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많은 것이 걸린' 선거, 바꿔야 민주주의 가능하다

이기거나, 전부 잃거나... 반복되는 선거 전쟁을 막으려면

등록 2024.12.18 17:34수정 2024.12.18 17:34
0
원고료로 응원
 지난 7일 오후 시민들은 여의도공원 등 일대에 모여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당시 국회에선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불참으로 투표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지난 7일 오후 시민들은 여의도공원 등 일대에 모여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당시 국회에선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불참으로 투표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지유석

대한민국이 다시 한 번 탄핵정국으로 빠져 들었다. 2004년 3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이어 세 번째다.

고 노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기각하면서 '귀환'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파면 당했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에 대해 헌재가 어떤 결정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헌법정신을 거스르는 판단을 내리지는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20년 동안 대통령 탄핵을 세 차례나 경험하는 건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역동적이기도 하지만, 불필요하게 국가적 역량을 낭비하는 것 같아 착잡한 마음이다.

다시 한번 되짚어 보자. 고 노 전 대통령 탄핵은 정략적 성격이 강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이유가 분명하다. 두 사람 모두 무능했다. 그러나 무능이 탄핵의 이유일 수는 없다. 더 근본적으로 두 사람은 '민주주의'에 대해 무지했고, 심지어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했다. 윤 대통령의 난데없는 12.3 비상계엄은 우리 사회가 쌓아 올린 민주주의 성과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었다.

그런데 따져보자. 윤 대통령은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민주적으로 집권한 대통령이 민주주의 근간을 파괴하려 한 건 엄청난 역설이다.

그럼 문제는 명확해진다. 윤 대통령이 선거를 통해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제2의 윤석열'을 막을 수 있어서다.


윤석열이 집권할 수 있었던 으뜸 원인은 문재인 정부의 무능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방역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에선 실패를 거듭했다. 차별금지법 등 쟁점 입법은 미온적이었다. 이 같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는 사회적 소수자를 놓쳤고, 궁극적으로 민주당 지지기반 해체로 귀결됐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리서치 디자이너는 2022년 5월 6일자 "왜 180석 거대 여당은 2년 만에 심판 받았나"란 제하의 보고서에서 정권교체 원인을 "2021년 4.7 재보궐선거를 기점으로 민주당 지지를 철회한 민주당 이탈층이 20대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했다.


정 디자이너의 결론은 이렇다.

"주로 2030세대·경인 지역·중도 성향을 가진 이탈 민주층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상대적 호감은 유지하고 있으나 동시에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해 정권심판의 정서도 공존하고 있었다. 이재명 후보가 국정 역량에 대한 강점을 보였고 선거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에 대한 무속 논란 공방이나 김건희 여사 이력 논란 공세가 잔류민주층의 결집에 도움이 되었지만 이탈민주층의 지지 회복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장동 이슈와 도덕성 문제 논란이 불거지자 국정 역량 이슈가 억제되어 결과적으로 이재명 후보에게는 역효과를 낳았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강성 지지층, 여전히 강력하다

 대한민국이 다시 한 번 탄핵정국 속으로 빠져 들었다. 2004년 3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이어 세 번째다.
대한민국이 다시 한 번 탄핵정국 속으로 빠져 들었다. 2004년 3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이어 세 번째다. 지유석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문 대통령 강성 지지층이 <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 등 진보성향 언론을 향해 드러낸 반감도 지지기반 해체로 이어진 요인 중 하나라는 판단이다.

개인적인 경험이다. 난 문재인 대통령이 갓 취임했던 2017년 5월 정부가 갑을오토텍 사측 변호 이력이 있는 박형철 변호사를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으로 임명한 점을 따진 적이 있었다. 그러자 이를 비판하는 댓글이 쇄도했다. 댓글 작성자들은 새로 출범한 정부를 비판한다며 적대감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이런 반응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던 중도·보수층을 등 돌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간절히 바랐던 나로서도 댓글 반응을 보며 넌더리가 났을 정도였다.

일부 민주당 강성지지층의 행태도 우려스럽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이 이재명 대표 호위무사 구실을 한다는 비판은 당 안팎을 가리지 않고 나온다.

