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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4.12.20 16:56수정 2024.12.2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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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길 내내 불안하더니 도착하자마자 확신했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지난달 25일 활동 보조인 교육 기관에서의 첫날, 내 머릿속에는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돈 벌려고 시작한 일
50여 명이 모인 교육장은 왁자지껄했다.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친근하게 인사도 나누고 번호도 교환한다. 이게 더 산 사람들의 짬밥인가 싶었다. 대부분 50,60대였고, 나는 유일한 20대였다. 호기심 어린 시선이 쏟아지는 건 당연했다.
"어머, 아기가 왔네?"
"아기가 이 힘든 일을 어떻게 하려고 그래?"
지나가는 사람마다 내게 던진 첫마디였다. 그래, 누군가의 손과 발이 되는 건 힘든 일이다. 사실 인생에서 '장애인 활동 지원사'라는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엄마뻘, 많게는 할아버지뻘 되는 분들과 동기라는 사실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15만 원이라는 교육비도 취업 준비생 입장에서 적잖이 '아까운 돈'이었다.

▲교육장 사진 교육장에 비치된 휠체어와 시각 장애인용 흰 지팡이
최서정
지금도 또래 친구들은 묻는다. 왜 장애인 활동 지원사를 하냐고. 사명감 때문이냐고. 아니, 솔직히 돈 벌려고 시작했다. 처음엔 그리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선택이었을 뿐이었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교육 기관에 모인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5일간 같은 자리에 앉아 서로 친해지면서 알게 된 건, 많은 이들이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찾으러 왔다는 것이다. 짝꿍이었던 연변 출신 이모(62년생)는 오랫동안 식당과 공장에서 일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일자리를 구하는데 제약이 많아졌다고 했다.
이렇게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 모였다. 그리고 사실 이런 태도는 장애인들이 가장 원하는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들에게 제공하는 건 '봉사'가 아닌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 시각장애인 선생님과 함께했던 5번의 동행 길이 스쳐 지나간다. 적어도 지금은 이용자에게 든든한 '삶의 아군'이 되고 싶은 활동 지원사다.
*장애인 활동 지원사가 되기 위해서는 활동 보조인 교육기관에서 40시간의 이론 및 실기교육과 활동 지원기관에서 10시간의 현장실습을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만 18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될 수 있다.

▲활동지원사 양성 교육교재 보건복지부와 한국장애인개발원이 공동 개발한 도서
최서정
활동지원사는 장애를 알아야 한다

▲강의화면 활동지원사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는 화면
최서정
수업 첫날, 휠체어를 탄 한 중증장애인 강사가 우리 앞에 섰다.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그는 안면근육과 양손 엄지가락만 움직일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두 번째 장애인이었다. 강사는 수강생들에게 그림 하나를 보여줬다.
두 손이 뒤로 묶인 한 노인이 젊은 여인의 젖을 빨고 있는, 다소 외설스럽고 낯 뜨거운 그림이었다. 강사는 무엇이 보이냐며, 우리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듯 꽤 시간을 들여 답을 유도했다.
처음에는 노인과 여자의 부도덕한 애정행각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다시 보니, 다른 게 보이기 시작했다. 여인의 시선은 다른 방향을 향해 있었고, 철장 너머 그들을 훔쳐보고 있는 두 간수가 있었다. 뼈만 남은 노인의 앙상한 몸과 희끗한 머리카락도 눈에 들어왔다.
그림은 바로크의 거장 루벤스(1577~1640)의 명작 <노인과 여인>이었다. 역모죄로 붙잡혀 굶겨 죽이는 형벌을 받은 아버지에게 딸이 몰래 젖을 먹이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알고 보면, 막장 포르노가 아닌 부모를 향한 자식의 지극한 효심이 담긴 작품이었다. 그림의 본질을 알고 나자, 편견은 싹 사라졌다. 아마 강사가 말하고자 했던 건, 장애를 '알고 대하는 것'과 '모르고 대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말이었던 것 같다.
물론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장애인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행동과 단어가 차별을 내포하는지 헷갈릴 때도 많다. 강의 내내 강사들이 어떻게 장애인이 되었는지에 대한 서사를 들으며, 수강생들이 쏟아낸 "어휴", "쯧쯧", "안됐다" 등의 탄식들도 잘 몰라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활동 지원사로서 장애인과 동행을 시작한 이상, '몰라서'라는 말로 끝내서는 안 된다. 모르면 물어보고, 같은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는 것. 이것이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제대로 연대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여러분, 제가 장애인 같아요?"
강의 중 유독 뇌리에 깊이 박힌 질문이었다. 한 강사가 자신이 장애인인지 비장애인인지 묻는 것이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수강생들 사이에서는 '맞다' 혹은 '아닌 것 같다'는 등 소심한 대답들이 말꼬리를 내린 채 이어졌다.
장애를 더 깊이 보면 보이는 것

▲강의화면 시간장애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담은 화면
최서정
사실 그의 첫인상은 비장애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가 말만 하면 수강생들 사이에선 웃음이 빵빵 터져 나올 만큼 의사소통도 자연스러웠다. 다만 발음이 어눌한 점이 그의 장애를 짐작하게 했다. 쉽사리 답변하지 못하는 수강생들에게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제가 장애인이 아니라면 여성분께 가서 '여자 아니시죠?'라고 묻는 것과 같아요. 저는 장애인이 맞습니다."
그는 우리가 교육장에서 만난 첫 번째 장애인이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대답을 주저한 이유는 장애인으로 '호명'하는 것이 실례라는 보편적 인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장애인을 미천하게 봐서 그렇다는, 다소 날 선 표현도 했다.
사실 그에게 묻지 못한 질문이 있었다. 정확히 어떤 장애를 가졌는지에 대한 물음. 하지만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혹여나 상대를 상처 입힐까, 괜스레 두려웠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두려움 역시 장애를 '보통'의 기준에서 보지 않은 편견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강사가 던진 메시지는 장애인 역시 평범한 '사람'으로 봐달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 답은 중증 장애 강사 하옥순 선생님의 말 속에 있었다.
"처음엔 잘 모르니까 '장애'만 보이는데,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 '사람'이 보이기 시작해요. 그래서 이 일(장애인활동지원)을 할 수 있는 거예요."
| 📍장애인에 대한 흔한 오해, 등급이 있다? |
| 기존의 6등급 구분에서 '심한 장애'와 '심하지 않은 장애'의 2단계 구분으로 바뀌었다. 2007년 장애인 활동 보조 서비스의 도입 이후, 장애등급제 폐지가 이뤄졌다. 그간 의학 진단으로 장애 판정 오류가 나거나, 사람에게 동물처럼 등급을 매기는 것이 반인권적이라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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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명이 모인 교육장, 20대는 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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