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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성차별·성폭력이 일상화된 공간

기울어진 학교는 안전할 수 없다 ①

등록 2024.12.17 10:09수정 2024.12.1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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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5일 인천시교육청은 학생, 학부모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딥페이크 피해 예방 포럼 및 원탁 토론회를 열었다. 인천시교육청이 제공한 행사 기념사진을 보면 참가자들은 '존중', '배려', '사랑', '예방', '진실' 등의 방패를 들고 있다. 성폭력, 젠더폭력, 성평등 등의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1)

9월 5일 열린 딥페이크 박멸 긴급 토론회에 참여한 초등성평등교사모임 아웃박스의 김수진 씨는 바로 이런 장면이 그동안 문제를 키워온 배경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디지털성범죄예방교육플랫폼 <디클>에 업로드된 초등학생용 폭력예방교육 영상에서, 한 남학생이 다른 남학생의 사진을 개그 사진으로 합성하여 동의 없이 커뮤니티에 올렸다가 친구가 불쾌하다는 표현에 잘못을 깨닫고 사과한다. 학교에서 말하는 폭력예방교육에는 성폭력이 없다. 동의와 존중이라는 SNS 에티켓만 있을 뿐이다. 왜 성범죄 피해자의 대다수가 여성인지, 디지털 성범죄는 젠더 기반 폭력인지 말하지 않는다. 교실에서 성범죄를 성범죄라고 부르지 못하는 동안 교사들은 핸드폰 번호를 감추고 졸업 앨범에 사진을 싣지 않는 게 최선이라 여겼다."2)

여기가 우리의 출발점이다. 학교는 그동안 성차별, 성폭력이 일상화된 공간이었고, 그곳에서 배우고 일하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이 때문에 스트레스와 상처를 받고, 장기적으로 건강에도 큰 해를 입기도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문제를 직시해야 다음 발걸음을 디딜 곳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스쿨미투 당시 “정치하는엄마들”이 작성한 스쿨미투 전국 지도. 최근의 딥페이크 사태 역시 오랫동안 성적으로 불평등했던 학교 자체의 문제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스쿨미투 당시 “정치하는엄마들”이 작성한 스쿨미투 전국 지도. 최근의 딥페이크 사태 역시 오랫동안 성적으로 불평등했던 학교 자체의 문제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정치하는엄마들

학교는 왜?

학교는 왜, 어떻게 성차별, 성폭력이 일상화된 채 유지되어 왔을까? 20~30년 전에 비해 성별 고정관념은 훨씬 약해지고, 요즘에는 여학생들에게도 '공평하게' 입시 결과 지상주의를 강요하지 않나? 연구자들은 일부 진전이 있었음에도 학교가 여전히 성폭력과 성별 불평등의 공간으로 남아있는 이유를 1990년대 이후 시장화된 공교육 체제에서부터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공교육은 노동시장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함으로써 자본주의에 충실해 왔지만, 평등이라는 정치적 가치를 보존하면서 분배적 정의를 실현하고 사회적 양극화를 방지하는 기능 역시 수행해왔다. 하지만 공동체성, 평등, 인권 등의 정치적 의제는 시장질서와 완전히 화해할 수 없다. 지금의 '학교 붕괴' 상황은 이런 공교육의 내적 모순이 터져 나온 것이다.


예를 들어, 공교육이 헌신하는 가치 중 하나인 '능력주의'는 이상적인 개인과 표준적인 노동자를 남성으로 상정한 노동시장을 전제하고 작동한다. 이런 시각은 노동시장의 성차별적 구조나 다양한 지배와 분할의 선으로 이미 형성돼 있는 불평등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공고한 성별 임금격차 얘기는 쏙 빼고, 마치 능력에 따라 재화가 분배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능력주의는 구조 바깥을 보지 못하게 하고, 불평등한 구조를 바꾸려는 움직임을 불온시하며, 모두를 '개인'으로 호명해 정치적 주체로 서지 못하게 한다. 능력주의는 현재의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계 내에서 줄 세워 분배받는 것을 정당화하고, 이를 가르치는 학교는 자본주의와 성차별을 공정하게 만드는 제도적 장치가 된다.3)


이런 시장화된 교육 체계에서 성적 차이는 남성과 여성의 해부학적 차이로 정의될 뿐이다. 생물학적 차이가 사회적, 역사적으로 다뤄져 온 과정이 성찰될 자리가 없다. 생물학적이고 해부학적인 지식의 이해 중심으로 성교육이 이루어진다. 이럴 때,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수컷(male)과 암컷(female)의 차이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4)

성교육에서 여학생의 몸은 임신·출산을 예비하는 몸으로 단정되고, 남성의 공격적 성적 충동은 여전히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해석된다. 성폭력을 성폭력이라 말하지 못하고, 젠더를 역사적, 사회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주지 못하는 '성교육'은 성교육의 실패가 아닌 자본주의 아래 공교육이 취할 수 있는 성교육의 '정상적인 상태'다.

