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표지
돌베개, 김관식
언제였나.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때, TV에서 봤던 그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모시고 살며 두 동생을 돌보고 있지만 전혀 세상 원망하지 않고, 그저 할머니와 동생 걱정만 하던 한 중학교 3학년 아이.
그러면서 리포터가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게 무엇이냐?"하고 물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밀린 공부를 하고 싶다든지, 부모와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간다든지,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아이가 하는 말은 이랬다.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 가고 싶어요."
그때 생각했다. 지금 저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할 정도면 대체 언제부터 철이 든 것일까. 저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자랄까. 아니, 자라야 할까. '가난'과 불안한 '가정' 사이에서 힘겨워하는 아이를 위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학교와 사회에서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 아이가 철이 들었다는 건, 그 안에 꿈과 희망, 재미와 기대보다 걱정, 우울이 자리 잡았을 때의 이야기여서 아이가 걱정됐다. 오히려 아이는 철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아닌데, 어른이 되라고 강요하는 것 같았으니까.
공부나 성장이 뒷전이 된 학생들, 이유는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라는 책은 어느 날 우연히, 갑자기 튀어나온 이슈를 책으로 묶은 것이 아니다. 예외 없이 청소년 시기를 거친 우리 모두가 오래도록 지켜봐 왔던 낯빛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단순히 청소년 시기를 묘사하는 게 아닌, 이들이 어른이 된 이후의 삶까지 계속 따라간다. 어렵고 힘든 청소년기를 이겨낸 이들이 어떻게 어른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며 힘차게 살아가는지 보여주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했다.
25년 경력의 교사인 저자 강지나씨는 이들의 이야기를 10여 년 간 추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냈던 청소년의 목소리, 청년이 된 이후의 생각, 어른으로서의 가치관을 토대로 그간의 삶의 여정을 있는 그대로 투영했다. 한 마디로, 그들의 삶에 가장 중요했던 10년의 시간을 복기하며 가난이란 굴레와 가족으로 인해 받은 영향(상처)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일어서려 했던 과정을 솔직하게 담았다.
무엇보다 강지나 작가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를 알 필요가 있다. 이 책을 통해 작가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했는지 그 뱡향이 명확히 보이기 때문이다.
2000년 경기도의 한 외곽 소도시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강지나씨는 한 학생이 여러 날 학교에 나오지 않자, 그 학생의 집을 찾아갔다. 알고 보니, 그 아이의 할머니가 손주를 학교에 보내지 않은 것이었다. 자신의 아들, 즉 학생의 아버지가 자기에게 빌려간 돈을 갚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강씨는 몇 번이고 할머니와 학생 아버지를 찾아가 하소연했지만 결국 바뀌는 건 없었단다. 그는 교사로서 처음 무력함을 느꼈다고 썼다. 그리고 이것은 빈곤으로 인한 여러 일 중 하나일 뿐,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적었다.
"가난을 겪는 학생들의 삶에서 공부나 성장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중략) 학생들은 자신이 처한 다양한 가족 상황 속에서 좌충우돌을 겪고 있었고, 가난은 삶의 곤란함을 넘어서 때로는 무기가 되고, 도구로도 이용되고 있었다."
여러 모습 속에서도 행복을 찾아가는 여덟 명
그렇게 저자는 '가난'과 '청소년'이라는 단어에 접근하기로 결심했다. 교사로서 제자들 앞에서 결코 무력해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책임감의 발로였다.
이후 그는 가난함과 싸워 나가는 아이들을 위해 사회복지학과 청소년 정책을 공부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제 선진국이라 일컫는 한국의 교육상황을 진단하며 숫자나 통계에서 외면된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