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분을 손질해서 계단에 놓았다.
이승숙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내 집이 아니라서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미리 숙소 주인에게 물어봤다.
"내가 정원의 꽃과 나무들을 예쁘게 다듬어주고 싶은데 괜찮겠는가?"
마당의 꽃과 나무들을 손질해 주겠다는 뜻을 전하니 주인이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주인 입장에서는 내 제안이 고마웠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엄지를 치켜들며 "오케이, 땡큐."를 연발했다.
정원 돌보기, 좋아서 하는 일
숙소 여주인은 나와 동갑인데 나를 볼 때마다 "마이 프렌드" 하며 반겨준다. 한 번은 단호박을 쪄서 가져다준 적도 있었다. 그에 대한 답례로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봉지 커피를 좀 나눠 주었더니 그 후로 나만 보면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한다.
지금 근 한 달째 머물고 있는 이 숙소는 원룸형 아파트다. 아파트라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보는 그런 형태의 아파트는 아니고, 빌라에 더 가까운 건물이다. 태국 치앙라이의 반두(Ban Du) 지역에는 이런 형태의 주거용 건물들이 많은데 인근 대학교 학생들과 직장인들에게 빌려주기 위해 지은 집들인 것 같다.

▲ 숙소 마당의 식물들을 다듬고 손 보는 일은 '일'이 아니라 '놀이'다.
이승숙

▲ 마른 잎과 줄기를 없앴더니 보기에 좋았다.
이승숙
이 숙소에는 방이 약 80개 정도 있다. 1층과 2층에는 빈 방이 별로 없는데 3층에서 4층까지는 비어 있는 방이 많다. 시내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빈 방이 많은 이곳은 12월이 되면 겨울 특수를 누린다. 추위를 피해 온 한국인 장기여행자들이 이 숙소를 많이 얻기 때문이다.
태국 치앙라이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 년 단위로 집을 빌려주지 한두 달 빌려주는 곳은 드물다. 호텔이나 게스트 하우스는 단기로도 빌려주지만 그런 곳에는 주방이 없다. 장기로 머물기 위해서는 간단하게라도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주방이 있으면 좋은데, 그런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 숙소는 그나마 주방 시설이 있어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다. 게다가 방값도 한국인들에게는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라 아예 일 년씩 방을 빌려두는 사람도 있다. 여름에도 와서 두 달 정도 지낸다는데, 덥긴 해도 한국의 찜통더위만큼 덥지 않아 지내기에 괜찮다고 했다.

▲ 조금만 다듬어줘도 표정이 달라질 텐데... 아직 손 대지 않은 곳.
이승숙

▲ 마른 잎과 줄기들만 다듬어줘도 훨씬 깔끔하고 예쁘다. 이 부분은 아직 다듬지 못했다.
이승숙
우리는 지난해에도 치앙라이에서 6주 정도 지냈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편하고 좋았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갈 때 다음에 와서 지낼 숙소를 미리 예약해두고 갔다. 주방이 있는 방은 귀해서 성수기 때는 구하기가 힘들다는 말을 듣고 미리 얻어두고 갔는데 잘한 일이었다.
11월 25일에 우리가 왔을 때는 한국인들이 몇 분 없었는데 12월 24일 현재 이곳에는 열두어 집 정도 한국 분들이 거주하고 있다. 부부가 함께 지내는 집도 있고 혼자 와서 머무는 사람들도 있다.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것들
어제도 마당의 식물들을 손보고 있는데 옆 동에 사는 분이 그런 나를 보고 묻는다.
"뭐 하세요?"
맨 손으로 일을 하는 내가 신기한 지 물었다. 마른 잎들을 잘라 주면 훨씬 보기 좋아서 다듬고 있다고 했더니 "방 값 좀 빼달라고 하세요." 했다.

▲ 수국도 예쁘게 피었다.
이승숙

▲ 꽃과 함께 하는 하루.
이승숙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방 값과 결부하면 그건 '놀이'가 아니라 '일'이 된다. 돈 받고 할 것 같으면 내가 왜 이 일을 할 것인가. 좋아서 하는 일은 돈을 내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일은 마음으로 보상을 받는다. 충족감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많다. 충족감 역시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돈은 작은 것일 수도 있다.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것들이 더 큰 것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가치 기준을 '돈'에 둔다.
어느 곳에 있든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주인이 되는 마음을 수처작주(隨處作主)라고 한다. 주인이 된다는 건 곧 주도적인 마음을 가지라는 뜻일 것이다. 화단의 식물들을 다듬어주는 마음도 일종의 수처작주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다는 마음이 바로 수처작주다. 오늘도 나는 화단의 꽃과 나무를 돌보며 즐거움을 누린다. 그 일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또 이웃들과 나누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 생각하니 내 마음이 더 좋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