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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덕에서 북촌까지... 제주4.3을 만나러 가는 길

수려한 풍광과 함께 한국 현대사를 품고 있는 제주

등록 2024.12.29 16:24수정 2024.12.3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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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백의 백사장이 특히 아름다운 제주 함덕해수욕장
은백의 백사장이 특히 아름다운 제주 함덕해수욕장 정수근

많은 한국사람들이 선망하는 국내여행 일번지는 누가 뭐라 해도 단연 제주가 으뜸이 아닐까 한다. 따뜻한 훈풍이 늘 불어올 것만 같은 남녘땅 제주는 언제나 설레는 여행지임은 분명하다. 바람과 여인과 돌의 고장이라는 삼다도 제주. 그 제주 여행에는 또다른 의미가 있다. 제주가 한국 현대사의 현장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제주 올레길로 대변되는 아름다운 풍광과 맛있는 음식, 거기에 역사기행까지. 제주 여행은 여러 가지 의미로 유익하다.

함덕에서 북촌까지... 제주 4.3을 만나러 가다

지난 27일 그 제주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함덕해수욕장에서부터 제주 조천읍 북촌까지 걸어서 제주를 둘러봤다. 은백의 백사장이 유명한 함덕해수욕장과 서우봉이라는 오름. 그 오름 너머가 북촌으로, 아름다운 제주 해안 풍경을 완성했다. 북촌으로 넘어가는 올레길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오름 서우봉을 올라가는 길. 서우봉을 오르는 내내 함덕해수욕장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오름 서우봉을 올라가는 길. 서우봉을 오르는 내내 함덕해수욕장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정수근

 서우봉을 오르면서 내려다본 함덕리. 멀리 한라산이 구름에 가려 보이고 있다.
서우봉을 오르면서 내려다본 함덕리. 멀리 한라산이 구름에 가려 보이고 있다. 정수근

서우봉을 경계로 완전히 다른 풍광의 함덕과 북촌. 그래서 더 인상적인 걷기 코스가 아닌가 한다. 여느 오름과는 달리 서우봉은 육지의 산지와 비슷한 풍광이다. 억새 같은 초지로 이루어진 다른 오름과는 다르게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선지라 오름이라기보다는 이름 없는 야트막한 야산과도 같은 느낌이다.

서우봉은 오르는 내내 함덕해수욕장이 발아래 있어서 그 시원한 풍광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서우봉을 넘어가면 함덕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시골 풍광이 나타나고, 그곳에는 역사적 아픔들이 서려 있어서 그 풍광이 더욱 쓸쓸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북촌에서 불어오는 냄새는 진한 짠맛이 배어 있는 듯했다.

우선 서우봉을 다 내려오면 해안선을 따라 먼저 일제의 잔재를 만나게 된다. 일제가 한반도를 태평양전쟁의 병참기지로 삼은 대표적인 곳이 바로 제주도라, 제주도 곳곳에는 일제에 의한 만행의 현장인 동굴진지가 여럿 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서우봉 일제 동굴진지다.


 서우봉 아래 해안선을 따라 일제에 의한 동굴진지가 23기 만들어져 있다.
서우봉 아래 해안선을 따라 일제에 의한 동굴진지가 23기 만들어져 있다. 정수근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서우봉 동굴진지의 입구. 안에는 너른 공간이 숨어 있다.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서우봉 동굴진지의 입구. 안에는 너른 공간이 숨어 있다. 정수근

제주 서우봉 일제 동굴진지는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전쟁 관련 시설로 2006년 12월 4일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309호로 지정되었다. 아직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잘 보전되어온 동굴진지 앞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글을 담은 입간판이 서 있다.

"이 시설물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연합군 함대를 향해 자살 폭파 공격을 하기 위해 구축된 것으로, 동굴식 갱도 18곳과 벙커 시설 2곳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王'자형과 비슷한 동굴 진지는 제주도 내 다른 일본 해군 특공 진지에 비해 훨씬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구축되었다. 제주도민뿐 아니라 다른 지방 사람들까지 동원돼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이런 동굴진지가 서우봉 해안선 일대에만 23기가 만들어져 있고, 제주 전역으로 확대하면 모두 448기라 하니 일제에 의한 제주도 병참기지화가 빈말이 아닌 이유다. 제주의 아름다운 해안 풍광에는 이런 역사적 아픔이 함께 상존하고 있다.


너븐숭이 민간인 학살과 제주4.3사건

 너븐숭이 민간인 학살 현장에 서 있는, 제주43의 비극을 다룬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 문학비
너븐숭이 민간인 학살 현장에 서 있는, 제주43의 비극을 다룬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 문학비 정수근

 너븐숭이 학살 현장의 애기무덤.
너븐숭이 학살 현장의 애기무덤. 정수근

그러나 동굴진지가 일제에 의한 아픔이자 슬픔의 현장이라면 한국 정부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더 큰 비극과 슬픔의 현장을 해안선을 조금만 벗어나 북촌에 이르면 만나게 된다. 현기영 작가의 제주4.3의 비극을 다른 유명한 작품인 <순이삼촌>의 무대이기도 한 바로 제주 너븐숭이 학살의 현장이다.