이런 점에서 학교는 사회의 젠더 관계를 단순히 반영하거나, 기존의 젠더 관계를 활용하는 것을 넘어 여전히 불평등한 구조로 젠더 관계를 배치하는 적극적인 장치로 기능한다.5)

학교 노동자도 마찬가지

학교가 불평등한 젠더 관계를 적극적으로 배치하는 기관이라 할 때, 학생들뿐 아니라 학교 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역시 성차별과 성폭력의 구조에 노출된다. 2021년 안양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교장이 여교사 화장실에 소형 카메라를 몰래 설치해 긴급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2024년 2월에는 전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교사에게 성희롱, 성추행을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역의 여성단체들에 따르면 해당 학교 성고충심의위원회는 성희롱만 판단하고 성추행에 대해서는 경찰 수사를 이유로 입장을 정하지 않았다. 교장은 이를 무마하려다 폭력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고,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 교사 여럿을 다른 학교로 전보시키기도 했다.

학교는 또 성별에 따른 직종 분리가 뚜렷한 세계이기도 하다. 2017년 이언주 의원(당시 국민의당,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학교 비정규직노동자 파업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에게 '밥하는 아줌마를 왜 정규직화해야 되는가'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학교급식노동자들 외에도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약 90%가 여성이다.

학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학교의 관리자나 정규직 교사들로부터 인간적 모욕, 감시, 배제 등 다양한 차별을 경험하면서,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여성', 그리고 '비정규직'이라는 한국 사회의 약자가 받을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고 인식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비정규직 내에서도 여성 비정규직에 대한 저평가는 노동자 계급 내부의 구별짓기를 강화하고, 비정규직 내부에서도 불평등을 심화시킨다.6)

성차별, 성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의 건강은

이렇게 성차별, 성폭력을 경험하는 학교구성원들의 건강과 삶의 질이 좋을 리 없다. 이미 20년 전인 2004년, 583명의 중고등학생 대상의 연구에서 성희롱, 음란물 및 음란 전화, 성추행, 강간 등 대부분의 교내 성폭력이 형태를 막론하고, 신체화증상, 강박증, 우울, 불안 등 정신건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이런 관련성은 남녀 학생 모두에서 나타났다.7) 청소년 성폭력 피해 경험은 장기간의 후유증을 남기고 심리사회적 발달을 저해하기도 한다.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자살 생각 및 행동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여러 연구에서 밝혀져 있다.8)

직접적인 폭력뿐 아니라 차별 역시 이를 경험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상흔을 남긴다. 차별 경험은 크게 두 가지 경로로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차별 경험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어 흡연이나 음주 등 건강위험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스트레스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으로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나 교감신경계 항진으로 혈압이나 혈당 상승, 각성도 증가, 땀, 심박수 증가 등 다양한 신체 반응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반응이 지속, 반복될 경우, 비만, 심장병, 고혈압, 근골격계 질환 등 다양한 질병 위험이 커진다.9)

학교노동자 건강 문제를 젠더 시각으로 다시 보자

2022년 제주의 한 중학교 교사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차별을 하지 말자는 수업을 했다. 여기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것을 이유로 일부 학부모와 단체가 학교에 찾아와 항의하고, 전시해 둔 수업 결과물을 철거할 것을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해당 학교 동료 교사 전원이 해당 교사의 수업을 지지하는 입장문을 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이번 일로 인해 교사들은 두렵다. 학생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할까 더 두렵다"라고 말했다.

학교급식실에서 10년 이상 조리흄(음식 조리시 나오는 유독 증기) 노출로 폐암이 발생해, 산업재해로 인정된 100명은 현재까지 전원 여성이다. 학교급식실 폐암대책위에서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업재해 조사 과정에서 다른 폐암 노동자에게는 묻지 않는 '가정에서의 조리 빈도와 정도'를 묻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학교급식조리노동자의 폐암이 얼마나 '젠더화된' 산업재해인지 지적했다.

사회의 성차별을 단순히 반영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차별과 폭력을 생산하는 학교에서 노동자들의 건강은 젠더 평등 문제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1) 연합뉴스, 2024.11.6., https://www.yna.co.kr/view/RPR20241106007200353
2) 김수진, 사회는, 교실을 닮는다 : 딥페이크 사태를 마주한 한 초등교사의 발언,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 자료집.
3) 엄혜진, 성차별은 어떻게 '공정'이 되는가? : 페미니즘의 능력주의 비판 기획, 경제와사회, 2021, 제132호 pp. 47-79
4) 엄혜진, 김서화, 공교육의 시장화와 '성평등' : 가해자/피해자, 정상군/관심군, 그리고 수컷/암컷 이분법에 기반한 시민성 개발, 한국여성학, 2020, 제36권 2호 pp. 1-39
5) 엄혜진, 앞의 글.
6) 윤민재, 학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연구, 사회과학연구, 2013, vol. 21(1) pp. 144-184
7) 김혜원, 장명심, 청소년들의 교내 성폭력 경험과 정신건강의 관계 : 성별에 따른 비교, 미래청소년학회지, 2004, 제1권 제1호, pp. 125-149
8) 염동문, 조혜정, 청소년의 성폭력 피해경험이 자살생각에 미치는 영향 : 우울과 자아존중감의 조절된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한국청소년연구, 2021, 제32권 제1호, pp.33-55.
9) 손인서, 김승섭, 한국의 차별경험과 건강 연구에 대한 체계적 문헌고찰, 2015, 보건사회연구 제35권 제1호, pp.26-57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12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최민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스쿨미투 #성폭력 #성차별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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