그런데 이 같은 비민주성(?)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강성 지지층의 행보는 '또 다시 패배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의 표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절박함은 2009년 고 노무현 대통령 사망에서 비롯됐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겨 준 뒤 정치보복에 시달렸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게 사실에 부합한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은 민주당 계열 정당과 그 지지층에게 쉽게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즉, '정권을 빼앗기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기억을 생생하게 각인시켰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같은 트라우마는 종종 당의 비민주성을 덮는 명분으로 사용되곤 한다.

하버드대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에서 이렇게 적는다.

"선거는 종종 많은 것이 걸린 전쟁처럼 보인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이 걸린 전쟁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두려워할 때 정당은 어떻게든 권력을 넘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패배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은 정당이 민주주의에 등을 돌리게 만든다."

강성 민주당 지지층은 '호위병'이란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문 전 대통령 지키기에 앞장섰고 현 이재명 대표 지키기에도 앞장서고 있다. 적어도 이렇게 된 데엔 '너무 많은 것'이 걸린 선거에서 졌고, 그 결과로 전직 대통령을 잃었다는 인식이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같은 행태는 민주당 지지층 해체를 불러왔고, 결과적으로 윤석열 집권을 가능하게 했다는 판단이다.

'선거 전쟁'을 막으려면?

 지난 7일 오후 시민들은 여의도공원 등 일대에 모여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당시 국회에선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불참으로 투표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지난 7일 오후 시민들은 여의도공원 등 일대에 모여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당시 국회에선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불참으로 투표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지유석

윤석열 탄핵 이후 '책임 총리제를 도입해야 한다', 혹은 '1987년 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20년 동안 세 명의 대통령이 탄핵됐고, 이 중 두 명의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쫓겨났거나 쫓겨 날 위기에 처한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어떤 식으로든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건 선거에 걸린 이해관계를 줄이는 일일 것이다. 다시 한 번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당이 패배를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두 번째 조건은 정권이양이 재앙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즉,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생계가 어려워지지는 않을 것이며 권력을 넘겨주는 정당과 그 지지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이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사실, 한국 정치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정권이 바뀌면 권력을 넘겨주는 정당과 그 지지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이" 위협받는 것이다. 민주당에서 강성 지지층이 등장하고, 국민의힘이 탄핵안 가결로 직무배제된 대통령을 엄호하는 이유도 이런 위협에 대한 반작용 아닐까?

그러니 이젠 선거에 걸린 이해관계를 줄이는 방안이 무엇인지 찾고 이를 명문화하자. 그리고 국회에서든 사법부에서든 이 문서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자.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승자가 독식하는 행태는 암묵적인 계율로 억제해야 했다. 이를 정치학에선 '제도적 자제'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제도적 자제는 한국 정치 문화에서 찾기 어렵다. 그래서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다시는 제2의 윤석열이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선거에 걸린 이해관계를 줄이는 일은 그 첫 단추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같은 토대 위에서 의원내각제든 책임총리제 든 제도 개혁을 고민하자.

만약 선거에 걸린 이해관계를 감소하지 않은 채 제도만 바꾼다면, 그 어떤 제도도 오작동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주 한인매체 <뉴스M>에도 실립니다.
#윤석열 #탄핵 #민주주의 #선거 #노무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번 주말 놓치면 끝... 다 진 줄 알았던 벚꽃, 여긴 이제 절정 	이번 주말 놓치면 끝...  다 진 줄 알았던 벚꽃, 여긴 이제 절정
  2. 2 호랑이 뼈 발견된 호랑이 굴, 단양에 있다 호랑이 뼈 발견된 호랑이 굴, 단양에 있다
  3. 3 [단독] 김성태 "시킨 놈이 문제"... 대북송금 수사 '윗선' 겨냥 [단독] 김성태 "시킨 놈이 문제"... 대북송금 수사 '윗선' 겨냥
  4. 4 휴대전화 빼앗자 아이가 한 말 "선생님 수업, 대단치 않아요" 휴대전화 빼앗자 아이가 한 말 "선생님 수업, 대단치 않아요"
  5. 5 이재명 "이 개·돼지 열받는다", 10년 후 진짜 싸움 시작됐다 이재명 "이 개·돼지 열받는다", 10년 후 진짜 싸움 시작됐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