이곳에 서 있는 '너븐숭이 4.3기념관'은 당시 비극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949년 1월 17일, 세계사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북촌리에서 자행됐다. 4․3 당시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인명 희생을 가져온 북촌리 학살 사건이 북촌국민학교를 중심으로 한 동서쪽 들과 밭에서 자행된 것이다. 이날 북촌리의 마을에 있었던 불가항력의 남녀노소 400명 이상이 한날 한시에 희생되었다. 명절처럼 제사를 한날 한시에 지내는 북촌리에는 너븐숭이 애기무덤 등 당시의 상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많은 흔적들이 있다."

이처럼 제주4.3사건은 우리 현대사의 큰 비극이자 제주도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다. 너븐숭이 말고도 수만에 이르는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것이 제주4.3이다. 제주4.3평화재단은 제주4.3을 "4·3사건은 미군정기에 발생하여 정부 수립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여에 걸쳐 지속된, 한국 현대사에서 6·25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주 너븐숭이 4.3 기념관 입구에서 만나는 강요배 작가의 작품이 시선을 머물게 한다.
제주 너븐숭이 4.3 기념관 입구에서 만나는 강요배 작가의 작품이 시선을 머물게 한다. 정수근

 너븐숭이 43기념관 안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
너븐숭이 43기념관 안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 정수근

제주4.3평화재단이 밝히고 있는 제주4.3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1947년 3·1절 발포사건과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로 촉발되었던 4·3은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2만 5000∼3만여 명의 인명 피해를 가져왔다. 가옥 4만여 채가 소실되었으며, 중산간 지역의 상당수 마을이 폐허로 변했다. 학교·면사무소 등 공공기관 건물이 불탔으며 각종 산업시설이 파괴되었다.

1954년 4·3이 종료되면서 폐허가 된 마을의 복구와 정착사업이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4·3이 제주공동체에 남긴 후유증은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연좌제와 국가보안법의 족쇄가 유가족들을 얽어맸으며, 고문 피해로 인한 후유장애, 레드 콤플렉스 등 정신적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4·3으로 인해 일본으로 피신한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했고, 수형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공안기관의 감시에 시달렸다."

이 사건으로 인한 희생자 수는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확정한 희생자 수는 2024년 현재 1만 4822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공식적으로 집계된 희생자 수치일 뿐, 진상조사보고서는 4·3 당시 인명피해를 2만 5000명에서 3만 명으로 추정한다.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본다.

제주의 비극이 아름답게 승화되기를

 제주 북촌의 너븐숭이 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비
제주 북촌의 너븐숭이 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비 정수근

 너븐숭이 희생자 위령비 옆에 서있는 위령비 건립의 의의를 밝힌 비석
너븐숭이 희생자 위령비 옆에 서있는 위령비 건립의 의의를 밝힌 비석 정수근

많은 여행객을 설레이게 하는 매혹의 섬 제주가 이런 역사적 아픔이 아로새겨진 섬이라는 사실을 아직 많은 이들이 깊이 알지는 못한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도 한참 뒤인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서 공식적인 국가의 첫 사과가 있었고 그 후 진상규명이 본격화해 많은 희생자들이 공식 확인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의 죽음이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루빨리 모든 죽임이 제대로 진상 규명되고 억울하게 희생된 넋들이 한을 그만 풀고 훨훨 훨훨 날아가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해보게 된다. 너븐숭이 위령비 뒤편에는 희생자를 기리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너븐숭이 희생자를 위한 위령비 뒤면에 서 있는 문구.
너븐숭이 희생자를 위한 위령비 뒤면에 서 있는 문구. 정수근

"(중략)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생명의 빛으로 되살아나 마침내 역사가 되신 영혼 영신님네 그 크나큰 슬픔의 권능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바르게 다스려 주소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많이 인용되면서 회자되고 있다. 이 나라 현대사의 긴 시간 속에서 국가폭력으로 운명을 달리한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민주국가 대한민국이라는 오늘이 있다는 말. 따라서 그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일 것이다.

위령비의 문구처럼 그들의 죽임이 "크나큰 슬픔의 권능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바르게 다스려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처럼, 제주 여행은 삶에 진지한 성찰을 준다. 새봄이 오면 이 매혹의 섬을 다시 찾고 싶다.

 제주43의 비극이 서린 제주 북촌. 그 너머로 풍력발전기 여럿이 무심한듯 돌아가고 있다.
제주43의 비극이 서린 제주 북촌. 그 너머로 풍력발전기 여럿이 무심한듯 돌아가고 있다. 정수근

 매혹의 섬 제주. 다시 찾고 싶은 여행 일번지.
매혹의 섬 제주. 다시 찾고 싶은 여행 일번지. 정수근
덧붙이는 글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제주43사건 #제주여행 #함덕해수욕장 #너븐숭이 #순이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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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간의 기사를 엮은 책 <강 죽이는 사회>(2024, 흠영)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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