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산110번지(성재산 교통호) 유해 노출 모습(진실화해위원회, <2023년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보고서>)
진실화해위원회
향후 과제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이 몇 가지 중요한 의의를 가지지만, 현재 유해발굴과 관련해서는 성과보다 오히려 향후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이 더욱 많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은 2024년을 마지막으로 또 다른 사업이 진행될 수 없다. 왜냐하면 위원회의 활동 종료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진실화해위원회는 발굴을 시급하게 하는 것보다 위원회 종료 이후 남아 있는 유해발굴을 어떠한 방식으로 실시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각종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과 더불어 많은 지자체에서도 독자적인 유해발굴이 실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주형무소재소자 학살 사건과 연관된 전북 전주시 효자동 인근 유해발굴은 지방자치단체의 후원으로 진행되고 있는 발굴이다. 대구형무소재소자 학살사건과 연관된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유해발굴도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실시된 바 있다.
물론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로 교부금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위원회 종료 이후에 지방자치단체가 필요한 경우 어떠한 방식으로 유해발굴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개략적인 계획이 필요하고, 이 부분은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아이디어를 제공해야 한다고 본다.
많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중앙정부에서 재정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유해발굴을 실시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으므로, 진실화해위원회 종료 이후에도 지자체로 유해발굴 및 조사 예산이 지급될 수 있는 분위기 조성과 방안 등을 진실화해위원회 내부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규명 조사와는 달리 향후 우연한 기회에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가 확인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에 대한 발굴은 실시해야 한다. 조사 및 진실규명은 모른체 하며 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인간의 유해를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유해발굴지 및 매장추정지 관리 방안
2008년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전국의 유해매장추정지를 관리하기 위해 '매장지 안내 표지판' 설치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 종료 이후 매장지 안내 표지판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표지판이 훼손되거나 파괴된 곳도 상당수 있었다. 이러한 안내판 등으로 유해매장추정지를 알리고 보존할 수는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위원회 종료 이후에도 시민들이 유해매장추정지에 대해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이것은 그곳에 유해가 실제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곳에 우리 역사의 추악하고 어두웠던 순간이 존재했음을 기억하는 것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온라인 등을 포함)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많은 이들은 또한 유해발굴 이후 발굴된 곳을 어떻게 기념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대전 골령골의 민간인 학살지는 몇 년 후 민간인 피학살자 위령기념 시설물로 대체될 것이다. 한국의 미래 세대들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가장 추악했던 현장인 골령골 발굴터를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유해발굴이 끝나면 그곳은 재매립되어 전혀 다른 공간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한 가지 사례로 2007년 약 150여 구의 유해가 발굴되었던 충북 청원군 분터골 발굴지는 전원주택단지 건설이 예정되어 있다. 발굴을 통해 유해를 수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현장을 재발방지를 위한 교육적 목적으로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유해발굴과 관련한 정책은 여기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유해발굴을 통한 미래세대 교육
필자는 2021년 경산코발트광산의 유해발굴지가 '공포 혹은 귀신체험' 사이트로 전락하고 있다는 논문을 쓴 바 있다. 2017년 6월 4일, 경산코발트광산 수직갱도 입구에서 20대 청년 한 명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사고가 발생한 수직갱도 입구는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이 실시되었던 곳인데, 발굴기간 종료 후 별도의 안전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2007년 당시 유해발굴 팀이 수직갱도를 약 20여 미터 굴착해 놓은 상태였기에, 20대 청년은 이곳으로 추락한 것이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 청년이 코발트 광산으로 한밤중에 온 이유는 '공포를 체험'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경산코발트광산 사건은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에 의해 사건의 진실규명이 이루어졌고, 또한 2016년 대법원으로부터 국가배상 판결을 받아 유가족들에게 배상금까지 지급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경산코발트광산에 대한 담론은 소위 '인권과 평화'를 지향하는 지점에서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괴담'의 영역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국민들이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이나 과거사청산에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사람이 많이 죽었던 장소라는 이유로 곡해(曲解)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괴담들의 특징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피학살자의 억울한 죽음과 완전히 동떨어진 채 형성된 것이 아니라, 민간인학살 서사구조를 바탕으로 새로운 괴담이 등장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경산코발트광산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유해발굴이 실시된 곳이다. 많은 사람들은 경산코발트광산의 유해발굴 소식을 언론보도를 통해 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시민들에 대한 과거사청산의 교육적 측면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 2008년 당시 경산코발트광산의 유해 발굴을 마무리하지 못한 토사는 마대자루에 넣어 갱도내에 야적하였다. 최근 토사 반출과 유해 수습이 일부분 이루어졌다. (진실화해위원회, 경산 코발트광산 희생자 유해수습 조사보고서., 2023)
진실화해위원회
물론 국가기구에 의한 유해발굴이 필요하고 더 많은 공신력을 갖게 되지만, 유해발굴을 빨리 마무리지어야 할 '과제'로만 생각해 성급하게 진행하다보면 '코발트광산 괴담'과 같은 담론은 언제든지 한국에서 발생할 수 있다.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의 성과가 상당하지만 무엇인가 우리가 허전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바로 발굴의 결과가 시민사회에 잘 정착하고 있는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급한 유해발굴과 더불어 이 결과의 확산을 어떠한 방식으로 세련화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함을 말한다.
지금은 한국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들에게 전쟁의 참혹함과 민간인 학살의 야만성을 교육하는 데 유해발굴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전까지 유해발굴의 가장 큰 목표가 유해를 찾고 수습하는데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유해발굴의 결과를 어떤 기제로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이 논의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 진실화해위원회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종료 이전까지 이 계획의 구체적 프로세스를 시민사회와 함께 공유하는 논의구조를 반드시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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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학살지에서 '공포체험'... 과거사청산이 완성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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