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17일로 단식 28일차를 맞는 강인석 부지회장
거통고조선하청지회
다행히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를 수용해 대통령이 새벽 4시 30분에 비상계엄을 해제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침을 맞이하고 출근 집회를 하고 파업과 22일차 노숙농성과 15일차 단식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밤 사이 비상계엄의 경험은 파업을 할 권리와 집회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일깨웠다. 노동자에게 파업과 집회를 할 수 없는 세상이란 암흑과도 같다는 것을 잠깐 동안이지만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시민의 일상 깨뜨린 윤석열의 비상계엄
그 후로 십여 일 동안 한국사회는 거리마다 탄핵의 물결로 가득찼다. 특히 다양한 모양과 빛깔의 응원봉을 들고 십대, 이십대가 대거 참여하는 새로운 집회 모습이, K-팝이 흥겁게 울려퍼지는 축제와도 같은 집회가 큰 주목을 받았다.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는, 참 다행스럽고, 참 반가운 일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수많은 시민들의 일상을 깨뜨려버렸다. "덕후에게 마음 편히 덕질 할 자유를 달라"고 요구하는 거대한 외침이 거리와 광장을 야광봉 불빛으로 넘실거리게 했다. 11월 14일 다행히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었고, 그러자 시민들은 이제 헌법재판소 앞에 모여 윤석열을 파면하라 외치고 있다. 모두들 윤석열이 하루 빨리 탄핵되고, 체포되고, 구속돼서 12월 3일 밤 비상계엄 이전의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곧 그렇게 될 것 같다.
그런데, 윤석열이 파면되고 나서 다시 돌아간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지옥' 같다면 어떨까. 윤석열이 탄핵되는 것만으로는, 그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생지옥 같은 현실이 변함없다면 어떨까. 거제에서, 울산에서, 목포에서 배를 만드는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처지가 그렇다. 우리도 매일 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윤석열 탄핵과 구속을 외쳤지만, 윤석열이 탄핵된다 해도 조선소 하청노동자가 다시 돌아갈 일상은 생지옥에 다름 아니다.
탄핵을 딛고 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 차량과 현수막으로 대략 바람막이를 한 한화오션 사내 노숙농성장
거통고조선하청지회
올해부터 조선업이 초호황이다. 지난 3분기까지, 그러니까 1월부터 9월까지 단 9개월 동안 현대중공업은 4230억, 삼성중공업은 3285억, 한화오션은 689억 원의 막대한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 수천억의 이익을 만들어낸 조선소 하청노동자는 20년을 일해도, 3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저임금에 고통받고 있고 심지어는 임금체불까지 당하고 있다. 또한, '기업살인'이라고 불리는 산재 사망사고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올해만 한화오션에서 노동자 일곱 명이 목숨을 잃었고, 조선업 전체로는 스물한 명이나 사망했다.
이런 현실을 바꾸고자 하청노동자가 노동조합으로 뭉쳐서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면 원청 조선소의 탄압이 뒤따른다. 지금 한화오션에서는 회사의 폭력과 방해로 이 추운 겨울에 천막도 치지 못하고 35일째 노숙농성을 하고 있고, 28일째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국회의원들이 농성장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한화오션은 국회의원의 말도 들은척 만척 안하무인이다. 거리와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거대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도 조선소 안에서는 한화자본의 독재가 굳건하다.

▲ 날이 추워지면서, 아침이면 농성장 치망에 허옇게 서리가 내린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던 12월 3일 밤도 마찬가지였다. 조합원들은 침낭 하나로 겨울밤 추위를 견디다 비상계엄 소식을 들었다. 다시 말해, 한화오션 하청노동자에게 윤석열이 탄핵 되고 다시 비상계엄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 차디찬 노숙의 밤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는 단지 탄핵만 외칠 수 없다. 탄핵 이전의 삶 역시 생지옥이었기에 탄핵을 딛고 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노동조합법 2조, 3조 개정, 이름하여 '노란봉투법'이라고 하면 그래도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비정규직노동자는 제대로 누릴 수가 없다. 그래서 노동조합법을 고쳐서 비정규직노동자도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려는데, 윤석열은 두 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러므로 윤석열 탄핵은 그를 대통령에서 끌어내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가 거부한 노동조합법 2조,3조 개정으로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윤석열이 탄핵된 뒤 국회에서 가장 먼저 통과시키는 법이 노란봉투법이었으면 좋겠다. 그것도 이전에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의식해서 만든 미흡한 내용이 아니라 조선소 하청노동자도, 자동차 판매 노동자도, 쿠팡 물류창고 노동자도, 퀵서비스 플랫폼 노동자도…, 모든 노동자가 노동3권을 누릴 수 있는 제대로 된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래야 조선소 하청노동자도 윤석열을 탄핵시킨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는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며칠 전인 11월 29일 서울에 올라와서 단식을 계속하며 한화본사와 용산 대통령집무실을 향해 오체투지라도 하며 투쟁 상황을 알리고 사회적 관심과 연대를 호소하려고 했다. 그러나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함성 소리에 묻혀 계획을 취소하고 거제로 내려와야 했다. 이제 윤석열이 탄핵되었으니 하지 못한 투쟁을 다시 해보려고 한다. 그동안 탄핵의 함성 소리에 가려 잘 들리지 않던, 투쟁하는 노동자의 목소리에 더 많은 관심과 사회적 연대가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 절박한 투쟁의 목소리가 탄핵의 함성에 묻힐수록, 조합원들은 더욱 열심히 탄핵집회에 앞장섰다. 투쟁조끼와 머리띠를 매고서.
거통고조선하청지회
윤석열을 탄핵하고 처벌해 1987년 6월 항쟁이 만들어낸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회복하고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에 그치지 않고, 여전히 재벌의 독재, 자본의 독재가 강력한 노동 현장과 생산 현장으로 민주주의를 확대시켜 나가자. 윤석열 탄핵이 끝이 아니라, 1987년에 형식을 갖추는데 머물렀던, 한국사회의 진정한 민주화를 위한 시작이 될 수 있도록 노동자가 앞장서 투쟁하자. 멀리 거제에서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도 한화자본의 악랄한 노조탄압과 자본독재에 맞서 온 힘 다해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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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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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노숙농성 침낭 속에서 맞이한 비상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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