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요술봉 들고, '집회 올출러' 되고... 알려지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

12월 윤석열 탄핵 집회 속 2030, 그리고 여성들... "우리는 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등록 2024.12.28 12:18수정 2024.12.28 19:37
10
원고료로 응원
 (좌) 윤서씨가 시민들에게 나눠준 커피 (우) 지난 13일 교내 대학생 시국대회 모습
(좌) 윤서씨가 시민들에게 나눠준 커피 (우) 지난 13일 교내 대학생 시국대회 모습 이윤서씨 제공

지난 12월 3일 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수많은 국민들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과 전국 곳곳에 모여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과 민주주의를 외쳤다. 이번 집회에 등장한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K-pop은 집회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특히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세대'로 여겨졌던 2030세대와 여성들의 참여는 큰 주목을 받았다.

실제로 BBC 코리아에서 지난 13일 공개한 여의도 '탄핵집회' 참여자 성별/ 연령대별 구성에 따르면 7일 오후 4시 기준 여의도 집회의 20대 여성 참가자 수는 3만 5926명으로 전체의 약 17.7%를 차지해 가장 높았고 50대 남성 참가자가 뒤를 이었다.

2030 세대, 그리고 여성들이 이번 '탄핵 집회'에서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늘 같은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번 탄핵 집회를 포함해 수많은 곳에서 목소리를 내온 다섯 명의 대학생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모두의 예상을 깬 12월의 광장

 BBC 코리아에서 공개한 여의도 '탄핵집회' 성별/연령대별 구성
BBC 코리아에서 공개한 여의도 '탄핵집회' 성별/연령대별 구성 BBC 코리아

비상 계엄 사태 이후 거의 모든 탄핵 집회에 참여한 이화여대 이윤서(21)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집회 올출러(모든을 뜻하는 영어 단어 'All'과 '출석'의 합성어, 모든 집회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불린다. 평소 대선, 국회의원 선거를 주의깊게 보고 정치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직접 광장으로 나와 목소리를 내고 행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난 3일 새벽, 난데없는 대통령의 비상 계엄 선포 후 윤서씨는 불안에 떨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집회였지만 한 국민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벌어지자 '당연히' 집회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집회에 참여한 윤서씨는 중년 남성들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현장에선 젊은 시민들과 여성들이 많이 보였다.


윤서씨는 "집회 현장에서 예상과 다르게 K-pop이 흘러나오고 젊은 시민들이 많이 보였다"라며 폭력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밝고 평화로운 분위기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나와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단과대 학생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윤서씨는 교수님들의 도움으로 100만 원어치의 커피를 선결제하고 작은 간식과 핫팩들을 나눠주며 따뜻한 손길에도 힘을 보탰다.


동덕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경민(21)씨와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지윤(21)씨도 처음 집회에 참여했다. 경민씨는 "정치에 관심은 가지고 있었지만 행동하는 데에는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되찾은 사회에서 스스로에게 당당하기 위해서 집회에 참여했다"라고 말했다.

비상 계엄 사태 발생 직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집회 준비물로 보안경이나 호신용품 등을 준비하라는 이미지가 공유됐다. 하지만 실제 집회 현장에는 다른 것들이 필요했다. 영하의 날씨를 버틸 방한 용품과 자신만의 개성있는 빛이 되어줄 물건이었다. 지윤씨와 경민씨는 각각 요술봉 장난감과 좋아하는 가수의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 갔다.

 지윤씨와 경민씨가 들고간 응원봉과 요술봉 장난감
지윤씨와 경민씨가 들고간 응원봉과 요술봉 장난감 김지윤씨 제공

K-pop이 흘러나오지 않는 곳에서도

집회에서 K-pop이 자주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은 비상 계엄 사태 이전 광화문 앞에서 진행한 윤석열 퇴진 시위부터였다. 오래전부터 꾸준히 집회에 참여해 온 기성세대들은 익숙지 않은 노래에 당황하기도 하고 일부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젊은 여성들의 반응은 어마어마했고, 그간 집회에 쉽게 참여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광장에 나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K-pop이 흘러나오지 않는 곳에서도 많은 2030 세대와 여성들을 볼 수 있었다. 전광판이 보이지 않고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 수많은 여성들이 돗자리와 이불을 챙겨와 자리를 지켰다.

지난 21일부터 20시간에 걸쳐 진행된 남태령역 농민 집회는 농민들이 주최한 집회로, 그들이 준비한 음악에는 <농민가>, <농민이 최고야>, <민중의 노래> 와 같이 민중가요가 주를 이뤘다. 그럼에도 이곳에 수많은 젊은 여성이 힘을 보탰다.

숙명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인 서예진(22)씨는 지난 22일 남태령역에서 진행된 농민 집회에 참여했다. 예진씨는 "농민들이 주최하고 목소리를 내는 집회에서는 농민들의 노래가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다. 집회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 여성들도 그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기에 K-pop이 흘러 나오지 않아도 한 마음으로 함께하게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밤새 이어진 남태령역 집회는 영하의 추운 날씨에, 음식이나 물자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농민들의 트랙터 유리가 깨지는 등 폭력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온라인을 통해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농민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다음날 첫 차가 다니기 시작하자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오기도 했다.

