <제주도우다>의 따알리아가 자주 불렀다는 노래 <스텐카 라친>을 틀어놓았다. 17세기 농민반란의 주인공 스텐카 라친을 기리는 러시아 민요는 한글로 번안되어 80년대에 많이 불리곤 했다. 현기영 선생에게 뒷풀이의 마지막도 노래로 끝내자고 청했다. 노작가의 느릿한 선창을 따라 모두 목소리를 모았다. 김민기의 <상록수>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