 지난 22일 남태령역 여자화장실에 쌓여있던 여성위생용품
지난 22일 남태령역 여자화장실에 쌓여있던 여성위생용품 김재연 의원 SNS

시민들은 음식과 핫팩 등을 보내주거나 여자 화장실에 위생용품을 비치해두고 가기도 했다. 서예진씨는 "아침을 먹고 오지 못해 체력적으로 몹시 힘들었는데 본무대에서 계속해서 시민들이 보내주는 제육 볶음, 도시락과 초코바 등이 있다고 안내했고 화장실에는 위생 용품이 가득 있었다"며 힘을 보태주는 시민들께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이 겨울, 우리는 왜 광장에 모였나

2030 여성들의 집회 참여가 눈에 띄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김경민씨와 김지윤씨는 "딥페이크 성범죄와 같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준 범죄들과 피해자에 공감대 형성되면서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자하는 의지들이 더 표출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윤서씨는 "이번 집회에서 2030 여성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여성들은 오래전부터 목소리를 내왔다"라며 "계엄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던 것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24일 인터뷰에서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는 2030 여성들의 집회 참여도가 높아진 배경에 대해 국가적 관심이 집중된 민주주의 집회에서 축적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는 점을 언급했다.

김재연 상임대표는 "지난 여름 딥페이크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온 사회가 충격에 빠졌고, 불법 촬영물 문제나 구조화된 차별이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려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다룬 집회에 참여하는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신원을 가린 채 참석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탄핵 정국에서는 대부분 국민이 한마음으로 민주주의를 외쳤고, 그런 현장에서 발언이 질타나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며 "국가적 관심이 집중된 민주주의 집회에서 축적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면서 20대 여성들의 참여가 더욱 활발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늘 목소리 내왔다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대응 긴급 집회 지난 9월 6일 저녁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열린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대응 긴급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대응 긴급 집회 지난 9월 6일 저녁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열린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대응 긴급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여성들은 늘 목소리를 내왔다. 지난 9월 6일 보신각 앞에서 진행한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 집회'에는 144개 단체가 공동 주최하고 1000명 시민들이, 2018년 수차례에 걸쳐 진행된 혜화역 '불법 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에는 수만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남태령역 집회에 참여했던 서예진씨 역시 이전부터 세월호 참사 추모제, 이태원 참사 추모제,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 집회 등 여러 집회에서 목소리를 내왔다. 25일 인터뷰에서 예진씨는 "집회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는 의제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에 관한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결국 우리가 바꿔야 하는 의제들이다"라며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이유를 말했다. 특히 여성에 관한 의제의 경우 실제로 본인이 여성으로서 겪은 일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며, 이미 수많은 여성들은 여러 의제에 대해 크고 작은 연대를 해왔다고 부연했다.

예진씨는 이번 집회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가지고 한 마음으로 모인 이들이 인상적이었다며 "사회적 약자는 소수자만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뺏긴 모두가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정권에 의해 억압되거나 자신의 빼앗긴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이번 집회에서 더 결집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예진씨는 사건이 터진 순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만 금세 사그라든다며 "이전 크고 작은 집회들이 없었다면 탄핵 정국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거대한 집회도 없었을 것"이라며 "작은 목소리에도 꾸준히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월호 10주기 추모 문화제에 참여한 서예진씨
세월호 10주기 추모 문화제에 참여한 서예진씨 서예진씨 제공

응원봉은 개성있는 빛과 도구일 뿐

성공회대학교 한송연(21)씨는 일본군 위안부 수요시위, 혜화역 딥페이크 규탄 집회와 각종 대학생 시국대회, 범국민 대회 등의 퇴진 집회에 참여해왔다. 송연씨는 "이번 집회 외에 다른 여러 집회에도 여성 비율이 굉장히 높지만 조명되는 경우는 드물다. 심지어 매주 열리는 집회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라며 항상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딥페이크 규탄 집회 피켓 사진
딥페이크 규탄 집회 피켓 사진 한송연씨 제공

송연씨는 이번 윤석열 퇴진 집회에서 여성들의 참여와 행동이 주목 받은 것에 대해 응원봉의 등장으로 여성들의 참여와 행동이 주목받은 것은 긍정적인 효과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응원봉은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의 개성 있는 빛과 도구일 뿐 여성을 상징할 수 없다"며 그들이 들고 있는 응원봉보다 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에게 주목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모두가 광장의 주인공 되길

성탄 기간이었던 24일과 25일에도 경복궁역 앞과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집회가 이어졌다. 이날 집회에도 많은 시민들이 개인적인 일정들을 미루고 집회에 참여했다.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는 "사회에서 소외된 목소리가 전달되기 위해선 또 다른 움직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이번 탄핵 집회에 참여한 많은 2030 세대, 그리고 여성들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했을 때 그 말을 함께 듣고 호응하고 힘을 모으고 용기를 나눌 수 있는 광장의 동료 시민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셨을 것 같다"며 앞으로도 꾸준히 광장의 주인공으로 서 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 제보를 받습니다
오마이뉴스가 12.3 윤석열 내란사태와 관련한 제보를 받습니다. 내란 계획과 실행을 목격한 분들의 증언을 기다립니다.(https://omn.kr/jebo) 제보자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되며, 제보 내용은 내란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데만 사용됩니다.
#윤석열 #탄핵집회 #2030 #비상계엄 #퇴진
댓글10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7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 하루도 별 일 없으셨나요? 맑은 시선으로 밝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 대통령 "나를 엮어보겠다고 녹취록 변조까지 하더니" 이 대통령 "나를 엮어보겠다고 녹취록 변조까지 하더니"
  2. 2 태어나보니 백기완 손주였다 태어나보니 백기완 손주였다
  3. 3 각 잡고 만든 대작, 복수극 좋아하면 참기 힘들 겁니다 각 잡고 만든 대작, 복수극 좋아하면 참기 힘들 겁니다
  4. 4 공소기각에 환히 웃은 곽상도 "난 피해자, 그만 좀 괴롭혀라" 공소기각에 환히 웃은 곽상도 "난 피해자, 그만 좀 괴롭혀라"
  5. 5 '똘똘한 한 채' 막을 확실한 방법...이 대통령을 응원합니다 '똘똘한 한 채' 막을 확실한 방법...이 대통령을 응원합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